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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론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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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무조건 큰 게 좋다던 시절, 텍사스는 그 상징이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유머 한 토막.

한 장님이 텍사스로 여행을 갔다. 비행기 의자가 무척 컸다. "어이쿠, 의자가 침대만 하네." 옆에 있던 승객 왈, "텍사스에선 모든 게 크다오."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시켰더니 맥주잔이 함지박만 했다. "맥주잔도 엄청 크네." 옆에 있던 주객 왈, "텍사스에선 모든 게 크다오".

이 장님 쉬가 마려워 화장실에 갔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세 번째 문으로 들어갔다가 그만 수영장에 빠지고 말았다.

사색이 된 장님이 외쳤다. "물 내리지 마요, 물 내리지 마요."

텍사스가 론스타(Lone Star: 외로운 별)로 불리게 된 건 알라모 전투 때다. 원래 멕시코 땅이던 텍사스에 백인들이 몰려와 집 짓고 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독립선언을 한다. 그게 1835년 11월이다. 남의 땅에 빌붙어 살게 해 줬더니, 웬 독립선언? 멕시코는 즉시 대군 7000여 명을 보내 응징에 나섰다. 183명의 인원으로 맞서 싸웠던 텍사스 민병대는 전원 알라모 요새에서 전사했다. 독립을 부추겼던 미국은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이게 '홀로 외롭게 싸운 별(론스타)'의 유래다. 미국 국기에서 별은 주(州)를 상징한다.

당시 전투가 꽤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던지 알라모와 론스타는 이후 미국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단골 메뉴가 됐다. 1960년 존 웨인 주연의 '알라모'부터 2004년 작까지 TV 드라마와 영화로 20여 편이 만들어졌고(우리의 '성웅 이순신'은 저리가라다), '상기하자 알라모(Remember the Alamo)'라는 구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상기하자 진주만(Remember the Pearl Harbor)'으로 이어졌다.

론스타 펀드는 91년 댈러스에서 출범했다. 스타타워.극동건설에 이어 최근 외환은행 매각으로 수조원을 남겼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투자한 외국 펀드 중 가장 많이 벌었다. 크게 노는 품새가 역시 텍사스 출신답다. 그래도 세금 한 푼 제대로 안 낸다고 한다.

약이 오른 국세청은 세금을 꼭 물리겠다고 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가 하면, 3일 개막한 임시국회는 '론스타 게이트'를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기세등등하다. 썩은 회사, 부실 은행이라며 내치더니 이런 뒷북이 따로 없다. 국부(國富) 유출을 막기는커녕 '국부(局部)'만 '노출' 한 채 '상기하자 론스타(Remember the Lone Star)'를 외치게 될까 걱정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