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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의 신조어(2)] 대북제재를 자강력·속도전으로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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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의 집권 7년 동안 가장 많이 등장한 신조어는 경제와 관련된 용어다.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 첫 육성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혔다. 유엔 대북제재 가운데 김 위원장이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신조어를 만들었는지 알아보자.

'자기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자강력이 바탕 #독립채산제 확대하고 지배인 경영책임제 확산 #허리띠 졸라매지 않겠다는 약속 실천에 안간힘 #공장·기업소에 가격·판매 자율권 부여 #협동농장 분조 단위를 줄여 생산력 향상 #기존에서 변화했지만 근본적 개혁은 아직 #

경제 분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김 위원장이 4월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목표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 전략을 언급했다. 이는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시됐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과거와 차이점으로 ‘계획’이란 용어 대신에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56년 3월 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 1961년 9월 노동당 제4차 대회에서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에서 알수 있듯이 그동안 ‘계획’을 사용했다. 아울러 과거와 달리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것도 특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결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결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5개년 전략의 목표로 ▶인민경제전반의 활성화 ▶경제 부문 사이 균형을 보장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 마련 등을 선정했다. 부문별 과제로는 특히 전력을 강조했다.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5개년 전략 수행의 선결 조건이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의 중심고리이며 발전소 개선, 송배전망 개건 보수,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제시했다.

경제 운영 방식에서는 내각 책임제와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의 두 가지 방식을 채택했다. 내각 책임제는 박봉주 총리를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해 내각에 힘을 대폭 실어주었다. 김 위원장은 4월 전원회의에서 내각 관료들에게 “경제사업의 주인으로서의 위치를 바로 차지”하는 동시에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통일적 지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는 독립채산제를 확대하고 차별임금제, 지배인 책임경영제를 강화한 것이다.

자강력 제일주의= 김 위원장은 2016년 신년사를 통해 ‘자강력 제일주의’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자기의 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자기의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 건설대업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에서 2016년 7월 자강력제일주의를 비롯한 노동당 제7차 대회 과업을 반영한 우표를 제작했다. [사진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에서 2016년 7월 자강력제일주의를 비롯한 노동당 제7차 대회 과업을 반영한 우표를 제작했다. [사진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

북한이 2016년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연이은 핵실험과 각종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은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자강력 제일주의에 대해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에 따라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혁명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그는 “자강력 제일주의의 기반은 자기 나라 혁명은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사상이며 자강력 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방식은 자력갱생, 간고분투”라고 규정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는 김일성이 1961년 12월에 제시한 자력갱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인 능력을 향상하고 있었지만,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내놓은 것이 자력갱생이다. 자력갱생은 원래 중국 공산당의 지도방침 가운데 하나로 북한이 차용한 것이다. 중국은 1959년부터 계속된 3년간의 자연재해와 1960년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이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산화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봄향기’ ‘은하수’ 등 토종브랜드의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해외의 유명 브랜드를 자체 브랜드로 대체하면서 외화 사용을 억제하고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생산 현장을 시찰하면서 ‘자기식 투쟁 방식’과 ‘창조 방식’ 등을 강조하면서 자강력 제일주의의 실천을 역설했다. 가방공장, 양묘장 등에서도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북한 사회가 자강력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우리식 새로운 경제관리체계(6·28방침)= 김 위원장은 2012년 6월 28일에 ‘우리식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시장경제 요소를 가미해 경제 운용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난 해결을 위해 물질적 인센티브 제공과 계획화의 부작용 개선 등을 통해 농업 생산성과 주민생활 향상을 도모하고자 도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4년 7월 그물과 밧줄, 플라스틱관 등을 생산하는 조선인민군 제1521호 기업소의 성천강그물공장과 수지(플라스틱)관 생산라인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4년 7월 그물과 밧줄, 플라스틱관 등을 생산하는 조선인민군 제1521호 기업소의 성천강그물공장과 수지(플라스틱)관 생산라인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

크게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개혁 두 부문으로 돼 있다. 공장·기업소 개혁은 초기에 국가가 생산비를 투자하지만, 이후에는 개별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 국가가 생산 품목과 목표를 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자재, 연료, 전력 등을 다른 공장이나 탄광, 발전소 등과의 거래를 통해 사도록 했다. 가격·제품 판매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다. 판매 수입은 국가와 공장·기업소가 일정 비율로 나누게 했다. 근로자들은 제품 판매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배급은 폐지했다. 국가기관이나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배급제를 남겨놓았다.

협동농장 개혁은 기존 작업 분조(통상 10~25명)를 4~6명으로 줄였다. 능률 향상을 위해 한 가족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국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면 그 생산물을 국가와 분조가 7대3으로 나누도록 했다. 목표를 초과한 생산물은 분조가 가지도록 했다. 따라서 농민들의 근로 의욕을 자극해 식량 생산을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 집단영농제에서 가족영농제로 이행되는 전단계로 볼 수 있다.

6·28방침은 기존의 경제운용 방식에서 변화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장·기업소 개혁은 공장·기업소의 소유는 그대로 국가만이 할 수 있었다. 개인이 설립할 수 없도록 했고 공장·기업소의 책임자도 노동당에서 임명했다. 협동농장 개혁은 농민들의 몫이 많아지긴 했지만, 군량미 등으로 징수해감에 따라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초과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만리마 속도=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속도전식 생산성 향상 운동으로 김일성 시대의 '천리마 운동'에서 따온 슬로건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千里·약 393㎞)를 달릴 수 있는 준마를 말한다. 최단기간 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천리마 동상을 담은 북한 화폐의 모습. [사진 중앙포토]

천리마 동상을 담은 북한 화폐의 모습. [사진 중앙포토]

김 위원장은 2016년 5월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내달리는 만리마 시대를 열어놓았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반세기 넘게 북한 경제와 사회 전반을 지배해 온 ‘천리마’는 ‘만리마’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됐다. 지난해 3월 노동신문은 “천리마가 남을 따라 앞서기 위한 비약의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오르기 위한 과학기술 용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속도를 강조하는 대중동원 운동을 통해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추동해왔다. 김일성 시기에는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천리마 운동'을 제기한 데 이어 각 부분에서 '평양속도', '비날론 속도', '강선속도'를 강조했다. 김정일은 70일 전투, 100일 전투, 150일 전투, 200일 전투와 같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은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정치사업과 문화예술 분야까지 영향력을 확산시켰다.

김 위원장도 치적사업의 달성을 위해 최근 2년 동안 대규모 노력 동원 운동을 전개했다. 노동당 제7차 대회를 개최한 2016년에는 ‘70일전투’와 ‘200일전투’를 펼쳐 자본과 노동력을 총동원했으며, 지난해엔 '만리마 운동'을 독려한 바 있다. 속도전은 생산을 늘려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도 성과의 질적 하락과 비효율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북한에 속도와 내적 발전의 균형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명거리= 북한이 지난해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건설한 평양의 대표적인 신도시다. 여명은 ‘북한에 여명이 밝아온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말이다. 2012년 집권한 김 위원장은 평양의 신시가지 건설에 공을 들였다. 창전거리와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와 같은 신시가지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문수물놀이장과 능라인민유원지 같은 위락시설도 만들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주체건축의 새로운 전성기’라며 김 위원장의 건설 업적을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표적 치적시설로 선전하는 평양 여명거리의 모습. [노동신문]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표적 치적시설로 선전하는 평양 여명거리의 모습. [노동신문]

건설 분야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관심은 김정일 시기에도 있었다. 평양의 창광거리와 문수거리에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건설했으며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같은 상징적 건축물도 만들었다. 1981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전문 병원인 평양산원을 만들어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 위원장은 ‘건설정치’를 통해 경제적 치적을 선전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살뜰하게 챙기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주민들의 충성과 존경을 유도하고 있다.

평양의 신도시는 김 위원장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에도 활용됐다.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국가우주개발국이나 조선인민군 전략군 소속 연구소의 전문 인력뿐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원들을 새로 건축한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 우선 입주시켜 과학자들을 우대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평양의 쑥섬에 건설한 과학기술전당은 과학중시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치적물이다. 젊은 세대에게 과학강국의 꿈을 심어주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문화 부문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정영교 연구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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