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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만에 당 떨어지는 기분" 두 아들 엄마 기자의 어린이집 보육교사 체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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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중앙일보 기자가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신영어린이집에서 일일 보육교사 체험을 했다. 임현동 기자

이에스더 중앙일보 기자가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신영어린이집에서 일일 보육교사 체험을 했다. 임현동 기자

“선생님, 쟤가 블록 빼앗았어요” “선생님, 코 풀어주세요” “선생님, 배 아파요”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신영어린이집 ‘허브반(3세반)’의 일일 보육교사가 된 기자에게 아이들의 요청이 쏟아졌다. 이날 기자는 ‘보육교사 일일 체험’에 참여했다. 우리나라 0~5세 영유아 67%(2015년 기준)가 다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서 하루를 보내며 현장을 직접 보자는 취지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행사다.

오전 8시 30분 도착해 이광은(53) 담임 교사를 보조해 15명의 아이들을 돌봤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두 아들을 둔 만큼 아이 돌보는 일에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갈 틈 없는 근무 환경 속에서 자신감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먼저 아이들을 맞이하고, 매고 온 가방에서 알림장 등을 꺼내 정리하게 했다. 이광은 교사는 “무조건 대신 해주지말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은 “내가 할래요”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손놀림은 서툴렀지만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처음 만난 기자를 보고 낯설어하던 아이들은 웃옷에 그려진 토끼 그림을 보며 “토끼 선생님”이라 부르며 살갑게 다가왔다.

자유선택놀이를 하고 있는 신영어린이집 허브반 아이들

자유선택놀이를 하고 있는 신영어린이집 허브반 아이들

오전 자유 놀이 시간엔 미세먼지가 심해 실내에 머물러야 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블럭 놀이, 인형 놀이 등을 하며 놀았다. 기자는 ‘어린이집 만들기’ 공작 놀이를 함께다. 집에서 준비해온 빈 상자에 색종이, 털실, 골판지 등을 붙여 어린이집 건물을 만들었다.

“선생님 같이 놀아요” 목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한명씩 안아 올려주며 놀다보니 이마에 땀이 흘렀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벌어지면 중재도 해야 했다. 화장실을 가리게 된지 얼마 안되는 아이들이라 배변을 참지 않도록 수시로 챙겨야 했다. 어린이집 입성 2시간 만에 ‘당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이광은 교사가 동화책을 들고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기자를 보고 낯을 가리던 수한이가 “토끼 선생님 안아주세요”라며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긴 채 동화구연을 들었다.

이에스더 중앙일보 기자가 28일 서울 신대방동 707 신영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에스더 중앙일보 기자가 28일 서울 신대방동 707 신영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점심시간이 됐다. 아이들은 돈까스, 채소 샐러드, 김치, 두부 된장국 등을 맛있게 먹었다. 교사도 아이들과 같은 메뉴로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편히 밥을 먹기는 어렵다. “선생님 이거는 뭐에요?” “선생님 목 말라요” “돈까스 더 주세요” 끊임없는 질문과 요청에 상호작용을 해야했다.

점심식사를 하는 아이들

점심식사를 하는 아이들

 이날 오후엔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영어 특별활동이 이어졌다. 한 명씩 나와 노래에 맞춰 사람 얼굴이 그려진 종이 판에 ‘주스(juice)’, ‘우유(milk)’ 등 그림 카드를 붙였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율동을 했다. 최근 교육부가 선행학습금지법을 근거로 어린이집ㆍ유치원의 영어 특별활동을 막으려다 반발에 부딪쳤다. 교육부는 “조기 영어교육은 효과가 없고 아이들의 발달을 저해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직접 지켜본 영어 수업은 ‘조기 교육’이라기 보다는 놀이에 가까워보였다.

  오후 2시~3시는 낮잠 시간이다. 이불에 눕자 이내 잠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잠이 오지 않아 보채는 아이도 있었다. “안 잘거에요” 라며 장난치던 동호 옆에 누워 등을 쓰다듬어주자 곧 잠들었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도 교사는 쉴 수 없다. 끝내 잠들지 못한 세 아이는 따로 모아 조용히 놀게 했다. 15명 아이들의 일과와 특이사항을 담은 관찰일지도 이 시간에 쓴다.

낮잠자는 아이들 모습

낮잠자는 아이들 모습

오후 4시부터 아이들이 보호자 손을 잡고 하나, 둘 집에 가기 시작했다. 5시가 되자 오후에 출근한 종일반 선생님에게 남은 아이들을 인계했다.
아이들을 보낸 뒤에도 업무는 이어졌다.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고, 교실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교구함에 쌓인 먼지를 말끔히 닦아냈다. 마무리까지 마친 뒤 6시 30분 일일 보육교사 체험이 끝났다. 어깨와 팔뚝이 뻐근했지만, 혀 짧은 소리로 “선생님”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귀여운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이렇게 하루종일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그리 좋지 못하다. 2015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하루 평균 9시간 36분을 일하고 월 평균 급여는 184만3000원에 그쳤다. 그러다보니 오래 다닐 수 없는 직장이 되고 있다. 신영어린이집의 전양숙 원장은 “능력과 열정이 넘치는 새 선생님들이 들어와도 경력만큼 급여가 오르지 않고, 학대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도매금으로 비난 당하는 분위기에 지쳐 떠나는 일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버티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20년 경력의 이광은 교사는 웃으며 답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선생님!’하고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 천진한 모습에 행복해지는걸요.”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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