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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오른 '2세 여아 성폭행' 사건…알고보니 일방적 '마녀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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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기. [중앙포토]

우는 아기. [중앙포토]

‘제주지방경찰청에서 알려드립니다’

경찰, 페이스북에 "증거 없다" 적극 해명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제주경찰청은 “최근 제주도에서 택시기사가 2세 여자 아이를 납치해 성폭행 했다는 주장의 글이 미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게시돼 확산되고 있다”며 “2월 23일부터 관련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철저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동이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온라인 계정에 수사 결과를 공개하며 사건에 대한 해명에 나선 것은 사례가 거의 없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2세 여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의 글을 9일 페이스북에 올렸다.[사진 제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제주지방경찰청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2세 여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의 글을 9일 페이스북에 올렸다.[사진 제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경찰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월 11일 시작됐다. 2세 여아를 둔 미혼모 A(34)씨는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딸이 유괴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60대 택시기사 B씨를 유괴범으로 지목하며 택시의 차량번호를 경찰에 알렸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제주의 한 해안에서 B씨를 발견했다. 그런데 B씨는 택시 안에서 평온한 모습으로 A씨의 딸을 안고 재우고 있었다. B씨는 경찰에게 “A씨가 아이를 맡아 달라고 해서 돌봐 주고 있었다”며 “A씨에게 왜 이렇게 안 오느냐고 전화도 했다”며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B씨의 휴대전화에는 A씨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건 기록이 남아 있었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12월쯤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사건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12일 저녁 딸의 사타구니 부위가 빨개진 것을 확인한 A씨는 13일 제주해바라기센터에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또 23일에는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문의 소견을 토대로 아이의 증상이 곰팡이균으로 인한 피부 질환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B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도 ‘진실’로 나타났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A씨에게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검찰로 넘기겠다”고 알렸다. A씨도 “알겠다”고 수긍했다. 경찰 관계자는 “2세 아동에 대한 성폭행 사건은 굉장히 심각한 범죄일 수 있기 때문에 수사를 철저히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6일 뒤인 지난 5일 A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 ‘제주도에서 24개월 안 된 아기가 강제 추행당했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널리 퍼트려 달라”는 댓글도 남겼다. 네티즌들은 A씨의 폭로 글에 많은 공감을 보냈다. A씨의 글은 한 네티즌에 의해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도 올랐다. 이 제안에 대한 동의 건수는 나흘 만에 6만여 건을 돌파했다. ‘택시기사를 사형에 처하라’는 등 비난 댓글까지 쇄도했다.

결국 제주경찰청이 페이스북을 통해서까지 B씨의 혐의가 없다는 점을 밝혀야 했다. 하지만 B씨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성범죄자가 돼 버렸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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