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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78호 31면

책 속으로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비채

경단녀·맘충이 유행어가 된 시대 #여성들 차별·배제 방치해야 하나 #엄마·아내를 넘어선 자유가 중요 #각계 여성의 경험담 잇따라 나와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최윤아 지음, 마음의숲

엄마 말고 나로 살기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조우관 지음, 청아출판사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
이주희 지음, 니들북

눈 건강과 숙면에는 치명적이라고 하지만 늦은 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여 신간을 뒤적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여느 때보다 부쩍 여성문제에 관한 책이 많은 것 같다.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유행어로 떠오르는 상황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더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비판은 쉽지만 개선은 쉽지 않은 까닭에 실존적 고통을 함께 나누는 책들이 반가웠다. 현실은 무겁게 느껴지고 희망을 짓는 일이 어렵지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인터넷 책 장바구니는 언제라도 가득하다.

엄마 말고 나로 살기

엄마 말고 나로 살기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는 친구를 떠올리게 한 책이다. 친구도 야마다 모모코처럼 출산 후의 몸과 마음의 극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시종일관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야마다씨처럼 재미난 캐리커처에 센스 작렬 문구를 넣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재주는 없지만 말이다. 야마다의 타고난 낙관성에 저절로 웃음 짓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또 다른 친구는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힘내라고 격렬히 호응해줬다. 어떤 좌절과 피로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책에도 현실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숨겨져 있다. 샤워할 때조차 욕실 문을 열어두어야 하는 엄마들에게 야마다의 그림은 과장이 아니다. 무너진 몸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일터로 가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얹혀 있는 엄마들이 많다. 『섹시함은…』을 읽으며 씩씩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

누군가로부터 들은 ‘구두 신고 먹는 밥이 맛있다’는 말은 어쩐지 쓸쓸하다. 자기 개성과는 무관하게 여성에게는 자주 능력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가족제도가 요구하는 바를 지켜가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가능한가. 여성들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선택과 배제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맘, 전업주부, 경단녀, 맘충 등의 말에는 배제와 차별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는 ‘결혼 후 그들은 덜 중요한 일을 권했다’, ‘결혼과 동시에 뚫린 퇴사 고속도로에서’, ‘알파걸에서 전업주부로’ 등의 소제목만 보고도 마음이 들썩거렸다.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 대목이었다. 저자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사한 아내에게 남편은 공부방을 마련해주었다. 저자는 그 공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서서히 회복되었다. 으레 서재는 남자들의 작업실처럼 여겨지지만 아내들에게도 안방이나 거실, 부엌 이외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녀들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나이 들어 ‘나는 누구인가’ 허망하게 되물을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들을 자주 던지며 나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직장과 가정, 두가지 짐을 지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다. [중앙포토]

직장과 가정, 두가지 짐을 지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다. [중앙포토]

인간은 누구에게나 고독할 권리가 있다. 이 땅의 여성들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매 순간 전투적으로 살지 않아도 좋을 시공간은 누가 어떻게 만드나. 어떻게 ‘가짜 평온’에서 탈출할 것인가. 『엄마 말고 나로 살기』,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 같은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들을 하였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꿈꾸기를 멈추지 않을 때 길은 조금씩 열린다고 저자들은 말했다. 꿈꾸는 이들을 베는 것보다 잔인한 일이 있을까. 제도와 규범이 통과해내지 못하는 곳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힘겨울 것이니 아직 더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야 할 것이다.

어렵게 침묵을 깨고 성폭력 상처를 드러내는 여성들에게 일과 가사, 육아의 불균형과 힘겨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다른 차원에서 소외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글도 배움도 없이 더 많이 상처받았던 여성들이 고스란히 우리 안에 있을 것이어서 역설적이지만 더이상 치열하지 않게, 느긋하게 사랑을 배우고 싶다. 문정희 시인은 “오늘 저녁은/ 지금까지의 저녁이 아니다/ 놀랍지 않은가/ 이 낭떠러지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일 (…) 태어날 때 이미 내 손에 도착한/ 선물이/ 꽃잎의 시간이/ 무수한 축복의 뿌리를 달고 있음을/ 이제야 본다는 것/ 놀랍지 않은가”(‘당신을 사랑하는 일’)라고 노래한 바 있다. 이미 내게 주어진 축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놀라움과 닿아 있으며, 그 변화 가능성이라는 것을 쫓는 것이 삶의 의미일 것이다. 사랑은 늘 멀리 있지만 말이다.

이근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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