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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VIP클럽 100개…마스터스, 비즈니스에 물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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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2면

[성호준의 주말 골프인사이드] 새 골프 성지로 뜨는 오거스타 

새 골프 성지로 뜨는 오거스타

새 골프 성지로 뜨는 오거스타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

“마스터스 안 오면 골프계서 찬밥” #지역 공항에 비행기 댈 곳 없어 #개최지 오거스타시 더불어 성장 #주요 기업들 대회 중 큰 집 빌려 #먹고 마시고 즐기는 파티장 열어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메인 게이트 앞에는 십자가와 이런 푯말을 든 사람 서넛이 있었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낙태 여성, 포르노 중독자, 스포츠광, 동성애자 등등이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이다. 그들은 매년 마스터스 때면 ‘깃발 꽂힌 천국’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 앞에 나타나 지옥을 얘기했다. TV로 시청하는 사람들은 마스터스 하면 융단 같은 페어웨이를 연상하겠지만 골프장 바깥도 말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5년 만에 다시 가 본 마스터스는 확 달라져 있었다. 클럽은 골프장 인근 땅을 대거 사들여 주위를 깨끗이 정리했다. 지옥 피켓 든 사람이 설 땅이 없었다.

예전엔 마스터스 대회가 열릴 때 오거스타시(市) 길이 많이 막혔고 주차장도 부족했다. 골프장 인근 집 주인들은 ‘하루에 주차비 10달러’라는 푯말을 내걸고 영업했다. 이번엔 그런 풍경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은 골프장 절반 정도 크기의 매머드급 무료 주차장을 지난해 만들었다. 규모도 대단하지만 시설도 깔끔한 마스터스급이다.

VIP 센터 이용권 하루 500만원

오거스타에는 세계 최고의 골퍼뿐 아니라 전 세계 부호들이 몰려 든다. 사진은 기념품을 파는 머천다이즈 숍. [성호준 기자]

오거스타에는 세계 최고의 골퍼뿐 아니라 전 세계 부호들이 몰려 든다. 사진은 기념품을 파는 머천다이즈 숍. [성호준 기자]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골프장은 골프 클럽 내를 철저히 통제했다. 이제는 골프장 바깥도 컨트롤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전 국무장관과 사진을 찍고 싶은가. 5번 홀 그린 뒤쪽에 있는 VIP 호스피탈리티 센터인 버크맨스 플레이스(Berckmans Place)에 가면 된다. 2012년 오거스타 내셔널의 첫 여성 회원이 된 라이스가 그해 완공된 버크맨스 플레이스에서 그린 재킷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사진도 함께 찍어 준다.

골퍼들에게는 꿈의 공간이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7, 14, 16번 홀 그린을 복사한 퍼팅 그린이 있다. 마스터스처럼 흰색 점프 슈트를 입은 캐디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퍼트 놀이를 할 수 있다. 건평 약 2530평의 건물엔 고급 레스토랑이 3개가 있는데 다 공짜다. 음식이 매우 맛있고 다양해 어느 정도 살찔 각오를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꽤 비싼 굴 요리도 달라는 대로 준다.

세이지 밸리 골프장. [성호준 기자]

세이지 밸리 골프장. [성호준 기자]

주당에게도 천국이다. 바는 싱글몰트 위스키 25종 등 다양한 주류를 구비했다. 역시 공짜다.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도 판다. 골프장에 들락날락하면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아무나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버크맨스 플레이스의 주간 이용권 가격은 6000달러(약 640만원)나 한다.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 대회 스폰서 등 관계자에게 10장 미만으로 판다.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하루 이용권 암표가 500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오거스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첨단 시설을 갖춘 새로운 미디어 빌딩을 세웠다. 기념품을 파는 머천다이즈 숍도 두 배 크기로 새로 건축했다. 일 년에 딱 일주일 쓸 시설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투자다.

마스터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쇠락하던 도시 오거스타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 대회 기간에 오거스타 지역에는 VIP를 위한 호스피탈리티 클럽이 100여 개 정도 들어선다. 미국의 주요기업들은 큰 집을 빌려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파티장을 만든다.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약 20분 거리에 세이지 밸리 골프장이 있다. 천재 설계가 톰 파지오가 디자인한 명코스다. 페어웨이 관리가 완벽하고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오거스타 내셔널과 흡사한 분위기가 난다. 대회 기간 빌라(방 5개) 하나를 일주일 빌리는 데 5000만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사와 골프가 공짜다. 버크맨스 플레이스 같은 VIP 접대시설이다.

골프존 미국지사 임동진 대표는 “다른 메이저대회들은 돈만 내면 골프장 내에 호스피탈리티 텐트를 설치하게 해주는데 마스터스는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오거스타 인근 지역이 호황”이라고 말했다.

5분에 한 대씩 비행기 뜨고 내려

버크맨스 플레이스. [성호준 기자]

버크맨스 플레이스. [성호준 기자]

오거스타 비행장은 대회 기간 중 5분에 한 대씩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선수들의 비행기도 있지만 대부분 돈 많은 VIP의 전용기다. 오거스타 공항에 비행기를 댈 곳이 없어 인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콜럼비아, 아이켄 비행장도 마스터스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오거스타에는 세계 최고 골퍼 뿐 아니라 최고 부호들이 몰려온다.

골프계에서는 시골에 있는 골프 클럽인 오거스타 내셔널이 미국골프협회(USGA), 영국왕립골프클럽(R&A),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등을 제치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고 본다. 이제 골프의 메카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가 아니라 오거스타라는 것이다. 골프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대회는 상관없지만 마스터스 대회에 오지 않으면 골프계에서 대우받지 못한다”라고 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협회나 연맹이 아니라 골퍼들의 모임인 클럽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 골프의 주도자라고 자임하는 듯하다. 세계 골프를 키우겠다며 아시아 퍼시픽 챔피언십, 라티노 챔피언십 대회를 열고 있다. 어린이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도 열기로 했다. 장기적으론 프로들이 나오는 여자 마스터스까지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터스는 그냥 골프 대회가 아니다. 마스터스는 골프를 컨트롤하고 있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아멘 코너에 땅 뺏기는 옆집 오거스타 CC

11~13번 홀 아멘코너

11~13번 홀 아멘코너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과 오거스타 컨트리클럽(ACC)이 있다. 마스터스 대회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보다 ACC의 역사가 오히려 길다. 1916년 문을 열었으며 1930년대 여자 메이저대회였던 타이틀 홀더스 챔피언십도 개최했다. 공교롭게도 두 명문 골프장은 붙어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 쪽에서 보면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11~13번 홀 아멘코너(사진)가 접경이다.

ACC는 지역 명문 프라이빗 클럽이지만 마스터스의 위용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프라이빗 클럽인데도 마스터스 기간 “세계 최고 선수들의 경기 소리를 들으며 라운드할 수 있는 유일한 클럽”이라며 일반인에게 라운드권을 비싸게 판다. ACC에서 엉뚱하게 잘못 친 샷이 오거스타 내셔널 12번 그린과 13번 티잉그라운드에 날아오기도 한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파 5인 13번 홀(510야드)의 티잉 그라운드를 뒤로 옮길 계획이다. 13번 홀은 유서 깊은 아멘 코너의 마지막 홀이어서 그동안 손을 대지 못하다 늘이기로 했다. ACC 땅 일부를 ‘거절할 수 없는 가격’을 주고 구매했다. ACC 페어웨이가 잘려나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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