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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 진달래 먹으러 대구 비슬산 산행 가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21)

비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대견봉. 진달래가 지천으로 만개했다. [사진 하만윤]

비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대견봉. 진달래가 지천으로 만개했다. [사진 하만윤]

바야흐로 봄, 전국 곳곳에 축제가 한창이다. 봄 하면 꽃 축제, 꽃 축제하면 단연 주인공은 진달래와 철쭉이다. 봄 등산의 백미는 걸음 옮기는 데마다, 눈길 두는 데마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봄꽃과의 조우에 있을 것이다.

날 좋은 주말에 진달래로 유명한 대구 달성군 비슬산을 찾았다. 마침 비슬산 참꽃문화제 개막일이었다. 미리 알고 계획한 건 아니었으니 행운이다 싶었다. 지난주는  30℃를 오르내리는 때아닌 여름 날씨였으니 진달래가 만개했으리라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원정 산행에 올랐다.

먹을 수 있는 진달래, 먹으면 탈나는 철쭉

참꽃은 먹을 수 있는 꽃, 진달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이에 대비되는 말이 개꽃, 먹으면 탈이 나는 철쭉을 일컫는다. 진달래와 철쭉을 두고 이리 다르게 불렀다고 하니, 그 옛날 이맘때면 온 산을 헤매어 꽃이라도 따먹으며 보릿고개를 이겨내려고 했던 우리 조상의 고달픔이 겹쳐 혀끝에 쌉싸래하고 쓴맛이 맴돈다.

산행에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원정 산행이 그랬다. 출발부터 뜻밖의 해프닝이 생기면서 계획한 일정이 틀어지게 됐다. 서울 사당동에서 출발해 가다가 죽전 간이정류소에서 기다리던 일행 몇 명을 태워야 했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이를 깜박 잊고 지나쳐버린 것이다. 일행과는 몇 번의 통화 끝에 신갈 간이휴게소 부근에서 만났다. 그 탓에 계획한 일정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됐다. 대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일행과 의논해 등산코스를 변경했다.

산행 들머리로 향하는 길에 만난 유가사 일주문. 싱그러운 초록 잎 사이로 쏟아지는 볕이 좋다. [사진 하만윤]

산행 들머리로 향하는 길에 만난 유가사 일주문. 싱그러운 초록 잎 사이로 쏟아지는 볕이 좋다. [사진 하만윤]

버스는 정오 무렵에야 유가사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참꽃문화제 때문인지 비슬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교통통제 중인 가운데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우리가 들머리로 잡은 유가사 방향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108개의 돌탑으로 유명한 유가사. [사진 하만윤]

108개의 돌탑으로 유명한 유가사. [사진 하만윤]

통일신라 시대 흥덕왕 2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유가사는 108개의 돌탑과 시비로 유명하다. 예부터 마을 어귀 성황당의 돌탑에 돌 한 개 한 개를 정성스럽게 올리며 소원을 빌었던 우리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모든 시민이 탑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던 주지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쌓은 탑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 탑 사이를 지나면 그 길 끝에 천왕봉과 대견사로 향하는 들머리가 있다.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길 양옆으로 ‘너덜겅’이 이어진다. 너덜겅은 돌이 많이 흩어져 깔린 비탈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대견사지에서 비슬산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곳에서 만나는 천연기념물 암괴류(돌강)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인간의 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누적이 빚은 현상이라고 하니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비슬산의 또 다른 볼거리인 암괴류. 땅속 깊은 곳에서 짧게는 1만 년, 길게는 10만 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고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듯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됐다. [사진 하만윤]

비슬산의 또 다른 볼거리인 암괴류. 땅속 깊은 곳에서 짧게는 1만 년, 길게는 10만 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고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듯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됐다. [사진 하만윤]

한 시간 남짓 너덜겅 계곡을 끼고 오르다 보면 천왕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표지판을 만난다. 이곳에서 1시간여를 더 올라야 천왕봉이다. 비슬산 정상인 천왕봉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대견봉으로 불렸다. 수많은 역사학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유가사 위쪽 봉우리를 천왕봉, 대견사 위쪽 봉우리를 대견봉으로 불렀다는 문헌을 발견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천왕봉으로 재명명한 것이 2014년이다.

정상의 바위 능선 거문고 닮아 

비슬산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도 독특하다. 천왕봉에서 대견봉으로 이어지는 산의 바위 능선이 흡사 거문고를 닮았다고 비파 ‘비(琵)’에 거문고 ‘슬(瑟)’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 인도에서 온 승려들이 쌀 ‘포(包)’를 범어로 비슬이라고 한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정상인 천왕봉 아래에 있는 병풍바위. 좌우로 펼친 풍경이 장엄하다. [사진 하만윤]

정상인 천왕봉 아래에 있는 병풍바위. 좌우로 펼친 풍경이 장엄하다. [사진 하만윤]

급경사를 1시간여 오르고 나니 마지막 계단 양옆으로 서 있는 병풍바위를 만난다. 바로 그 위 해발 1000m에 광활한 평지가 펼친다. 가까이는 붉게 존재를 드러내는 참꽃 무더기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으나 시선이 가 닿는 저 너머 강우 레이더 옆 대견봉 근처는 지천으로 흐드러진 참꽃 군락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천왕봉에서 만난 평지 한 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 7080산처럼]

금강산도 식후경. 천왕봉에서 만난 평지 한 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 7080산처럼]

예기치 못한 출발 해프닝 때문에 잰걸음으로 산에 오른 일행은 천왕봉 근처 팔각정에 자리를 잡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 남은 시간을 가늠해보니 대견봉까지 가지는 못할 것 같아 아예 마음을 비웠다. 여유 있게 식사를 하고 천왕봉 주변에 핀 진달래 무더기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유가사 방향.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사진 하만윤]

천왕봉에서 바라본 유가사 방향.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사진 하만윤]

천왕봉에서 대견봉으로 30여 분을 걷다 오른쪽 계곡 길로 접어들면 하산길이다. 내려오는 내내 멀리서나마 잠깐이라도 눈에 담았던 참꽃 군락지에 대한 미련이 남았지만 돌아올 일정을 생각해 아쉬움을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유가사 방향으로 향한다.

비슬산 천왕봉 정상석. 대견봉으로 불리다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2014년에야 천왕봉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사진 7080산처럼]

비슬산 천왕봉 정상석. 대견봉으로 불리다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2014년에야 천왕봉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사진 7080산처럼]

조금 뒤 정상으로 이어지던 급경사 코스를 다시 맞닥뜨렸다. 여기서부터는 등산한 길과 겹친다. 기분 좋게 흐르는 너덜겅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 새 유가사 경내에 도착했다. 오를 때 시간에 쫓겨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사찰을 찬찬히 거닐어보고 시원한 약수 한 잔으로 목도 축인다.

하산 길에 다시 들른 유가사. 오를 때 보지 못한 경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사진 하만윤]

하산 길에 다시 들른 유가사. 오를 때 보지 못한 경내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사진 하만윤]

푹해진 날을 핑계 삼아 일주문 옆 계곡에 잠시 발을 담가본다. 산행으로 쌓인 피로가 계곡물을 따라 흘러가는 듯하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을 돌아보며 보지 못한 풍경에 대한 아쉬움보다 이들과 함께한 즐거움이 더 컸다는 걸 새삼 또 깨닫는다.

하산 길에 다시 올려다본 비슬산. 파릇파릇 봄빛이 가득하다. [사진 하만윤]

하산 길에 다시 올려다본 비슬산. 파릇파릇 봄빛이 가득하다. [사진 하만윤]

배낭을 풀다가 새록새록 생각나는 산 

어느 산이든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 명쾌한 진리를 기억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산행이 즐겁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은 돌아와 배낭을 풀다가 문득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왈칵 솟는 산이 있다. 누군가에겐 지리산이나 설악산이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 비슬산은 머릿속에 아련히 그려지는 산으로 남았다. 등산이 힘들어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걸었던 그 길이, 집에 돌아와 배낭을 정리하다 보니 새록새록 생각나는 그런 산. 비슬산의 두 성인인 관기와 도성의 만남이 있었던 도통 바위, 참꽃 군락으로 유명한 대견사지, 인간의 시간으로 셈할 수 없는 돌강 등 보지 못해 궁금한 산의 모습은 어느 가을 온통 억새로 뒤덮일 풍경과 함께 비슬산을 다시 찾아올 여지가 됐다.

너무 짧아 아쉽기만 한 봄날, 만개한 참꽃군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다가오는 주말에 망설이지 말고 배낭을 꾸릴 것을 권한다. 비슬산은 대중교통으로도 얼마든지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유가사-병풍바위-천왕봉-마령재-유가사. 거리 약 8Km, 시간 약 5시간. [사진 하만윤]

유가사-병풍바위-천왕봉-마령재-유가사. 거리 약 8Km, 시간 약 5시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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