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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브면 커브, 직구면 직구 … 류현진은 팔색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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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류현진은 영리한 볼배합과 안정된 제구력으로 워싱턴 타자들을 제압하며 올 시즌 3승을 거뒀다. 워싱턴 전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영리한 볼배합과 안정된 제구력으로 워싱턴 타자들을 제압하며 올 시즌 3승을 거뒀다. 워싱턴 전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여러 구종을 잘 섞어(mix) 던졌다. 아주 수준 높은 피칭이었다.”

직구·커브·커터·슬라이더 4종 구사 #올시즌 3연승, 올해 10승 청신호 #정확한 컨트롤로 강속구 투수 꺾어 #로버츠 감독 “매우 수준 높은 피칭”

데이브 로버츠(46) LA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31)의 투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다저스 선발진의 맨 끝자리, 5선발로 올 시즌을 시작한 류현진의 팀 내 입지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류현진은 2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 경기에서 7이닝 동안 2피안타 무실점(8탈삼진)으로 호투, 시즌 3승(무패)을 올렸다. 다저스는 홈런 3개를 터뜨리며 4-0으로 이겼다.

평범한 1승이 아니었다. 워싱턴은 지난 2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2015년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이자 홈런 1위(8개) 브라이스 하퍼가 타선을 이끌고 있고, 마운드 위의 맞대결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고 오른손 투수 중 하나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였다.

시즌 3승에 성공하고 평균자책점을 1.99로 낮춘 류현진은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오늘 내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의 컨트롤이 모두 잘 됐다. (3경기 연속 8삼진 이상을 잡은 비결도) 제구 덕분이었다. 오늘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영리한 전략을 세웠고, 안정된 제구로 이를 실행했다. 3번타자 하퍼, 4번타자 라이언 짐머맨과 정면이 아닌 측면 승부를 펼친 것이다. 유일한 위기였던 3회가 이날 피칭의 백미였다.

1-0으로 앞선 3회 초 류현진은 2사 1루에서 하퍼에게 볼 3개를 연속으로 던졌다. 홈런타자의 적극성을 자극했지만 하퍼는 말려들지 않았다. 류현진은 물러나지 않고 체인지업과 직구를 던져 볼카운트 3볼-2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9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내줬지만 스스로 “좋은 승부였다”고 할 만큼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류현진 2018시즌 성적

류현진 2018시즌 성적

이어 짐머맨을 상대할 때도 코너워크를 하느라 3볼-0스트라이크에 몰렸다. 그러나 류현진은 짐머맨이 기다릴 만한 직구를 던지지 않고 체인지업과 커브로 풀카운트를 만들었다. 피하는 듯 하면서도 피하지 않는 승부 끝에 6구째 커터가 빠져 또 볼넷이 됐다. 만루가 되자 다저스타디움은 침묵에 빠졌다. 그러나 류현진은 5번타자 모이세스 시에라에게 커터 2개를 연속으로 던져 유격수 땅볼로 쉽게 잡아냈다. 다저스타디움 5만908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류현진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류현진은 “원래 볼넷을 내주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하퍼와 짐머맨보다 시에라가 (상대하기) 좋은 상대이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던졌다”고 말했다. 팽팽한 접전에서 만루 상황을 계산하고 던졌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시에라를 시작으로 류현진은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13타자 연속 아웃을 잡아냈다. 최고 시속 150㎞의 직구가 스트라이크존 외곽을 찔렀고, 커브, 커터, 체인지업이 불규칙하게 홈플레이트 위를 통과했다. 내셔널스 타자들의 노림수가 번번이 빗나갔다. 모든 구종이 수준 높게 컨트롤 된, 피칭의 ‘버라이어티 쇼’ 같았다. 로버츠 감독이 특종 구종이나 상황을 언급하지 않고 전체적인 피칭을 극찬한 이유였다.

류현진은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할 때만 해도 직구와 체인지업 의존도가 높았다. 강속구 투수가 아닌데도 단조로운 ‘투 피치’를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대신 컨트롤과 경기운영이 워낙 뛰어나 3선발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류현진은 2015년 왼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제3 구종인 슬라이더 비중을 높였고, 커브와 커터를 새로 익혔다. 몇 달 만에 새 무기를 장착해 실전에 활용했지만 지난해까지는 구위와 제구의 편차가 있었다.

지난해 25경기에 등판에 이어 올해는 어깨 부상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면서 류현진의 피칭 수준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직구를 포심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로 구분해 던지고, 4가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던지고 있다. 보통 같은 폼으로 여러가지 변화구를 던지면 제구가 흔들리기 마련인데 2018년 류현진은 그렇지 않다. 첫 번째 등판(4월 3일 애리조나전 3과3분의 2이닝 3실점)에서만 불안했을 뿐 이후 3경기 19이닝 동안 볼넷을 4개만 내줬다. 이제 류현진의 주무기를 꼽기 어려울 만큼 모든 구종이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

현재 5선발인 류현진의 등판 일정은 수시로 바꿨다. 이날 등판에 앞서 휴일은 나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가 전날 7이닝 4실점으로 패하면서 류현진의 부담은 더 커졌다. 그러나 류현진은 어려운 변수들을 잘 관리했다. 신중하게 시속 156㎞의 강속구를 잇따라 던진 상대 투수 스트라스버그보다 류현진이 더 공격적(89개 투구 중 스트라이크 59개)이었다. 류현진은 “오늘 볼넷을 내줘서 기록은 안 좋아졌겠지만 (내용은) 괜찮았다. 상대 타선이 강한데다 스트라스버그와 대결하는 날이었다. 실점을 최소화 하자는 마음으로 던졌다”고 말했다. 정확성이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한판이었다.

로스앤젤레스=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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