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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3색, 빚과의 싸움 나선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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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중국·일본의 중앙은행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새 임기 시작하는 통화정책 수장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취임식을 가졌다. 44년 만에 연임한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 2라운드’ 막이 올랐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8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이강(易綱)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16년간 자리를 지켰던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총재의 뒤를 이어 최근 통화정책의 키를 잡았다.

이들은 새롭게 거함의 기수를 잡아 출항의 돛을 올렸지만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발 무역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이런 부담감이 3국의 악성 고리를 짓누르고 있다. 악성 고리는 부풀 대로 부푼 빚이다. 나라별로 빚의 성격은 다르다. 한국은 가계 부채, 일본은 국가 부채, 중국은 기업 부채가 아킬레스건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유동성 잔치가 남긴 ‘저렴한 돈’의 부작용이다. 벼랑 끝에 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한 결과다.

그 부담이 다시 부메랑이 돼 돌아올 태세다. 빚의 복수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한·중·일 삼국 통화정책 수장은 부채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 곧 긴축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의 고민은 깊어 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21일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미국 기준금리는 연 1.5~1.75%다.

한국 기준금리와 비교하면 10년 7개월 만의 정책금리 역전이다. 한국의 기준 금리는 연 1.5%다.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자금이 언제든 변심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경상수지 흑자와 넉넉한 외환보유액 등으로 탄탄해진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을 보건대 자금 유출 우려는 줄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물가도 슬슬 오르고 있다. 이런데도 한국은행 입장에서 걸리는 게 급증한 가계부채다.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1451조원을 기록했다. 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금리 인상은 취약한 대출자와 한계 기업을 압박한다. 회복세를 보이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경제)성장세와 자본유출, 금융안정 등을 다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도 빚에 발목을 잡힌 형국이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노믹스의 첨병’으로 대규모 금융완화정책과 엔저를 주도하며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 일본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국가 채무는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구로다 총재에게도 골칫거리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등을 세수로 충당할 수 없어 국채 발행으로 이를 메우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1085조7537억엔(1경886조960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국채발행 잔액은 9조 달러(960조엔)가 넘는다. 일본은행은 이 중 41%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물가목표치(2%)를 달성하기 위해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은행의 보유 자산(국채 등)이 경제 규모와 비슷해졌지만 근접한 시일 내에 금리를 정상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이자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재정 건전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일본은행이 움직일 여지가 좁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국가 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은행의 과도한 국채 보유 비중은 통화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이강 인민은행 총재도 급증하는 기업 부채와 지방 정부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금융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국 기업(비금융부문)의 부채 규모는 163.4%로 미국(73.4%)과 독일(53.8%) 등 주요국에 비해 높았다. 중국 정부 전체 부채 중 지방 정부의 비중은 2007년 말 34.2%에서 지난해 6월 말 65.2%로 확대됐다.

가계부채도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7년 말 18.8%에서 지난해 6월 말 기준 46.8%로 뛰었다. 선진국(75.4%)보다는 낮지만 증가 속도가 빠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늘어나는 부채가 금융 시장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출항을 시작한 한·중·일 중앙은행호에는 벌써 강풍이 분다. 배의 키를 잡은 총재는 시험대에 섰다. 금리 인상이나 다른 통화 긴축 정책을 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 유출 우려에 늘 신경 써야 한다. 경기 과열도 걱정해야 한다. 금리 인상의 신호탄이 될 물가상승도 위험요인이다.

이들이 험한 바람을 헤치고 안정된 통화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블룸버그는 “금리를 올리면 빚 부담이 커지게 되는 만큼 아시아 주요국이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방향을 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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