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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대통령 개헌안 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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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 <2018년 3월 22일 30면>
이런 개헌 방식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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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틀째 개헌안 쪼개기 발표를 이어갔다. 헌법이란 국가의 통치조직과 작용의 기본 원리와 국민 기본권을 규정하는 근본 규범이다. 그 가치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체적 맥락에서 살펴야지 어느 한두 가지 규정만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한 번에 개헌안 전체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게 타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전체 공개 없이 변경된 내용 일부만, 그것도 찔끔찔끔 발표하는 것은 TV 중간광고처럼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이런 절차적 문제 외에 내용 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헌법 전문에 보수진영이 자랑스러워하는 산업화 역사는 빼고 ‘부마 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진보진영이 강조하는 역사만 집어넣어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헌법학자가 고개를 젓고 있는 이유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환경과 국토의 균형적 개발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데는 원론적으로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자칫 토지·주택 거래 허가제와 부동산 이득의 사회주의적 환수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문제인데 이처럼 기습적으로 헌법에 포함시켜야 할 이유를 아무래도 찾지 못하겠다. 이미 헌법 122조가 국민의 재산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밖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청와대 개헌안의 핵심 중 하나인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제왕적이라 일컬어지는 대통령 권력을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국민’을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서 절로 지방분권과 기본권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 중임제로만 바꾼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개헌의 무게를 헤아린다면 청와대 수석회의가 아니라 적어도 모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다. 대통령이 해외 출장지에서 개헌안의 국무회의 상정, 국회 송부 등 3차례나 전자결재를 하는 것도 헌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설익은 개헌안을 서둘러 던져 놓고 국회더러 표결이나 하라는 것은 오만이며 실제로 개헌 의지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 합의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지 어느 한 진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마구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한겨레 <2018년 3월 21일 27면>
‘87년 체제’ 넘어 시대 변화·가치 담아내는 그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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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의 순차 공개에 나서면서 20일 헌법 전문·기본권 내용을 발표했다. 완결된 개헌안을 공개한 건 처음인데, 국회의 개헌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다만, 예고한 발의일(26일)이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요지만 내놓고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야당이 ‘정략적 개헌쇼’라 비판하는 와중에 굳이 사흘씩이나 ‘쪼개기 발표’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국민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의도라 해도 ‘정략적 접근’이란 오해는 피하는 게 좋다.

헌법은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한다.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을 추가한 건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국민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니 성급하다는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

또한 헌법은 미래를 예시하는 방향타 구실을 한다. 생명권, 안전권 신설은 앞으로 국가가 지향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다. 생명권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안전하게 살 권리와 국가의 재해예방 의무는,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고 언제 어디서 사고와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국민의 불안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헌법 개정은 제도 개혁의 출발점이란 의미도 지닌다.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 도입은 국민이 권력의 감시자로, 직접적인 입법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소환제가 있지만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드러나도 확정판결 전까지 책임을 지울 수 없었는데,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대의민주주의제를 보완하라는 목소리는 ‘촛불시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 삭제는 국회의 사법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에 더해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폐해가 적지 않은데, 헌법 개정으로 영장청구 주체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헌법은 그 시대의 사회·정치적 지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의 ‘국민 동원 체제’를 반영하는 ‘근로’란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 것은 뒤늦은 감이 든다. 이미 ‘노조’ ‘고용노동부’ 등 ‘노동’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게 현실이다. 국가에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수준 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부과해 남녀 차별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인 점도 긍정적이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인정하되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제노동기구나 유엔 기준을 고려하면 당연한 개정이다.

미흡한 점도 있다. 환경단체들은 지구적 생태 위기를 반영하지 못했으며, 국가의 ‘동물보호 정책 수립 의무’를 명시했지만 생명권을 ‘동물들의 권리’로 확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미투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과 여성의 대표성 강화, 성소수자 차별 시정을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논리 vs 논리
“개헌논의를 홍보 ‘쇼’로 만들지 말아야 ”vs “쪼개기 발표는 관심 높이려는 시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달 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가운데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우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흘에 걸쳐 헌법 내용을 쪼개서 발표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달 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가운데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우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흘에 걸쳐 헌법 내용을 쪼개서 발표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3월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무려 30여 년만의 개헌 착수다. 문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헌법은 국가공동체의 최고근본법으로서 공동체의 원리와 가치를 담고 있다. 헌법은 국가권력의 기초와 활동 준거가 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주권자로 살 수 있게 돕는 활동 지침이다. 입헌주의 국가에서 헌법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이 바뀌는 것과 같다. 우리는 1948년 제헌헌법을 포함하여 10회의 헌법을 겪었다. 때로는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고, 때로는 비상상황에 긴급대응으로 마련되어 헌법 정신이 현실에 뿌리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번 개헌이 남다른 점은 평화적 시기에 정부와 국회,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건축주답게 설계부터 시공까지 제대로 집이 지어지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때다.

청와대는 조국 민정수석의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사흘에 걸쳐 공개했다. 3월20일에는 헌법 전문과 기본권을, 21일에는 지방분권 및 총강과 경제부분을, 22일에는 선거제도 개혁, 정부형태, 사법제도, 헌법재판제도에 관한 개헌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같이 대형 쟁점들인데 개헌안에는 패키지로 담아야 하니 국민들에게 차분한 설명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발의안이 처음 공개된 날부터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수차례 개헌안의 내용과 진행 절차 등을 검토하고 입장을 밝혔다. 20일 사설에서 한겨레는 개헌안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헌법의 역할로는 시대 정신을 담을 것, 당대의 사회·정치적 지표가 될 것, 제도 개혁의 근거를 마련할 것, 미래를 향한 방향타가 될 것 등을 꼽았다.

반면 중앙은 격한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핵심 사안을 중심으로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5·18민주화운동과 6·10항쟁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이나, 토지 공개념 명시, 대통령 권력의 축소 장치 미비 등이다. 내용뿐 아니라 조 수석의 쪼개기 발표도 지적대상이 되었다. 한겨레가 정략적 접근이라는 ‘오해’를 피하라고 주문한 것과 비교할 때 ‘쇼’라고 질타한 건 매우 강한 어조로 보인다. 또한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를 한 것이나 국무회에서 깊은 논의 과정이 미흡한 것을 들어 설익은 개헌안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겨레는 진보적 가치를 시대적 과제로 보면서 바로 지금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중앙은 절차를 무시하고 서두르지 말 것과 권력구조나 재산권 문제를 다룰 때에는 신중하게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개헌안을 기다리다가 별 소식이 없자 대통령 발의안을 제시하였는데, 5월4일 이전까지 국회의 합의된 개헌안이 나오면 대통령발 개헌안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국회안이건 대통령안이건 개헌이 성사되면 하위법의 연쇄 개정, 즉 법 개정의 낙수 도미노가 이어질 전망이다.

개헌이 순항할지는 미지수이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쳐야 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투표와 그 중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국회에서는 개헌저지선 의석수를 가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입장이고, 국민투표에서는 투표율이 문제다. 문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서두른 까닭은 국민투표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내 정당들은 권력구조 개편과 개헌투표 시기 등을 둘러싸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치 역학과 현실 일정을 고려할 때 한 번 개헌 동력이 사라지면 다시 또 불붙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앙의 지적처럼 헌법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최대한의 숙의와 합의도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의 방향타인 헌법의 재탄생은 깊은 산통을 겪고 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