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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식 베이글이 궁금하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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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8면

빵요정의 빵투어: '코끼리 베이글'

십여 년 전 유학시절의 사진 폴더를 정리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큼직하고 호쾌하게 생긴 베이글 위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툼하게 발린 크림치즈, 그 옆에는 손글씨로 갈겨 쓴 영어 이름이 적힌 일회용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2.5달러 정도의 온기 넘치는, 유학생용 아침 메뉴였다. 하나를 채 다 먹어 치우지 못할 정도의 묵직한 포만감과 다양한 맛의 베이글, 샌드 크림들은 매일 아침 쪼르르 달려가 골라 먹는 나름의 호사였다. 이런 추억으로 내게 베이글은 투박하고 든든한 주식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동그란 구멍이 가운데 뚫려있는 고리 모양의 빵. 베이글은 19세기 후반 동유럽의 유대인 이주민들을 통해 미국 뉴욕과 캐나다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이 두 도시에서 굳어진 스타일에 따라 베이글을 구분하기도 한다. 뉴욕 스타일이라 하면 큼직하고 한껏 부푼 볼륨을 자랑하는 모양에다 달걀을 넣지 않은 반죽을 끓는 물에 데쳐 오븐에 굽는 공정을 거친다.

이에 반해 몬트리올 스타일은 뉴욕 베이글에 비해 사이즈는 약간 작지만 가운데 뚫린 구멍의 크기는 꽤나 큼직하다. 계란을 넣고 소금을 뺀 반죽을 뜨거운 꿀물이나 설탕물에 데친 다음 나무 화덕이나 돌화덕에 구워낸다는 점이 다르다. 반을 갈라보았을 때 촘촘한 정도가 더 높은 편이고 반죽 위에 깨나 포피시드(poppy seed)라 불리우는 양귀비 씨를 뿌리는 것이 몬트리올 스타일 베이글의 특징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몬트리올식 베이글이 뭐지?’라며 확인하고 싶다면 이곳, ‘코끼리 베이글’을 추천한다. 상권이 그리 발달되지 않은 서울 양평동 냉동창고를 임대한 빵집인데, 이탈리아산 참나무 화덕을 넣고 몬트리올 스타일의 베이글을 굽는다.

몬트리올식을 택한 건 이유가 있다. 2017년 5월 ‘코끼리 베이글’을 오픈한 천홍원 대표는 이전까지 빵을 만들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의류사업과 우리나라 베이커리 카페의 원조격인 L 브랜드에서 숍매니저로 7년 이상을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사업을 준비하며 직원 구하기부터 레시피 개발까지 이러저러한 시행착오 와중에도 한 가지 믿음은 있었다. 늘 손님들의 기호와 아이템의 상관관계를 주시하고 성공의 키를 간파하는 내공이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양파, 블루베리가 들어간 베이글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크림치즈에 덮혀 버리는 맛보다는 빵만을 먹었을 때도 맛있는 베이글이 반응을 얻겠구나 했죠.”

화덕으로 몬트리올식 베이글을 구우면, 비록 만들기는 번거롭지만, 수율도 낮은 아날로그 방식이라 맛과 섬세한 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화덕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베이글을 큰 삽으로 꺼내어 다양한 이름표가 달린 철제 바스켓에 채워지는 광경과 은은하게 퍼지는 화덕의 온기 덕에 오픈 초기부터 지역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휴무일이 있었지만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아 365일 영업을 할 정도가 됐다.

앙크림 베이글

앙크림 베이글

매일 오전 8시반 가게 문을 연다. 첫 빵은 플레인과 버터솔트 베이글로 시작한다. 특히 버터 솔트 베이글은 인기 절정의 대표 메뉴. 폭신하고 쫄깃한 식감의 베이글과 달리 살짝 딱딱하면서도 차가운 온도의 버터가 만드는 갭이 매력이다.

가볍고 부드러운 생크림 토핑의 베이글 중 흑임자 생크림 베이글도 그 고소함 덕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밖에 콩쑥크럼블, 치즈, 단팥, 시금치, 앙크림, 베이컨 레드페퍼, 대추잣시나몬 등 쉽게 맛볼 수 없는 베이글의 맛을 선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흑임자 생크림 베이글

흑임자 생크림 베이글

여기에 커피 파우더를 사용한 아이스 카페 라떼나 이곳만의 수제 맥주를 곁들이면 베이글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버터솔트 베이글

버터솔트 베이글

이제 채 한 돌이 안 된 ‘코끼리 베이글’은 또 한 번 실험 중이다. 베이글과 함께 만들던 샌드위치 파트를 따로 분리하여 ‘코끼리 샌드위치’ 라는 자매 브랜드를 최근 냈다. 스페인산 하몽을 풍성히 얹어주는 하몽 샌드위치, 문어를 듬뿍 넣어 만든 뽈뽀 샌드위치 등 특색 있는 메뉴를 앞세워 코끼리 같은 묵직한 걸음으로 앞을 향하고 있다. ●

▶코끼리 베이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 176
070-4184-0082
오전 8시 30분~오후 8시
휴무일 없음, 주차공간 없음

『작은 빵집이 맛있다』 저자. ‘김혜준컴퍼니’대표로 음식 관련 기획·이벤트·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했다. ‘빵요정’은 그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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