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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사랑과 정성 쏟은 강원도 문막 산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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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1)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편집자>

산막의 별은 어둠 속에 더욱 빛난다. 밤하늘의 별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철학자의 마음이 된다. [사진 이정환 감독]

산막의 별은 어둠 속에 더욱 빛난다. 밤하늘의 별을 의미 있게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철학자의 마음이 된다. [사진 이정환 감독]

전원생활. 내 꿈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전원생활에 대한 내 꿈은 어느 정도 이뤄졌고 나 또한 많이 즐기고 있기도 하지만 여기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행복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 믿는다.

누군가 나에게 이젠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 한다면 소이부답(笑而不答)하겠다. 답하지 않고 그냥 웃고 말 것이다. 어느 누가, 때로는 나의 아내가 "당신 언제까지 일을 벌일 거예요?" 한다면 아마도 "나 죽을 때까지"라고 말할 참으로 간 큰 남자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이 꿈은 크고 강렬했다. 강원도 문막의 이 집 짓고 가꾸어 온 지난 15년간 참으로 많은 정성과 사랑을 부었다. 나중에 은퇴하면 살아야 할 곳이었기에 그랬겠지만, 뭘 하나 만들더라도 후일을 생각해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잔디밭이 그렇고 연못이 그렇고 원두막이 그러하며 독서당이 그랬다. 마지못해 사 놓은 땅이 멋진 데크와 부엌이 되어 손님 맞이하기에 꼭 필요한 시설이 되었다.

15년간 정성과 사랑 쏟아부은 문막의 전원주택

산막 Main House 전경. [사진 권대욱]

산막 Main House 전경. [사진 권대욱]

널찍한 2중 데크에 작은 무대와 비 피할 원두막, 음향시설과 노래방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연못의 홍수량과 배수 용량, 물넘이의 높이를 가늠할 때엔 옛날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원두막에 앉아 좋은 글 읽을 때면 옛 선비를 생각했다.

많은 사람과 같이 일했다. 목수·미장·콘크리트·조적·배관·전기·설비·조경 등 거의 모든 공정의 기술자들이었다. 포크레인·크레인·덤프트럭 등 중장비 기사도 수없이 불렀다. 많은 인테리어 업체와 직원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많이 배우기도 했다.

건설사 20년 경력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도 알게 됐으며, 사람 다루기가 참 쉽지 않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꼈다. 집 짓고 가꾸고 만드는 동안 내내 그랬다. 그래서 이제 웬만한 일엔 잘 놀라지 않거니와 누가 집 짓는다 하면 참견할 만큼 됐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 울적할 때, 직장 그만두고 야인으로 돌아갈 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다짐할 때 이곳 산막에서 나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속이고 버려도 언제든 돌아갈 곳 있다는 사실만큼 든든한 것이 없다. 그래서 더욱 당당할 수 있고, 자신 있게 ‘전원장무호불귀(田園將蕪胡不歸)’를 읊조릴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생각난다. 비 오는 어느 저녁 메어지는 가슴 안고 산막 가던 길. 그때 귀거래사 시구인 ‘귀거래혜 전원장무 호불귀(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 돌아가자 돌아가 전원이 장차 황폐한 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겠느냐)’가 떠올랐다.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했지만 내심 다시 돌아갈 날을 의심치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에서 서교 하얏트 제주 사장의 제의를 받았고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의 대표 제의를 받았다. 세월이나 낚고 있던 야인에게 두 번씩이나 벼슬길을 열어준 이 땅이 그래서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 산막스쿨. [사진 권대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 산막스쿨. [사진 권대욱]

많은 사람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리저리 연 닿은 사람, 이런저런 모임, 동창, 선·후배, 아내의 친구, 선생님, 학생, 멘티까지. 아마도 줄잡아 1000명은 족히 될 듯하다. 청춘합창단, 계산 비즈니스포럼(KBF), 다국적기업한국CEO모임(KCMC), 세계경영연구원(IGM)도 왔다. 외국인부터 국회의원·장관·시장·연주자·시인·화가 등 온 사람의 직종도 다양하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권해 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번 왔던 사람은 나를 만날 때마다 이곳 이야기를 하고, 개 안부를 묻고 또 오고 싶어 한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싶다.

여러 사람이 다녀가고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가 모여 한 역사를 이룬다. 별 밤 모닥불 옆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노래가 추억이 되고, 시가 되고, 꿈이 되었다. 채소를 키웠고, 닭을 쳐봤다. 매일 아침 그 닭이 낳은 계란을 가져오는 기쁨에 젖어보기 하고, 연못 속 버들치의 힘찬 몸짓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계곡 길 원시림을 산책하며 나를 잊어도 봤고, 2년여를 혼자 칩거하며 나 자신과 처절하게 맞닥뜨려도 봤다. 분수대를 만들고 원두막을 만들었으며 나무를 해보고 장작을 팼다. 기계를 다루고 리어커를 끌어 봤다. 기르던 개가 마을 닭을 모조리 쓸어버려 거금을 물어주기도 하고, 명 다한 놈을 양지 녘에 묻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다.

같이 하던 식구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고, 그들의 뜻과 몫을 내가 인수해 오늘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문화·먹거리 함께 하는 ‘에코힐링 커뮤니티’ 만들 터

산막의 독서는 그 질이 다르다. 한 줄 읽고 한나절을 생각하는 읽음이다. [사진 이정환 감독]

산막의 독서는 그 질이 다르다. 한 줄 읽고 한나절을 생각하는 읽음이다. [사진 이정환 감독]

환경(Echology)과 문화(Culture)와 좋은 먹거리(Organic)가 함께 하는 에코(ECO)힐링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다. 환경을 보전하고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며 좋은 분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 일이 그 근간이 될 것이다. 메주 띄우고 된장 간장 만들고 김장김치 담그고 항아리마다 아름다운 이름표를 붙여 때 되면 맛을 볼 것이다.

봄·가을·여름· 겨울 좋은 날 잡아 연주자, 시인, 묵객들을 모시고 멋진 만남을 만들 것이다. 삶에 지쳐, 일에 지쳐 고단하고 힘든 분에게 휴식과 치유의 공간을 만들 것이다. 젊은이에게 사람으로 가는 길을 알릴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이다.

언제까지 그 꿈 꿀 거냐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내가 꾸는 꿈은 늘 진행형이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꿈 꾸기는 지속될 것 같다.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만은 행복할 거라 믿는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곳에 터 잡고 집 짓고 사는 이야기, 그곳에서 이루려는 나의 꿈, 자연과 개들 이야기, 고독과 맨몸으로 부딪치며 얻어진 내면의 소리 등 나 스스로 체험하고 느낀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순서도 체계도 없고, 시도 때도 없겠지만 그침은 없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란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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