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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조련사' 마크롱 국빈 방미…美 중간선거 앞둬 성과 미지수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국빈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국빈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호스 위스퍼러(horse whisperer)’는 말에게 속삭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안해하는 경주마들을 안심시키는 말 조련사를 가리킨다. ‘트럼프 위스퍼러'로 불리는 유럽 정상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젊고 외교적 수완이 좋은 그는 예측이 어려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유일한 유럽 정상으로 꼽힌다.

마크롱 '트럼프 위스퍼러'로 꼽히는 유일한 유럽 정상 #파리 만찬서 영어 쓴 마크롱에 멜라니아 佛 조리법 메뉴 #철강 관세 영구 면제, 이란 핵협정 유지 등 요청키로 #"지지층 겨냥 정책이라 트럼프 입장 바꾸기 쉽지 않아" # # #

 23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사흘간의 방미 일정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국빈 방문은 마크롱이 처음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27일부터 방미하지만 국빈은 아니다.

 이번 방미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군의 시리아 주둔 문제와 이란 핵협상 유지, 무역 장벽 등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선물 외교'에 능한 그는 ‘승리의 묘목'을 가져갔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백악관 뜰에 심은 이 나무는 1918년 미 해병대가 독일군을 격퇴했던 전장 인근에서 가져온 떡갈나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선물로 가져온 떡갈나무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뜰에 심고 있다. [AP=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선물로 가져온 떡갈나무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뜰에 심고 있다. [AP=연합뉴스]

 두 정상은 첫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버지니아주 마운트버넌에서 비공식 만찬을 했다. 24일에는 정상회담과 백악관 국빈 만찬이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718년 프랑스가 세운 도시 뉴올리언스의 요리법을 적용한 메뉴를 선보일 것이라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염소 치즈로 만든 갸토(케이크)와 케이즌식으로 조리한 양고기, 백악관 꿀이 들어간 복숭아 타르트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백악관 블루룸에 있는 의자 중 하나를 선물할 계획인데, 프랑스 출신 예술가가 영감을 준 제품으로 전해졌다.

마크롱 대통령 부부를 위한 국빈 만찬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주도해 준비했다. [AP=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 부부를 위한 국빈 만찬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주도해 준비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당시 29초 동안 악수한 두 정상은 ‘브로맨스'를 선보여왔다. 에펠탑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트럼프 내외와 식사한 마크롱 부부는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하며 공을 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특징은 정반대다. 71세인 트럼프 대통령은 반세계주의자이자 프랑스 대선 당시 마크롱과 겨룬 극우 마린 르펜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마크롱은 40세로 트럼프의 장남과 같은 나이다. 그는 세계화와 유럽연합(EU) 지지자다.

 지난해 7월 파리 에펠탑 식당에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식사를 했다. 마크롱 부부는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파리 에펠탑 식당에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식사를 했다. 마크롱 부부는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AP=연합뉴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기존 정당 질서를 허물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 둘 다 기성체제에 대한 이단아"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특별한 관계"라고 말했다. 게라르 아라우 주미 프랑스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숨기는 적이 없는데, 마크롱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며 솔직한 성격도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길들이기에 도전하는 마크롱은 유럽 지도자 가운데 글로벌 스트롱맨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정상으로 꼽힌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프랑수아 히스부르 소장은 “마크롱은 트럼프를 비롯해 러시아의 푸틴, 터키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 같은 강성 지도자들이 많은 ‘트럼피안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신현실주의자 "라며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조련하는 데 능숙하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조련할 수 있는 유일한 유럽 정상으로 꼽힌다. [EPA=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조련할 수 있는 유일한 유럽 정상으로 꼽힌다. [EPA=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화학무기 공격 의혹과 관련한 연합 공습 이후 시리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상당기간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에게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관세를 영구적으로 면제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유럽산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다음 달 1일까지 유예한 상태다.

마크롱에 이어 메르켈 독일 총리도 27일 미국을 방문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영구적으로 면제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AP=연합뉴스]

마크롱에 이어 메르켈 독일 총리도 27일 미국을 방문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영구적으로 면제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AP=연합뉴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하려 하는 이란 핵협정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협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안이 없다"며 “협정을 파기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낫다"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이란의 핵무기 개발 금지와 경제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체결한 핵 합의를 ‘나쁜 협상'으로 규정하고, 개정안을 내놓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밝혀왔다. 다음 달 12일까지 갱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EU는 미국이 이란에 다시 제재를 가하면 이란에서 운영 중인 유럽 기업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은 파기를 막기 위해 2030년 이후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중요 제한이 해제되는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등의 후속 협정안을 마련 중이다.

 과제는 많지만 무역 장벽 문제를 제외하고는 마크롱이 트럼프의 동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마크롱은 그동안 기후변화협약 탈퇴와 관련해서도 트럼프를 설득해 내지 못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와 유럽의 교량 역할을 할 생각이지만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있어 이란 핵협상 개정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PA=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와 유럽의 교량 역할을 할 생각이지만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있어 이란 핵협상 개정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로랑스 나르동 국장은 “트럼프는 국내 정치에서 지지자들이 만족하게 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와 반환경보호주의, 이란 핵 협상 관련 등의 정책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11월 중간선거까지는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마크롱 입장에서는 이번 방미가 트럼프와 유럽의 교량 역할을 할 기회"라며 "다자주의를 강화해 프랑스가 게임의 중심에 서는 계기로 활용하는 방안 정도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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