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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도 보통의 비즈니스” 6대째 이어온 교토 수공예 기업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카이카도의 차통. 차를 담는 금속제 용기로 130단계의 공정을 거쳐 손으로 만든다. [사진 카이카도]

카이카도의 차통. 차를 담는 금속제 용기로 130단계의 공정을 거쳐 손으로 만든다. [사진 카이카도]

차를 담는 통, 대나무 바구니. 단순해 보이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물건들이다. 사진 속 차통은 1875년 설립된 교토의 크래프트 기업 ‘카이카도’의 것이다. 143년에 걸쳐 6대째 이어지고 있는 브랜드로 지금도 100년 전 판매한 차통의 수리를 위해 가게를 찾는 이들이 있다. 대나무 바구니는 120년 전인 1898년에 설립된 교토의 대나무 공예 브랜드 ‘코쵸사이 코스가’의 제품이다. 교토산 대나무로 꽃바구니부터 채반·젓가락 등의 생활용품을 만든다.

코쵸사이 코스가의 대나무 바구니. 질 좋은 교토산 대나무를 활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크래프트 기업이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코쵸사이 코스가의 대나무 바구니. 질 좋은 교토산 대나무를 활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크래프트 기업이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두 제품은 모두 손으로 만드는 전통 수공예품이면서 현재도 활발히 판매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토의 작은 가게에서 만들어지지만 일본 전역은 물론 해외 라이프스타일숍에서도 판매된다. ‘가성비’를 따지는 요즘 손으로 만든 전통 수공예품이 이처럼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카이카도의 CEO 야기 타카히로(43)씨와 코쵸사이코스가의 5대손이자 매니징 디렉터인 코스가 타츠유키(37)씨를 서울 성수동에 있는 갤러리 상점 오르에르 아카이브에서 만났다.

지난 3월 28일 서울 성수동 갤러리 상점 오르에르 아카이브에서 만난 야기 타카히로(왼쪽)씨와 코스가 타츠유키(오른쪽)씨. 전유민 인턴기자

지난 3월 28일 서울 성수동 갤러리 상점 오르에르 아카이브에서 만난 야기 타카히로(왼쪽)씨와 코스가 타츠유키(오른쪽)씨. 전유민 인턴기자

카이카도는 차를 담는 금속 통을 만든다. 어떤 브랜드인가.  

야기-“130단계의 공정을 거쳐 손으로 차통을 만든다. 브라스(놋쇠)·양철·구리 등의 소재로 된 파이프를 잘라 뚜껑을 붙이고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망치로 두들겨 만든다. 20여명의 직원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숫자는 40개 정도다. 뚜껑이 부드럽게 열고 닫혀서 사용할 때마다 기분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교토에서 플래그십 스토어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차통을 기본으로 파스타 용기부터 주전자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카이카도]

차통을 기본으로 파스타 용기부터 주전자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카이카도]

코쵸사이코스가는 좀 더 다양한 물건을 만든다.  

코스가-“대나무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물건을 만든다. 처음에는 꽃바구니 위주였지만 지금은 생활용품을 포함해 약 1000종류의 물건을 만든다. 규슈 공방에서 10명의 장인이 다양한 형태의 꽃바구니를 만들고 생활용품은 각각 따로 계약한 4개의 공방에서 만든다. 교토·오사카 등에 3개의 단독 매장이 있고 판매 직원까지 포함해 20여명 정도가 일한다. 파리의 메종 오브제에도 매년 참여하고 있다.”

코쵸사이 코스가의 교토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코쵸사이 코스가의 교토 플래그십 스토어.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아름답지만 옛날 물건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나.  

야기-“단순히 옛날 물건으로 여길 수도 있다.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사용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끼는 고객들이 온다. 하나를 오랫동안 소유하고 싶은 이들이 특히 반긴다. 물론 변화도 줬다. 예전에는 위에서 열 수 있도록 차통이 부드럽게 올라가도록 디자인했다. 요즘에는 옆으로 잡았을 때도 열릴 수 있도록 했다. 품목도 다양화했다. 차통을 기본으로 커피 캔이나 파스타 용기 심지어 파나소닉과 함께 스피커도 만든다.”

카이카도의 차통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부드럽게 열리고 닫힌다. [사진 카이카도]

카이카도의 차통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부드럽게 열리고 닫힌다. [사진 카이카도]

코스가-“바구니를 짤 때 쓰는 기법을 가지고 지갑·가방 등도 만든다. 이세이 미야케 등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도 한다. 다른 대나무 상점에서는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제품을 만들었던 게 고비를 넘기는 힘이 됐다. 파산한 회사들은 물건이 안 팔리면 시장이나 사람들의 취향의 문제라고 이유를 대지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계속 만들어줘야 결국 소비자들이 인정한다.”

대나무를 엮는 가공방식을 활용해 지갑부터 가방 등 다양한 물품을 만든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대나무를 엮는 가공방식을 활용해 지갑부터 가방 등 다양한 물품을 만든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카이카도는 6대째, 코쵸사이코스가는 5대째다. 가업을 잇는 것이 자연스러웠나.  

야기-“차통 소비가 줄면서 아버지가 영어를 공부해서 다른 일을 하라고 권했다. 영문과를 나와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에만 집에 와서 거들었다. 어느 날 미국인 여자 손님이 차통을 사갔는데 선물용이 아니라 본인이 사용할 것이라고 하더라.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공예라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어야겠다는 건 아니었다. 멋있는 일이고 좋아서 시작했다. 아이에게 공예로도 돈을 벌 수 있고 멋있을 수 있다는 비전을 주고 싶다.”

카이카도의 6대째 오너 야기 타카히로씨. [사진 카이카도]

카이카도의 6대째 오너 야기 타카히로씨. [사진 카이카도]

코스가-“어릴 때는 대나무 공예가 촌스럽고 유행에 뒤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패션 회사에 취직해 일하던 중 코쵸사이의 경영을 도맡아 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경기도 좋지 않을 때였고, 걱정돼서 도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 라이프스타일 숍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대나무 바구니가 젊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팔렸다. 가능성이 보였다. 이후 13년간 지금 판매하는 1000종류 중 500종 정도를 확장했다.”

코쵸사이 코스가에서 5대째 일하고 있는 코스가 타츠유키씨는 매니징 디렉터로 일하면서 대나무를 소재로한 다양한 물품들을 기획했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코쵸사이 코스가에서 5대째 일하고 있는 코스가 타츠유키씨는 매니징 디렉터로 일하면서 대나무를 소재로한 다양한 물품들을 기획했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고비도 있었을 것이다.

야기-“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물자가 부족해 금속 제품을 만들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아버지가 절반만 군수 물자로 반납하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어 놨다. 전쟁 후에는 차통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손으로 만드는 게 가격이 너무 안 맞아서 판매가 줄었다. 가게 앞에 약방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뒤에서 조금씩 만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단계를 손으로 만드는 카이카도의 차통. [사진 카이카도]

모든 단계를 손으로 만드는 카이카도의 차통. [사진 카이카도]

코스가-“대나무 소재 산업 자체가 쇠퇴하면서 생태계가 무너졌다. 좋은 대나무를 공급하는 회사도 있어야 하는데, 점점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좋든 싫든 코쵸사이가 대나무 산업 자체를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대나무밭을 소유하거나 직접 계약해 이들에게 일정한 수익을 줘야 한다. 판매가 더 잘되어야 하고 목표를 더 높게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 시장을 노크하는 이유다.”

교토의 공방에서 10여명의 장인이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 바구니를 만든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교토의 공방에서 10여명의 장인이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 바구니를 만든다.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일본의 전통 공예는 어떤 지원을 받나.  

야기-“일본에도 지원제도는 있지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공예는 생활밀착예술이다. 문화재 개념이 생기면서 공예가 너무 높은 예술의 경지로 올라간 것 같다.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지고, 혼자 고립돼버렸다. 공예도 보통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뭔가를 만들지만, 공예가는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만드는 것이 맞다.”

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카이카도]

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카이카도]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보도 중요하다.  

야기-“2년 전 교토에 카이카도 카페를 만들었다. 좋은 물건을 체험해 봤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카페에서 400년 된 도자기 컵이나 그릇·차통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예가 쉽게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
코스가-“젊은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대는 돈이 없어서 좋은 물건을 살 수 없다. 하지만 갖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는 있다. 이들이 30대가 되면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것들을 구매한다.”

교토에 있는 카이카도 카페 외관. [사진 카이카도]

교토에 있는 카이카도 카페 외관. [사진 카이카도]

손으로 만든 공예품에는 어떤 가치가 있나.  

야기-“차통 옆면에 인장을 찍는데 디지털로도 찍어봤고 망치로 두들겨서도 찍어봤다. 당연히 손으로 찍은 것이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사용하다 보면 더 눈길이 간다. 마모되면서 맛이 살아난다. 아주 미묘한 질감이지만 인간은 그 차이를 알아보고 더 가치 있게 느낀다.”

차통은 망치로 두드려가며 만든다. 공방에 있는 망치들은 거의 반쯤 닳아있다. [사진 카이카도]

차통은 망치로 두드려가며 만든다. 공방에 있는 망치들은 거의 반쯤 닳아있다. [사진 카이카도]

코스가-“기계로 완벽하게 만든 것을 보면 불안감이 생긴다. 소리가 전혀 없는 방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현대인들은 오히려 결여된 부분, 부족한 부분에서 안정감과 매력을 느낀다. 공예의 불완전한 매력에 관심을 갖는다. 요즘에는 대기업들이 이런 공예 정신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동 리서치를 하거나 협업 제안도 많다.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에도 공예의 가치를 넣고 싶어 한다.”

코쵸사이 코스가의 대나무 젓가락.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코쵸사이 코스가의 대나무 젓가락. [사진 코쵸사이 코스가]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 전유민 인턴기자, 카이카도, 코쵸사이 코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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