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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해서 한국 가자던 '엄마와의 약속'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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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3일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도착한 하인스 워드가 호텔 여직원에게서 환영 꽃다발을 받으며 특유의 '살인 미소(assassin smile)'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1976년 3월 8일. 서울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에서 새까만 아이가 태어났다.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아였다.

그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부모는 곧바로 이혼했다.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어머니는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어머니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아버지도 아들을 키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는 루이지애나의 할아버지 집에서 자라야 했다. 여덟 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 호텔 청소부, 잡화점 점원 등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의 숙제를 돕다가 능숙하지 못한 영어 때문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흑인 혼혈의 서러움과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외로움,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 아들은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운동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인스 워드(Hines Ward.30). 2월 미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수퍼보울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미국에서도 영웅이 된 워드가 3일 어머니 김영희(59)씨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입국장에서 워드가 처음으로 한 말은 "성공해 꼭 어머니와 함께 고국을 찾고 싶었다.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다"였다. "성공해 함께 한국에 가자"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애틀랜타발 대한항공 KE036편으로 한국을 찾은 워드 모자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다른 승객들이 내린 후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워드는 회색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김영희씨는 화사한 무늬의 재킷과 바지를 입었다.

워드는 한국에 간다는 설렘 탓인지 비행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매우 긴 여행이어서 피곤하다"면서도 "한국의 산과 섬들이 너무 예쁘고 좋다"고 했다. 그는 "내가 태어난 병원도 가보고 관광도 하고 한국음식도 다 먹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오른팔에 한글로 '하인스 워드'라는 문신을 하고,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절반의 한국인(half Korean)"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워드는 지난달 샌디에이고에서 벌어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하기도 했다.

수퍼보울 당시 "그녀는 나의 전부(She means everything to me)"라며 "내가 앞으로 아무리 잘 해드리더라도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것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워드였다.

워드는 이날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내내 어머니 가방까지 2개를 어깨에 들쳐 메고 걸었다. 수십 명의 기자가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부었지만 워드는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고, 미소를 지으며 성실하게 대답해 "역시 겸손한 스타"라는 말을 들었다.

인천공항=강갑생.이충형 기자

◆ 수퍼보울 MVP 하인스 워드=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는 2월 6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40회 수퍼보울에서 43야드짜리 터치다운을 기록, 시애틀 시호크스를 21-10으로 꺾는 데 수훈을 세우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미국프로풋볼(NFL)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이며 결승전인 수퍼보울은 프로 스포츠 가운데 초당 방송 광고료가 가장 비싼 빅이벤트다. 수퍼보울 MVP는 골프 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마스터스 대회의 챔피언이나, 미국프로농구(NBA)의 최우수선수와 비견되며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과 면담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워드의 포지션은 쿼터백의 패스를 받는 게 주 임무인 와이드 리시버(Wide Receiv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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