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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페북 게이트'가 보여준 빅데이터 시대의 재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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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상현 IT평론가·메디아티 콘텐츠 랩장

박상현 IT평론가·메디아티 콘텐츠 랩장

페이스북이 곤경에 빠졌다. 주가는 6년 만에 처음으로 160달러 선이 붕괴했고,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가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의회는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를 청문회에 세우기로 했다. 게다가 저커버그가 청문회에 나온다면, 구글과 트위터의 최고경영자도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이번 사태는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용자 정치 성향 그대로 노출 #빅데이터 관리에 소홀한 때문 #세계적 플랫폼 기업 예외 없어 #사용자 정보 수집·관리 대책 내야

이번 문제의 핵심은 사용자 정보의 유출이다. 페이스북의 느슨한 사용자 정보 관리정책으로 수많은 사람의 정보가 그러한 정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보 유출 사고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민감한 개인정보들은 주로 주민등록번호나 연락처, 신용카드번호, 계정의 비밀번호 등이다. 그런 정보는 악용될 경우 특정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번에 유출된 정보는 그렇지 않다. 사용자들이 어떤 포스트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어떤 페이스북 페이지를 좋아하는지와 같은 언뜻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정보이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정보들이다.

그런 작은 정보들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기업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선거운동본부에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심리 성향을 분석해 제공했다. 트럼프 당선 후 미국에서는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정황을 파악했는데, 그 과정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회사가 수행한 작업은 현재 수사 중인 트럼프-러시아 커넥션의 열쇠가 될 만큼 중대한 단서가 된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어떻게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좋아요’ 같은 정보 만으로 그들의 심리성향을 분석할 수 있었을까. 바로 빅데이터의 힘이다. 전 세계에서 20억이 넘는 사용자를 가진 페이스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좋아요’와 같은 정보는 그 자체로는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그 방대한 규모 때문에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확도로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시론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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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빅데이터 시대에는 특정 개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에 관해 대단히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른 포스트를 10개만 확보하면 그 사용자의 직장 동료보다 그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70개면 그의 친한 친구보다, 150개면 그의 부모보다, 300개면 그의 배우자보다도 더 정확하게 그를 파악할 수 있다. 워낙 거대한 데이터를 통해 효력을 검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용자 정보라는 빅데이터 관리에 소홀했던 페이스북은 2014년에야 위험성을 깨닫고 정책을 수정했지만, 그때까지 유출된 5000만 명의 데이터는 철저하게 분석돼 미국 대선 당시 타깃 광고에 사용됐다.

우리는 이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빅데이터의 문제는 이제까지의 개인정보와 달리 단순히 단속만 잘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페이스북이 이번 사건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빅데이터 형태로 수집된 사용자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페이스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구글·트위터·아마존 등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사용자 정보를 빅데이터로 외부 회사와 공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를 완전히 금지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용자 정보의 수집·관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값진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사용자 정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모든 기업이 사용자 정보를 얻어내고 활용하기 위해 안달이다. 일단 얻어진 사용자 정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의 손으로 넘어갔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페이스북은 애초에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제3자에게 넘겨준 정보를 모두 찾아 파기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과 제공 등의 절차가 투명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줘야 한다. 페이스북이 아니라 어떤 기업이라도 마찬가지다.

박상현 IT평론가·메디아티 콘텐츠 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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