[손민호기자의문학 터치] 어, 마광수가 하나도 안 야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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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리고 오늘. 9년만의 시집 '야하디 얄라숑'(해냄)이 나왔다. 이번엔 '최초의 무삭제 완전본'이란다. 출판사에 물었더니 "자기검열 없이 쓴 작품"이라고 말한다. 마광수가 한껏 펼친 성 담론이란다. 그러면 이제 진검을 구경할 차례다. 마침내 마광수 성 담론의 정수를 만끽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별 감흥이 없다. 표현과 묘사 적나라하고 페티시즘 취향도 여전하지만 그냥 덤덤하다. 사디즘.마조히즘.관음증.근친상간 등, 섹스에 관한 망측한 상상이 총출동하지만 그저 밍밍하다. 야하다는 감정은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마광수식 논법에 따라, 시집은 야하지 않다.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가자, 장미여관으로!'('가자, 장미여관으로'부분)라고 선동했던 89년이 더 야했다.

시집에서 읽히는 건 외려 허무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을 패러디하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만 내 가슴에 있네'('비가 2'부분)라고 노래하고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감히 '야하디야했던 그대들의 넋'('그해 5월을 생각하며'부분)이라고 부르지만, 속내 드러냈다는 느낌은 덜하다. 문학적 제스처의 느낌이 되레 더하다.

시인의 육성이 도드라지는 건 '사랑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공연히 어쭙잖게 혁명도 하고 싶어지고/공연히 촌스럽게 계몽도 하고 싶어지고/…/절망도 어렵고 희망도 어렵고 사랑은 더 어렵고'('이 서글픈 중년' 부분)라고 읊을 때다. 덜컥 중년이 돼버린 자신, 퀭한 눈으로 돌아볼 때다.

마광수가 피어싱이나 네일아트를 찬양한 건 10년도 전의 일이다. 마광수에 열광했던 것도 그 즈음일 게다. 누구도 섹스를 말하지 않던 시절, 홀로 섹스를 말하던 마광수는 야했다. 대학생이 되고선 거들떠보지도 않던 '빨간 책'을 고등학교 땐 숨어서라도 돌려봤던 건, 그 시절엔 금지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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