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정치인의 「힘」어디서 나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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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은 70년9월의 신민당후보지명대회가 마지막이었다. 71년의 6대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김영삼·김대중·이철승씨간의 불꽃 튀는 삼파전은 온 국민의 뜨거운 시선을 모았고 1차투표에서 1위득표를 한 김영삼씨를 누르고 2차투표에서 김대중씨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과정은 소설보다 더 스릴있고 박력넘치는 정치드라마였다.
당시 신민당의 이 치열했던 후보경쟁과정과 극적인 지명대회 자체가 신민당과 그 후보에게 커다란 선거운동의 효과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과가 뻔했던 공화당의 박정지후보 지명대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우리정치에 다시 그런 대통령후보 경선이 있을까.
오늘날 3김씨가 지도하는 3개야당은 앞으로 다른 변수가 나오지 않는 한 3김씨를 다시 대통령후보로 지명할 것이 뻔하다.
과거 일사불란이란 말은 야당이 여당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요즘 야당은 여당이상으로 일사불란하니까 3김씨에 대항해서 당내에서 누가 경선에 나서리라고는 현재로선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여당인 민정당에서 사상 처음으로 후보경선이 벌어질 것인가.
최근 노대통령은 6·29선언 1주년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기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경선론을 또한번 밝혔다. 그는 당내에서 「힘을 발휘하는」지도그룹이 형성되고 그들중에서 자연스럽게 2, 3명이 부각돼 경선으로 갈 수 있지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이 그룹의 「힘발휘」가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며 힘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에서 스타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단히 중요한 언급이라고 생각된다.
노대통령은 현재의 민정당지도부인사들 가운데 「힘을 발휘하는」그룹이 먼저 형성되고 그들간의 경쟁에서 압축되는 2, 3명간의 후보경선을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정치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민정당의 경우 힘은 대체로 「임명」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당총재인 대통령이 요직에 임명하면 힘을 쓰고 해임하면 힘을 잃고 그냥 평의창으로 돌아간다. 당원이나 소속의원의 지지여부와는 관계없이 임명에서 힘이 나오니까 민정당의 정치는 위로만 향하고 옆과 아래의 정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소수 당직자를 제외한 많은 의원들이 소외되고 의원들은 지도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게 됨으로써 만성적인 불만과 무력감을 갖게 된다. 의원들의 불만과 소외감이 커질수록 비례해서 지도부의 지도력도 떨어지게 된다. 일종의 악순환인 것이다. 창당이후 민정당이 계속해서 앓아온 병이다.
13대국회에 들어와서는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된 것 같다. 당이 표류한다느니, 당에 구심력이 없다느니, 당무력화니 하는 불평·개탄들이 의원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온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임명에서 오는 힘은 당을 끌고갈 충분한 힘이 못됨을 말해주고 있다. 소속의원이나 당원의 지지와는 무관한 지도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얼마전 윤길중대표위원이 노대통령과 3김총재의 청와대회담에 같이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거부당한 일이나 그후 추진했던 자기와 3김씨와의 4자회담 역시 성사되지 못한 것은 간단히 말해 그를 실세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난 5월말에 있은 13대국회개원리셉션에서 3김씨 주변에는 소속의원들이 대거 몰리는데 윤대표주변에는 민정당의원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야당측은 기세를 올리는데 민정당은 왜 이러냐는 지적이 여권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있는 것처럼 임명에서 오는 힘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자기 힘으로 요직을 차지하고 힘을 발휘한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고 서로 잘 보이려는 사람들로 들끓을 것이다.
따라서 임명의 방식으로는 「힘을 발휘하는」그룹이 형성되기 어렵다. 힘을 얻을 다른 방식을 생각해야하는데 그것은 곧 경선이고 당내 민주화다.
자기능력과 자기주장으로 표를 얻고 지지기반을 가져야 「힘」이 나오는 것이다. 표가 많은지, 적은지 확인하는 과정도 없이 요직에 앉아봐야 객관적으로 힘을 인정받지 못한다.
민정당에는 오늘날 누가 표가 많은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까 당총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힘이 없고 실세가 형성되지도 못한다.
누가 표가 많은지는 선거를 해봐야 한다. 선거를 통해 다수표를 얻는 사람이 나와야 「힘을 발휘하는」사람도 등장할 수 있다. 70년의 신민당후보지명대회가 그토록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을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다. 정치인의 힘의 뿌리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고 민주적 과정으로 그 지지가 확인됨으로써 발현되는 것이다.
민정당이 「힘을 발휘하는」지도그룹을 형성하자면 지금같은 임명방식이 아니라 먼저 경선이 있어야 한다.
경선을 한다면 의원들의 소외감은 손쉽게 해소되고 당은 무력감은 커녕 활력이 넘치게 될 것이다. 표를 얻으려는 경쟁으로 어떤 의원도 소외될 겨를이 없을 것이고 평소 그렇게 구해도 안나오던 의견도 경쟁적으로 백출할 것이다. 다수표를 얻어 당당하게 요직을 차지한 사람은 당총재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야당으로부터 실세가 아니라고 괄시받는 일도 물론 없어질 것이다.
「임명」에서 힘을 얻는 방식으로는 「힘을 발휘하는」2, 3명의 지도그룹이 언제 「자연스럽게」형성될는지 까마득할 뿐이다.
이런 얘기가 민정당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논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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