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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법원, "출신 지역 어디든 목숨값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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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했을 때 중국의 배상금 산정 기준은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르다. 주민등록의 일종인 후코우(戶口)가 도시에 있느냐, 농촌에 있느냐에 따라 출신지역 판정이 갈린다. 배상금은 도시 출신이 더 많이 받는다. 3배 이상 받는 경우도 있다. 농촌 출신보다 수입이 안정적이고 더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후코우 때문에 사람의 '목숨 값'에 차등을 둔다는 것은 사회주의 정신에 반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온전치 않은 중국의 현실에 동떨어진 규정이라는 것이다.

4일 상하이(上海)의 유력지 동방조보(東方早報)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인민법원이 '목숨 값은 같다(同命同價)'는 정신에 따라 농촌 출신의 교통사고 상해자에게 도시 주민에 준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1세 소년 팡팡(方方)은 길을 건너다 화물차에 치여 오른쪽 팔과 골반이 탈골돼 10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치료비로 8319위안(약 106만원)이 들었다. 팡팡의 가족은 2004년 안후이성의 한 농촌에서 허페이시로 이사했다. 팡팡의 아버지는 비정규직인데다 은행 적립금도 변변찮아 도시 후코우를 취득하기가 어려웠다. 팡팡 가족은 그래서 농촌 후코우 상태로 허페이에서 살았다. 2003년 12월 최고인민법원이 규정한 상해.사망사고 배상금 산정 기준에 따르면 팡팡은 농촌 주민 1인당 평균 순소득을 가정해 2만5000위안을 배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3만9500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팡팡 가족의 생활 기반이 도시이고 팡팡 아버지의 수입이 일정했다는 점에서 도시 후코우 보유자와 동일한 배상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올 1월 충칭(重慶)에선 3륜차를 타고 등교하다 교통 사고로 사망한 여중생 3명에게 후코우에 따라 각각 다른 배상금을 판결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농가 출신 학생에게 지급된 배상액은 9만위안이었으나 도시 후코우를 가진 학생에겐 20만위안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후코우(戶口)=농촌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국민을 농민과 비농민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일종의 주민등록제도. 1950년대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막아 사회 안정을 꾀하고자 만들었다. 농촌 후코우를 갖은 사람이 도시에서 생활할 경우 도시 후코우 보유자가 받는 교육.의료.주택 등 복지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또 차량.주택 구입 때 도시 후코우를 가진 사람보다 많은 세금과 공과금을 낸다.

정용환 기자 <good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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