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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는 성공에 20% 영향, 인간관계 지능이 중요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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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25면

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 [인생스토리] ① 송병락 전 서울대 부총장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송병락(79)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제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한국경제론을 집대성한 학자로 꼽힌다.

경제학 대중화 앞장 #어려운 경제학 만화로 쉽게 풀어 #『한국경제론』 옥스퍼드서도 출간 #분배보다 성장 우선 #손자병법에 나오는 우직지계처럼 #우회적으로 성장 거쳐 분배해야 #한국 경제가 갈 길 #부자가 제일 많은 스위스 본받아 #반도체·휴대전화 1등 지속해야 #젊은이들에게 조언 #귀인을 잘 만나 도움 많이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 많이 줘야

저서 『마음의 경제학』(1987년)을 바탕으로 만화가 이원복 교수(현 덕성여대 총장)와 함께 제작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경제학 서적으론 드물게 1990년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일반 대중이 어려워하는 경제학을 만화로 쉽게 풀어 설명했다는 평가다. 이후 『한국·한국인·한국경제』『국제화시대의 세계경제』『부자국민 일등경제』까지 총 네 권의 경제학 만화 시리즈를 냈다.

경제학자로 연구 실적도 눈에 띈다. 『한국경제론』(1981년)을 집대성하고, 세계 최고의 경제학 논문집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국내 경제학자로 처음 단독 논문을 기고했다. 이러한 공로로 1982년 제정된 한국경제학회상의 첫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학자라면 누구나 책을 내고 싶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사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1990년)를 펴냈다.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송병락 명예교수가 서울 여의도에서 본지와 인터뷰했다. 부총장 시절 방문객 기념선물로 만든 대관감 은 3층 양식으로 5000원권 지폐에 있는 율곡 이이의 2층 양식과 다르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송병락 명예교수가 서울 여의도에서 본지와 인터뷰했다. 부총장 시절 방문객 기념선물로 만든 대관감 은 3층 양식으로 5000원권 지폐에 있는 율곡 이이의 2층 양식과 다르다. [최정동 기자]

 부모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께서는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혼사라든지, 집을 사고판다든지 꼭 옆 사람과 상의하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10명을 거느릴 수 있는 십인지장 100명, 1000명을 거느릴 수 있는 백인지장·천인지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보다는 이런 인재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세계 최고 저널 이코노메트리카에 단독 논문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배경은.
“아는 분이 금융조합과 은행에 다녔는데 아주 잘살았다. 그쪽으로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제학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대 상대에 입학하면 입학금, 등록금, 4년간 하숙비, 책값 다 주는 좋은 장학 제도가 생겼다. 운 좋게 합격했고, 그렇게 해서 상대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다.”
 경제학자로 업적이 많다.
“열심히 공부해 2년 반 조금 넘어 석사·박사를 다 끝냈다. 경제학 2대 저널 중 하나로 이코노메트리카가 있다. 보통 두세 명이 써서 논문을 내는데 혼자 단독으로 냈다. 학자들이 책을 가장 내고 싶어하는 데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인데 내가 쓴 책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1990년)가 거기서 나왔다. 한국 사람으론 처음이다.”
2001년 이원복 교수(왼쪽)와 만화 경제학 『부자국민 일등경제』를 펴냈다. [중앙포토]

2001년 이원복 교수(왼쪽)와 만화 경제학 『부자국민 일등경제』를 펴냈다. [중앙포토]

 유학 시절 일화는.
“처음 미국에 갔더니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가 조금 넘는 나라에서 왔다는 열등감 같은 걸 많이 느꼈다. 태국 부자 아들이 저에게 수학을 배우겠다고 해서 가르쳐 줬다. 그 학생이 저에게 좋은 차를 싼값에 줬다.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는 차였다. 그때 돈도 없었는데 ‘송병락이 한국에서 제일 잘사는 집 아들이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경제에서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
“사실 분배가 중요하다. 손녀들이 있는데 작은손녀에게 큰손녀 잘났다고 하면 ‘흥’ 이러고 질투 같은 걸 느낀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손자병법에 우직(迂直)지계라고 있다. 직(直)공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우회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들어 성공한 나라는 없다. 경제 성장을 우선 많이 시켜놓고 분배를 하고, 우회적으로 성장을 거쳐 분배해야 한다.”
 『한국경제론』 집대성으로 한국경제학회상 첫 수상자가 됐다.
“『한국경제론』은 지금까지 국문으로는 5판을 냈다. 이 책을 세계 수준의 이론서로 펴내야 한다고 해서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를 옥스퍼드대에서 출간했고, 3판까지 나왔다. 스위스에서 내 이론과 가까운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글로벌경쟁력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책 1만여 권, 집 무너진다 해 일부 기증

1990년 이 교수와 처음 제작한 만화 경제학 『자본주의 공산주의』.

1990년 이 교수와 처음 제작한 만화 경제학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원복 교수와 만화 시리즈를 낸 계기는.
“박용성 두산 회장이 책방에 가보니 전부 나라가 안된다는 책만 있는데, 나라가 잘된다는 책은 송병락의 『마음의 경제학』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때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고,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박 회장이 만화가인 이원복 교수(현 덕성여대 총장)와 함께 『마음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같이 쓰기로 하고 소련, 헝가리, 동독에 갔다. 마침 동독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망치로 부서지는 광경을 봤다.”
 학자로 한눈팔지 않고 연구와 강의에 매진한 배경은.
“미국 보스턴에서 MIT·하버드 교수와 합동 세미나를 했다. 실력은 ‘택’도 없는데 겁도 없이 1년간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적성이 아무래도 공부라고 생각했다. 동창회나 ROTC동기회 같은 모임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모임에 다 따라다니면 공부를 못한다. 하버드대 도서관에선 저의 책을 7권씩 사놓고 학생들에게 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한 권씩밖에 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책을 빌리러 가면 이미 대출돼 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사서 공부했고, 지금도 많이 산다. 한때는 책이 1만 권 넘게 있었는데 집이 무너진다고 해서 일부를 버리거나 기증해 지금은 7000권이 있다.”
 서울대 부총장 시절이 연구 외 분야를 맡은 유일한 기간이다.
“부총장을 하라고 해서 안 한다고 했다가 임명도 받기 전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많은 분이 학교에서 왜 봉사를 안 하느냐고 해 결국 맡게 됐다. 하기로 결정을 하고 갔더니 자가용도 있고, 수행비서도 있었다. 국가 예산을 이렇게 수행비서에 써도 되는가 생각을 했다. 막상 일이 시작되니까 정신이 없었다. 연세대는 사립대라 부총장이 4명이나 있는데 봉급도 더 많다. 혼자서 4명분을 하니까 국가 예산을 많이 절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의과대학·간호대학·수의과대학 일, 그다음에는 공대 일, 컴퓨터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정신이 없었다. ‘파 죽음’이 돼 오후 5시가 되면 회의 탁자에 의자를 깔아놓고 쓰러져 있었다. 5분 정도 있다가 보면 비서가 결재받을 사안이 기다리고 있다며 들어왔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외국 사람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를 소개할 때였다. 서울대에는 교수, 학생, 직원을 포함해서 사람이 3만3000명이고, 실험동물 7만7000마리가 있다고 하니 모두 웃더라.”
작은 노트용 책을 무료로 나눠준다던데.
“회사의 회장에게 줘도 기분 좋아할 선물, 제일 밑 신입 사원이 받아도 좋아할 선물이 뭔가 하다가 이걸로 정했다. 제목은 ‘항상 더 좋은 길이 있다, 다른 길도 있다(Better way, Different way)’다. 책을 펴보곤 깜짝 놀란다(백지이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마음이 맑은 분들은 글자가 다 보인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데 일본과 중국 사이 나아갈 길은.
“분명한 답이 있다. 스위스다. 시장경제를 가장 잘했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했다 하는 곳은 많은데 세계에서 부자가 제일 많은 곳은 스위스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사이에 있지만, 이들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 한국도 반도체·TV·휴대전화는 일본을 넘어섰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1등이다. 골프장도 1등이고, 골프도 1등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

서울대 부총장 임명 전 사표 냈다 맡아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똑같은 것을 수없이 찍어내는 게 상품이다. 명품은 소수를 찍는 거다. 작품은 딱 하나만 찍어내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신의 ‘작품’이다. 쌍둥이도 손금이 다르다. 창의는 손으로 하는데, 손금과 손을 다르게 만들어 놨으니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속에 신경과 핏줄이 연결돼 있다. 이런 건 신이 아니면 도저히 못 한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신이 들어 있다고 한다. 자기의 적성을 잘 살리면 엄청난 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아이큐(IQ)가 낮아서 틀렸다’고 하는 젊은이가 많다.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의 지능은 20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김연아 선수, 이수만 프로듀서, 정주영 회장, 칭기즈칸은 아이큐가 몇인지도 모른다. 아이큐는 언어 지능과 수리 지능 두 개만 가지고 따지는 거다. 아이큐는 살아가면서 성공의 15~20%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지능이다. 제일 중요한 기술이 귀인의 도움 받는 기술이다. 귀인을 잘 만나서 도움을 받고, 귀인이 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줘야 한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인 ‘우리 시대의 멘토’는 이번 회부터 ‘인생스토리’로 바꿔 연재합니다.


송병락 전 서울대 부총장은
1939년 경북 영주 출생
1959~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5~1966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근무
1966~1967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1967~1970년 미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1970~1971년 미 하버드대 포스트닥터 과정 , 케네디스쿨 리서치 펠로
1971~1980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 산업정책실장
1980~2004년 서울대 경제학과·경제학부 교수
1990~1991년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1992~1994년 서울대 세계경제연구소장
1998~2000년 서울대 부총장
2004년~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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