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론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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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주특위의 명칭문제로 국회가 며칠씩이나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명칭을 둘러싼 여야대립은 처음 말장난하는 것처럼 누가봐도 납득못할 입씨름으로 시작되다가 차츰 광주사태를 보는 민정·평민당의 시각대립, 다시 말해 명분논적 대립으로 변질하는 양상을 보이고 이 과정에서 양쪽 진영내부에는 각기 강경파의 존재가 부상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 문제로 지금껏 공동보조를 취해온 3개 야당간에 귀열현상이 나타나고 광주사태조사라는 본질문제보다는 선명성 과시라는 당략이 작용하는 듯한 측면도 있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특위이름이 광주민주화「운동」특위거나, 「투쟁」특위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럼에도 굳이 「운동」또는 「투쟁」이 아니면 안되겠다고 서로 버티는 것은 광주문제에 있어 밀릴 수 없다는 서로의 명분다툼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명분을 앞세운 타협배제의 강경론이 양쪽에서 다같이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특위이름을 결코 양보할 수 없으며,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표결로 결판내자는 주장이 무성한 것은 바로 이기지 못하면 옥쇄하자는 양단논법이자 우리가 구시대에 익히 보아온 여야간의 투쟁논리였다. 이런 강경논리가 각당에서 각기 득세한다면 앞으로 정국은 평할 날이 없고 광주사태나 5공화국비리조사 자체도 자칫 여야 대립으로만 시종하다가 그냥 뗘내려 보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광주특위의 명칭이 어떻게 되느냐보다는 이 문제를 둘러싼 여야대립의 양태와 양쪽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경파의 대두기미를 더 우려하고 주시하게 된다.
가령 이번일을 계기로 양쪽에 강경파가 다같이 자리를 잡는다고 할때 그것은 정국의 앞날을 위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광주문제를 놓고 서로 밀릴 수 없다고 버틴 주장들이 5공화국 비리조사에서는 타협적으로 나올 까닭이 없고, 그것은 중요쟁점때마다 되풀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질 컷이다. 그런 식으로 정국이 돌아갈 경우 선거직후 여야 할것없이 그토록 입을 모아 강조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 또는 주고받기 정치가 가능할리가 없고 국회의 표류는 다반사가 될것이 뻔하다. 정국이 이런 코스로 가서는 결코 안되며, 이런 기미는 그 시초에 억제돼야 마땅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타협으로 문제를 풀자는 세력이 양쪽에서 모두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강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중에도 내심「운동」이 되든, 「투쟁」이 되든 실제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이런 문제로 이처럼 정쟁을 거듭하는 것이 명분이 약하다고도 느낄 것이다.
결국 빨리 절충해서 특위명칭문제를 결말짓는게 옳다. 명칭문제는 여야가 정면대결하기에는 명분이 너무나 서지 않고 무엇보다 이 문제로 인해 상대진영내에 강경파의 입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한쪽의 강경론은 다른쪽의 강경론을 부르고 급기야 강경대 강경의 충돌이 올때 그 결과란 뻔한 것이다. 이제 특위의 명칭이라는 표면적인 문제를 걸고 서로 의지는 내보일만큼 내보였으니 더이상 이 문제를 끌고가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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