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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워싱턴’ 올인하고 … 시진핑은 외교적 자신감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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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비핵화 이슈에 중국이 키 플레이어로 재등장하면서 남·북·미·중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시진핑 중국 주석,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중앙포토]

북한 비핵화 이슈에 중국이 키 플레이어로 재등장하면서 남·북·미·중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시진핑 중국 주석,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중앙포토]

지난달 26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처음 대면한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시선을 맞추지 못해 딴 곳을 바라봤고, 긴장한 듯 깍지를 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북한 관영TV에선 삭제됐지만 중국 측 영상엔 생생하게 드러난다. 후계자 시절 당·군 간부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던 김정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노심초사한 시절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올봄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음을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보여줬다.

“선대 유훈” 비핵화로 승부 건 김정은 #시진핑·문 대통령 만남은 전초전 #트럼프 만나 건넬 메시지가 핵심 #일각 “비핵화=북핵 포기 아니다”

김정은의 전격 방중은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 시간표를 짜둔 국면에서 이뤄졌다. ‘베이징을 거치지 않고는 서울과 워싱턴에 갈 수 없다’는 김정은의 현실 고백이다. 얼마 전까지 김정은은 중국의 유엔 대북제재 동참에 “큰 나라가 줏대 없이 미국에 놀아난다”며 베이징 지도부를 비난했다. “중·조(中·朝) 친선은 피로 맺어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시진핑이 복잡한 표정을 보인 배경이다.

한국과 미·중을 향한 김정은의 승부수는 ‘비핵화’다. 지난달 5일 대북특사를 맞아 “비핵화 목표는 선대(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강조했다는 게 특사단 수석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설명이다. 북·미 대화 의제로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김정은이 분명히 밝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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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카드에 문재인 정부는 쾌도난마식 해법인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언급할 정도로 반색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김정은이 처음 직접 비핵화를 약속한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 해체는 북한이 수십 년간 곳곳에 숨겨놓은 뇌관을 제거해야 하는 난제다. 김일성이 1980년 6차 노동당 대회에서 ‘조선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제안할 때부터 변치 않은 게 주한미군 철수 같은 전제조건이다. 김정은이 시진핑과의 만남에서 “남조선과 미국이 우리(북)의 선의에 응해 점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북한의 ‘비핵화 선대 유훈’이 핵 포기를 뜻한다면, 2012년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김정은은 유훈을 어긴 죄인이란 얘기”라고 지적했다. 비핵화란 말에 현혹돼 이를 ‘핵 포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김정은에게 진검승부는 5월 트럼프와의 만남이다. 시진핑 주석이나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벌써 “(김정은과의) 논의가 좋으면 수용하겠지만 나쁘면 회담장을 걸어 나올 것”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나면 ‘김정은 비핵화 용의’ 메시지를 백악관에 전하며 거간 역할을 한 문재인 정부는 진실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달 5일 우리 특사를 만난 뒤 외부 활동을 접고 장고한 김정은은 중국 방문길을 결행했다. 평양으로 돌아간 그는 다시 칩거에 들어갔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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