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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석 없이 노트북 들고 다니며 일하는 ‘카페같은 회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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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호 16면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본사 르포

에어비앤비 1층 구내 식당에서는 수제 맥주, 칵테일, 와인 등 40여 종류의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간식도 모두 무료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 1층 구내 식당에서는 수제 맥주, 칵테일, 와인 등 40여 종류의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간식도 모두 무료다. 박현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술 기업, 특히 스타트업의 사무실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니다. 직원과 고객에게 회사 브랜드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쇼룸이다. 최고 인재를 끌어오기 위한 채용 전략이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사옥과 인테리어에 활발하게 투자하는 이유다. 애플·구글 같은 대기업은 랜드마크를 세우는 데서 시작하지만, 신생 스타트업들은 외관보다는 내부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다.

인재 유치 경쟁 심한 실리콘밸리 #매력적인 공간과 음식으로 유혹 #하루 세끼·수제 맥주 40종이 공짜 #직원들 회사에 더 오래 머물게 해 #베두인족 텐트·캠핑카 등서 회의 #“사무실서 세계 곳곳 여행 기분” #‘어디서나 우리집처럼’ 철학 반영 #직원들 자주 소통, 아이디어 창출

글로벌 숙박공유 기업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 조 게비아가 샌프란시스코 자신의 아파트에서 브라이언 체스키, 네이선 블레차르지크와 함께 설립했다. 월세에 보태기 위해 거실에 에어매트리스를 깔고 낯선 사람 3명을 재워준 게 시작이었다. 2013년 베이브릿지 근처 브래넌가 888번지에 사옥을 마련했다. 이곳에 직원 2500명이 근무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래넌가 999번지에 있는 에어비앤비 두번째 사옥. '가정집 거실 같은 느낌의 회의실이 곳곳에 있다. '누군가의 집 같은 사무실'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진 에어비앤비]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래넌가 999번지에 있는 에어비앤비 두번째 사옥. '가정집 거실 같은 느낌의 회의실이 곳곳에 있다. '누군가의 집 같은 사무실'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진 에어비앤비]

현재 세계 8만1000개 도시에 450만 개의 등록 숙소를 보유한 세계 최대 숙박공유 업체가 됐다. 폭발적인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에는 맞은편 999번지에 두 번째 사옥을 열었다. 지난달 방문한 에어비앤비 사옥 두 건물 모두 ‘누군가의 집 같은 사무실’이라는 정체성이 뚜렸했다. 집은 에어비앤비의 근간이다. 집을 빌려주는 호스트(집주인)와 그 집에 묵으려는 게스트(손님)를 정보기술(IT)로 이어주기 때문에 집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존재할 수 없다.

우연히 마주치며 소통하는 사무실

호주에 숙소로 등록된 캠핑 트레일러 모양의 회의실. [박현영 기자]

호주에 숙소로 등록된 캠핑 트레일러 모양의 회의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 사옥의 컨셉은 집 같은 편안함,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사옥 모두 중앙에 있는 웅장한 아트리움(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통째로 비운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건물을 올려다보면 복도를 따라 아파트 거실을 연상케 하는 박스형 회의실들이 눈에 띈다. 회의실은 에어비앤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집이 에어비앤비의 심장이라면 여행은 핏줄이다. 회의실은 여행을 테마로 이름 붙였다. ‘어디서나 우리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회사 철학을 담았다. 에어비앤비에 실제로 등록된 인기 숙소를 그대로 본떠 회의실로 꾸몄다. 가구와 소품을 모두 맞춤 제작해 완벽한 복제 집을 만들었다. 회의실 이름은 해당 도시에서 가져왔다. 열대 느낌이 화려한 ‘리우데자네이루’, 중국 고가구로 꾸민 ‘상하이’, 베두인족 텐트를 옮겨온 ‘모로코’, 통나무집 ‘헬싱키’ 회의실을 둘러봤다.

에어비앤비가 처음 시작된 조 게비아의 아파트를 그대로 본떠 만든 에어비앤비 회의실. 공동창업자 조 게비아와 브라이언 체스키는 2007년 이 거실에 낯선 손님 3명을 재워 수익을 올린 뒤 2008년 3월 에어비앤비를 창업했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가 처음 시작된 조 게비아의 아파트를 그대로 본떠 만든 에어비앤비 회의실. 공동창업자 조 게비아와 브라이언 체스키는 2007년 이 거실에 낯선 손님 3명을 재워 수익을 올린 뒤 2008년 3월 에어비앤비를 창업했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 직원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중에도 마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끊임없이 여행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상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살던 아파트도 벽난로 위 조각상까지 똑같이 재현했다. 999번지 건물은 아예 각층을 부에노스아이레스·교토·암스테르담 등 도시별 테마로 꾸몄다.

에어비앤비 사옥은 일반 책상을 모아둔 사무공간보다 회의실, 대형 커뮤니티 테이블, 카페 등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 훨씬 넓다. 브레인스토밍하기 좋게 만든 협업 공간들이다. 직원들이 건물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이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자주 마주치도록 동선을 짰다. 우연히 만났을 때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기 편하도록 일정 간격마다 소파와 테이블, 간이 부엌 등을 배치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나타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래넌가 888번지에 있는 에어비앤비 첫 사옥 내부 모습. 회의실과 공용 공간을 많이 배치해 직원들이 자주 마주치게 동선을 짰다. 박현영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래넌가 888번지에 있는 에어비앤비 첫 사옥 내부 모습. 회의실과 공용 공간을 많이 배치해 직원들이 자주 마주치게 동선을 짰다. 박현영 기자

지정석은 없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편한 곳에서 일하면 된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할 때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없애고, 다양한 자극을 활용하라는 의도다. 독서실같이 조용한 곳, 작은 소음이 있는 카페와 야외 테이블 등 대학 캠퍼스와 같이 선택의 폭이 넓다.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환경을 바꾸면 창의력이나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출근하고픈 회사로

아랍 유목민인 베두인족 텐트를 본떠 만든 회의실.

아랍 유목민인 베두인족 텐트를 본떠 만든 회의실.

사내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미식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에어비앤비도 정상급 셰프가 만드는 맛 좋은 건강식을 아침·점심·저녁 공짜로 제공한다. 카페테리아 방식이지만 구내식당보다는 사내 레스토랑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첨가물을 넣지 않은 간식, 수제 맥주도 있다.

두 사옥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는 한쪽 벽에 수제 맥주와 칵테일, 와인 등 40여 종류의 주류를 직접 따라 마실 수 있는 탭이 설치돼 있다. 만 21세 이상, 식당 안에서, 오후 4시 이후 마시는 규칙만 지키면 다른 제한은 없다.

에어비앤비 사옥 1층 사내 레스토랑에 있는 주류 탭. 맥주, 와인, 칵테일 등 다양한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 사옥 1층 사내 레스토랑에 있는 주류 탭. 맥주, 와인, 칵테일 등 다양한 술을 따라 마실 수 있다. 박현영 기자

이런 노력은 최고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의 일환이다. 지난해 일자리 정보사이트 글래스도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구직자의 57%는 회사를 선택할 때 좋은 음식, 피트니스 시설 등 비금전적인 혜택을 신중하게 따진다. 좋은 음식은 직원을 더 오래 회사에 붙잡아 둘 수 있다. 재택근무 대신 회사에 나오게 하는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조직 문화와 공동 가치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유인책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창업 10년 만에 몸값 33조원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기준 310억 달러(약 33조원)로 평가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우버 다음으로 큰 비상장 기업이다. 창업 10년 미만, 10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달성해 ‘데카콘(decacorn)’으로도 불린다. 성장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경영진의 고민은 모든 구성원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고민의 흔적이 사옥 곳곳에 배치한 ‘유산’이다.

에어비앤비 본사 사무실 복도에 있는 시리얼 박스 모형. 창업 첫 해인 2008년 가을께 자금이 바닥나자 창업자들은 디자인 전공을 살려 당시 미국 대선 주자였던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을 테마로 한 시리얼 상자를 만들어 팔았다. 박현영 기자

에어비앤비 본사 사무실 복도에 있는 시리얼 박스 모형. 창업 첫 해인 2008년 가을께 자금이 바닥나자 창업자들은 디자인 전공을 살려 당시 미국 대선 주자였던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을 테마로 한 시리얼 상자를 만들어 팔았다. 박현영 기자

3층 사무실 복도에는 시리얼 박스가 놓여있다. 창업 첫 해인 2008년 가을께 자금이 바닥났다. 예약은 들어오지 않고, 자금을 더 구할 곳도 없었다. 게비아와 체스키가 받은 신용카드 대출이 이미 수 천만원을 넘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들은 디자인 전공자답게 ‘오바마 오’와 ‘캡틴 매케인’이라는 시리얼 상자를 디자인해 팔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각각 500개씩 제작했다. ‘오바마 오’ 시리얼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 덕분에 회사 문을 닫지 않고 꾸려나갈 수 있었다. 초창기에 숙소로 등록된 캠핑 트레일러와 버섯 모양 오두막집도 회의실로 만들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다. 쏟아져 들어오는 신입 직원들은 이런 유산을 통해 과거와 연결된다.

샌프란시스코=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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