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시 난파한 '샐러리맨의 꿈'…시한 넘겨 합의한 STX조선, 끝내 '법정관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월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안민터널 입구 돌리사거리에서 STX조선 노조원들이 STX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담긴 자구안에 반대하는 거리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3월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안민터널 입구 돌리사거리에서 STX조선 노조원들이 STX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담긴 자구안에 반대하는 거리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클락슨이 집계한 선박 수주 잔량 세계 4위, 연간 수주실적 세계 3위.'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STX조선해양이 거둔 성적표다. 50대의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강덕수 전 회장이 2001년 대동조선을 인수해 키운 이 회사는 한때 전 세계 조선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STX조선해양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설문한 '한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8위에 오르기도 했다. GS칼텍스(9위)나 삼성SDI(10위)도 당시 STX조선해양에는 미치지 못했다. STX그룹에서 근무했다 퇴사한 한 관계자는 "연봉은 비교적 넉넉지 않았지만,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 창업자와 직원들 모두 세계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회사를 함께 만든다는 열정으로 가슴을 뛰게 했던 회사였다"고 회상했다.

금융위기 이후 생존과 파산 사이에서 외줄을 타온 STX조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STX조선은  노사확약서 제출 시한인 9일 자정을 넘겨 오전 1시30분께 "사측이 준비한 자구안에 (노조도 동의한다는) 의견 근접을 이뤘으며, 노사확약서를 10일 중 제출하겠다"고 합의 내용을 밝혔다. 그러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10일 오전 입장 자료를 내고 "시한을 넘겼으므로 예정대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의 합의가 늦어진 건 '생산직 75%(500여명) 감축' 안을 제시한 사측의 안에 노조가 끝까지 반대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산가치 더 높아 '법정관리는=청산' 의미 

이로써 이동걸 산은 회장이 지난달 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힌 대로 STX조선은 법정관리(법원 주도 기업회생) 절차가 진행된다. 지난해 7월 법정관리 졸업 후 9개월 만이다. 법정관리 과정에서 만에 하나 인수자가 나타나면, 회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썬 회사를 청산했을 때의 가치(청산가치)가 기업을 계속 운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계속기업가치)보다 높아 '법정관리는 곧 청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생산직과 사무직 등 1300여명의 정규직 직원 모두가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동걸 회장은 STX조선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 "산은은 회사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끌고 갈 능력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TX조선의 흥망은 한국 조선·해운업의 운명과 함께했다. 강덕수 회장은 2001년 인수한 쌍용중공업을 기반으로 대동조선(STX조선해양), 아커야즈(STX유럽)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STX그룹을 재계 서열 13위에 올려놨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해운 업황이 악화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2012년 STX조선은 물론 STX팬오션, 지주회사 ㈜STX 등이 모두 1조3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하던 그해 5월, STX그룹은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업황은 회복되지 않았고 2013년 11월 '샐러리맨의 신화'는 무너졌다. 이때부터 산업은행이 STX조선의 최대주주로 올라서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8조원 가량의 정책자금이 집행됐지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부은 격'이 됐다.

성동·STX조선 처리, 문재인 정부 구조조정 '이정표'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있을 기업 구조조정에서도 노사 간 자구 노력이 없는 기업은 원칙대로 처리하는 기조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법정관리행은 이 같은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방향성을 확인하는 대표적인 '이정표'가 됐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는 '시장 원리'를 앞세웠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낮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는) 한국GM과 관련해 원칙을 냈고 금호타이어에 이 원칙을 적용했다"며 "(STX조선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조·대주주·채권단 등 이해당사자가 고통을 분담하라는 메시지였지만 이들은 끝내 자구 노력을 통한 회생안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