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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가상현실로 … 영화관 풍경이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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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VR 콘텐트 어디까지 왔나

관객들이 최초로 4D VR로 제작된 영화 ‘기억을 만나다’ 기술 리허설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각도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사진 (주)바른손이앤에이]

관객들이 최초로 4D VR로 제작된 영화 ‘기억을 만나다’ 기술 리허설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각도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사진 (주)바른손이앤에이]

지난달 개봉한 최신 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는 주인공이 가상현실(VR) 세계에 접속해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VR 체험용 장갑을 낀 주인공에게는 코너링의 짜릿함까지 손끝에 전해졌을 터. 영화는 2045년이 배경이지만, 이는 미래의 얘기만은 아니다.

영화 '보는' 시대에서 '노는' 시대로 #4D VR영화 ‘기억을 만나다’ 개봉 #헤드셋·현기증 등 단점 개선돼야

국내에선 이미 2년쯤 전부터 VR룸·VR카페 등이 서울 강남·홍대·신촌 등 도심 번화가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VR 체험용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갖추고 오락실이나 노래방에 가듯 가볍게 다양한 VR 콘텐트를 유료로 즐기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놀이기구처럼 몸을 싣고 4D로 즐기거나, 여러 명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슈팅 게임·방탈출 게임 등을 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도심형 유료 VR테마파크도 생겨나고 있다. 통신사 KT와 GS리테일이 손잡고 지난달 초 신촌에 문을 연 ‘브라이트(VRIGHT)’, 게임 제작사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지역주도형 VR 콘텐츠 체험존 조성 지원사업)으로 지난달 30일 홍대 부근에 6개층 규모로 개장한 ‘VR스퀘어’등 정부지원이나 대기업도 가세했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현재 서울만 해도 소형 VR룸은 50여 곳, 규모가 있는 VR테마파크는 10여 곳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킬러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재방문률을 높여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브라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플라잉제트’를 체험해봤다. 전신을 받쳐주는 놀이기기에 선 채로 탑승해 헤드셋을 착용하는 방식이다. 로봇 수트를 착용하고 있는 듯한 시점의 화면이 펼쳐졌다. 격렬한 전투 와중엔 놀이기구가 급격히 기울고 정면에서 선풍기 바람이 불어 실제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김장원 점장은 “한 달 만에 누적 방문자가 4000명을 넘었다”며 “친구, 연인뿐 아니라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도 많다”고 전했다.

VR 콘텐트 ‘화이트래빗’. 체험자의 움직임에 따라 토끼도 함께 움직인다. [사진 덱스터 스튜디오]

VR 콘텐트 ‘화이트래빗’. 체험자의 움직임에 따라 토끼도 함께 움직인다. [사진 덱스터 스튜디오]

영화사나 극장도 VR 콘텐트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영화 ‘신과함께’의 공동제작사 덱스터 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덱스터는 VR 단편 영화 ‘화이트 래빗’과 VR 호러 웹툰 ‘살려주세요’를 개발해 각각 ‘브라이트’와 서울 용산 CGV의 ‘V 버스터즈’에 선보이고 있다. ‘화이트 래빗’은 제목처럼 흰 토끼가 되어 이상한 나라로 10분간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 극 중 거울 속 토끼가 이용자의 실제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살려주세요’는 비 오는 밤마다 문간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에 얽힌 사연을 만화 한 칸 한 칸 속에 들어간 듯 몰입감 있게 구현했다.

유태경 덱스터 디지털 휴먼&VR연구소장은 “미국과 유럽에는 극장 형태의 VR 체험관이 많지만 한국·중국·일본에서는 탈 것처럼 즐기는 아케이드 게임형 VR이 더 각광받는다”면서 “상호작용이 간편한 VR 게임 방식을 활용하되, 궁극적으로는 보다 흡입력 있는 VR 맞춤형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려 한다”고 했다. 덱스터는 ‘청년 경찰’의 김주환 감독이 연출한 공포물 ‘지박령’, 장형윤 감독이 연출한 SF 애니메이션 ‘프롬 디 어스’등 10분 안팎의 VR 콘텐트를 여러 플랫폼에 선보이며 반응을 살펴 나간다는 전략이다.

기존 영화처럼 극장의 객석에 앉아 체험하는 방식의 국산 VR 영화도 등장했다. 바른손이앤에이의 4D VR영화 ‘기억을 만나다’(감독 구범석)는 지난달 31일부터 엿새 동안 서울 용산 CGV의 4D상영관 한 곳에서 개봉했다. 청춘 로맨스 영화로 37분 남짓한 분량이다. 스토리가 평면적이고 체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반응도 나왔지만, 울고 있는 남자 주인공(김정현 분)의 얼굴을 여자 주인공(서예지 분) 시점으로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장면은 실제 배우와 마주한 듯 몰입감이 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을 포함해 이 영화의 총 사업비는 13억 원. 제한된 기기 탓에 회당 40명만 관람했다. 엿새로 정한 상영 기간 매일 5회 상영이 매진되더라도 수지타산이 맞진 않는다. 한시적, 시험적 개봉인 셈이다.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영화를 개발한 1년 전 예측보다 VR 대중화 속도가 더뎌 전국 5~6개관에서 순회 상영하려던 계획을 서울 1개관으로 축소했다”며 “수익구조가 정착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게임이든 영화든 VR이 좀 더 대중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은 체험용 헤드셋이 무겁고, 저화질로 인해 현기증이 날 수 있다. VR 콘텐트가 대부분 10분을 넘지 않는 이유다. 30분이 넘는 ‘기억을 만나다’는 비교적 가벼운 345g의 삼성 갤럭시 기어 VR에 삼성 노트8 스마트폰을 장착해 상영했다. 그래도 헤드셋이 자꾸 흘러내려 손으로 받치고 보는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안경을 낀 경우는 헤드셋 아랫부분이 뜨면서 공백이 생겨 콘텐트 몰입이 어렵다.

그럼에도 VR 산업, 특히 콘텐트 개발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공간을 자유로이 구현하며 몰입감을 안겨준다는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선 20세기폭스가 ‘마션’ ‘혹성탈출’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토대로 한 VR 콘텐트를 선보이고 있다. 국산 블록버스터 중에는 NEW가 투자·배급한 좀비 재난영화 ‘부산행’이 올해 안에 VR 영상·게임 등 다양한 콘텐트를 포함한 투어쇼 형태로 재탄생한다. NEW의 자회사 콘텐츠판다가 싱가포르 회사와 글로벌 판권 계약을 맺고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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