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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고 닦고, 쓸고 닦고 반세기 … 직원 2만5000명 용역업체 일궈 … 웃어도 눈물 나는 ‘청소 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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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25면

[박정호의 사람풍경] 창사 50돌 삼구Inc 구자관 책임대표사원

직원들이 만들어준 종이학을 들고 있는 구자관 삼구Inc 책임사원.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직원들이 만들어준 종이학을 들고 있는 구자관 삼구Inc 책임사원.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무실에 걸린 액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말의 힘을 알려면 먼 길을 가봐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보려면 오래 사귀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구자관(74) 삼구Inc 책임대표사원의 좌우명이다. “옛 금언을 모은 『명심보감』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걸 되새깁니다.”

사람·신뢰·신용 중시 ‘삼구’ #건물 경비·주차 관리 등 영역 넓혀 #파견직원에 ‘선생님’‘여사님’ 호칭 #야간고 다니며 주경야독 #등굣길 차비 아껴 고전·명작 독파 #60대 들어 대학·대학원까지 마쳐 #인생은 도전, 지금이 제일 좋아 #신문팔이·숯배달 등 안 한 게 없어 #청소왁스 만들다 화상, 자포자기도 #돈보다 사람이 우선 #주식 가족 안 주고 직원에게 절반 줘 #90%가 정규직, 임원 100% 공채 출신

사옥 계단에는 이런 글도 붙어 있다. ‘물이귀기이천인 물이자대이멸소(勿以貴己而賤人 勿以自大而蔑小)’다. 풀어 쓰면 ‘자신을 귀하게 여겨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며, 자기를 크게 여겨 작은 이를 업신여기지 말라’다. “역시 『명심보감』에서 따왔습니다. 회사의 경영철학이죠. 모든 게 사람 아닙니까.”

이 사람, 타이틀부터 특이하다. 인터뷰를 하러 간 자리, 안내데스크에서 “책임사원 만나러 오셨죠”라고 한다. 그가 “아니, 뭐 이런 구멍가게까지 오셨나요”라며 손님을 반겼다. 명함에도 ‘책임대표사원’ 여섯 자가 적혀 있다. “직함이 낯설다”고 했더니 “회사의 모든 것을, 사원들의 잘못도 책임지겠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회사에 회장은 어울리지 않고요. 직원들은 줄여서 그냥 책임사원이라고 부릅니다”고 답했다.

335개사·1357개 사업장에 인력 파견

구 대표는 구멍가게라고 했지만 삼구 Inc 직원은 2만5000명에 이른다. 종업원 수만 따지면 포스코(지난해 1만7000명)보다 많다. 건물경비·주차관리·청소대행·호텔 케이터링 등 335개사, 1357개 사업장(26일 현재)에 사람을 보낸다. 아웃소싱(인력파견) 국내 최대 업체다. 올해 창사 50년을 맞아 매출 1조원 첫 돌파를 내다보고 있다. 반면 그는 “창립기념일도 없는 회사”라며 겸연쩍어했다. “지난 반세기의 처량한 얘기”라고 했다. 밑바닥 맨주먹으로 시작한 그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구씨의 좌우명.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구씨의 좌우명.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0년,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길바닥 노점상이 나름 규모 있는 회사로 큰 셈입니다. 젊은 시절 워낙 많이 고생해서 절대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늘 말하죠. 요즘도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늦었을 때가 가장 이르다고 하잖아요.”
 초등 졸업장도 없다고 하던데요.
“아버님 사업이 폭삭 망하는 바람에 월사금을 낼 수 없었죠. 어려서부터 신문팔이, 아이스케키·메밀묵 장사, 구두닦이, 숯배달 등 안 한 게 없습니다. 중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야간고를 다녔습니다. 낮에는 걸레·빗자루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학교로 갔죠. 없는 놈이 주제 넘게 공부한다고 공장 주임에게 뺨도 많이 맞았고요.”
 공부가 그리 좋았습니까,
“밤 늦게 수업이 끝나면 동대문 학교에서 미아리 판자집까지 1시간 넘게 걸어왔습니다. 한 달 차비를 아끼면 500원이 남는데, 책 한 권을 살 수 있었어요. 그때 셰익스피어·단테·괴테·도스토옙스키 등 세계 고전·명작을 접했습니다. 『명심보감』도 있었고요. 지금 읽어도 새롭습니다.”
 사업엔 어떻게 눈을 떴나요.
“빗자루·걸레·솔 등을 직접 만들어 팔려고 했습니다. 혹시 달라빚을 들어봤나요. 100만원을 빌리면 매일 2만원 이자를 내야 합니다. 빚만 엄청 쌓였죠. 다시 구두를 닦을까 했는데 명동 같은 목 좋은 곳은 권리금만 500만원 했어요. 50만원이면 35평(115㎡) 집을 사던 시절이었죠. 빈털터리가 할 수 있는 건 식당·건물 화장실 청소밖에 없었습니다. 양동이 하나, 염산·하이타이 한 봉지 들고 거리로 나왔어요.”
 나름 자리를 잡았나 봅니다.
“1968년 아줌마 두 명과 함께 회사 같지 않은 회사를 차렸죠. 매일 새벽까지 닦고 또 닦았습니다. 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서울에도 고층건물이 하나둘 늘어났어요.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 소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골목대장 별명도 붙었고요. 76년에 법인등록을 하면서 삼구란 이름이 태어났습니다.”
민들레 홀씨를 형상화 한 회사 로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민들레 홀씨를 형상화 한 회사 로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신뢰·신용, 3구(具) 말이죠.
“회사 이름도 없이 사법서사를 찾아갔어요.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을 믿어야 하고, 또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하니까 즉석에서 ‘삼구’라고 지어줬습니다. 제 성씨 ‘갖출 구(具)’자와 어울린다면서요. (웃음) 선생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을 창사기념일로 정했고요. 3불(不)도 있습니다. 주례·강연·정치 세 가지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간 제 안에 켜켜이 쌓인 화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자살마저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82년 청소용 왁스를 직접 만들다 불이 나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공장도 전소됐고요. 다시 큰 빚을 지게 됐죠. ‘더는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며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술을 먹고 잠수교 아래로 돌진했는데 다리 기둥에 부딪히고 말았죠.”

알루미늄캔 모아 팔아 재기에 성공

 자칫 오늘이 없을 뻔했습니다.
“죽는 법은 없는 모양입니다. 83년 잠실벌에서 열린 우주과학박람회·로봇과학전 청소 용역을 맡았는데 관객들이 마시고 버린 알루미늄캔이 하루 5만~7만 개 쏟아졌어요. 깡통 1개에 10원씩 받고 넘겼습니다. 쓰레기통이 금광이 된 거죠. 이후 대형 이벤트를 잇따라 수주하면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거래처도 꾸준히 늘어났고요.”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었네요.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해온 분들 덕분입니다. 그들이 없다면 오늘도 없겠죠. 우리 회사에서는 청소하는 아줌마·아저씨도 ‘여사님’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부릅니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니까요. 전원 명함도 만들어 드립니다. 고객 앞에서 당당할 수 있잖아요. 주식의 47%도 직원들에게 넘겼어요. 제 가족은 단 한 장도 없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회사에 직접 기여한 게 없으니까요. 임원들도 100% 공채 출신입니다.”

가난한 젊은이 돕는 장학재단 계획

 기업 이익률이 매우 낮습니다.
“1조 매출에 100억 정도 남습니다. 1%밖에 안되죠. 직원들의 90%가 정규직입니다. 거래처 고객들이 내는 임금은 100% 땀 흘린 분들에게 돌아갑니다. 4대 보험과 퇴직금은 기본이고요. 회사는 용역 수수료로 꾸려갑니다. 이윤을 많이 남긴다는 게 비정상이죠.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아웃소싱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어요.
“국내 아웃소싱 업체가 6만 개에 이릅니다. 대부분 영세해 입사 10개월이면 직원을 자르기 일쑤죠.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거든요. 보험료도 줄일 수 있고요. 동종 업계를 꼬집는 건 그렇지만 옳지 못한 형태를 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제 영향은 안 받았습니까.
“직원 모두 그 이상 받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갈수록 노동시장이 분화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 파트타임도 늘어나고 있고요. 덴마크 인력공급업체 ISS는 종업원 55만 명에 연 매출 13조원입니다. 유럽 전역을 상대하죠. 우리도 미국·중국에 이어 베트남 진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학도로 유명합니다.
“60대에 대학·대학원을 마쳤죠.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2004학번, 서강대 경제대학원 2009학번입니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잖아요. 박사는 안 따느냐는 권유도 있지만 그건 학자의 몫입니다. 제가 가진 주식 51%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돈이 없이 공부를 못하는 젊은이가 줄어드는 게 저만의 작은 소망입니다.”


하루 팔굽혀펴기 100회 … 65세에 오토바이 타고, 70세에 수상스키 

36년 전 화상 자국이 남아 있는 구 대표의 손.

36년 전 화상 자국이 남아 있는 구 대표의 손.

“골프장에 갈 때도 오토바이를 타고 갑니다. 클럽은 승용차에 실어 먼저 보내고요. 18홀을 돌 때도 전동 카트를 탄 적이 없어요. 그린에 나가면 2만 보 남짓 걷는 것 같습니다.”

구자관씨는 에너지덩어리다. 쉴 새 없이 몸을 부린다. 나이 65세에 450㎏짜리 할리 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했다. 56세에 스키를, 69세에 승마를, 70세에 수상스키를 배웠다. 요즘엔 경비행기 조종 면허를 준비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구구팔팔’쯤 될까. “지난 수십 년간 감기를 앓아본 기억이 없어요. 주변에선 ‘몸을 혹사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진작에 쓰러졌을지 모릅니다. 에너지도 계속 써야 새로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의 건강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루 평균 팔굽혀펴기(푸시업) 100회, 제자리뛰기 200~300회를 한다.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짬 날 때마다 한다. “일흔 넘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라고 그만뒀으면 아마 바보 할아버지가 됐을 거에요. 젊은 시절 너무 아팠기에 나이 들어서도 도전을 멈출 수 없습니다.”

구씨는 매주 두 차례 클래식·인문학 공부모임에도 참여한다. “야간고에 다닐 때 예체능 과목이 없었습니다. 라디오는 열심히 들었지만 제대로 배운 게 없었죠. 그간 부족했던 감성을 키우려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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