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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비난하더니···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악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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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위원: 증인으로 선서했고 위증하면 처벌받는다는 것 아시지요?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최종구: 예.
○김기식 위원: 알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위증죄 고발을 추진하겠습니다.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최종구: 사실이 아닙니다.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최종구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2014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2014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4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한 장면이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야당(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였던 김기식 의원은 최종구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위증죄로 고발하겠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른바 ‘KB 사태’ 때문이었다.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촉발된 내부 갈등으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이 금감원 재제심의 위원회에 올라간 사건이다.

김기식 의원의 공격 목표는 최 부원장이었다. 금감원 제재심의 위원회는 국민은행 관계자들에게 ‘경징계’를 의결하면서 ‘봐주기’ 논란이 커졌다. 최 부원장은 제재심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 왼쪽부터 민병두, 진선미, 원혜영 위원장,김기식 위원.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 왼쪽부터 민병두, 진선미, 원혜영 위원장,김기식 위원.

김 의원은 국감장에서 최 부원장을 ‘모피아(경제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라고 몰아붙였다.

김 의원은 “모피아가 주도하는 이 경징계 결정을 금감원장의 바로 직속 부하인 수석부원장이 주도했다”며 “그것도 절차적으로 담당 국장이 배제되고, 이의 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묵살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집요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들과 지역 연고 문제까지 파고들었다.

○김기식 위원: 수석부원장님,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하고 같이 강원도 출신 관료 모임인 강우회 회원 맞지요?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최종구: 제가 그 말씀도 들었는데 저는 그 모임에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김 의원은 “수석 부원장이 절차와 규정과 관행을 무시하고 야밤에 무슨 비밀모의하듯이 경징계를 주도하고 그것을 원장이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2014년 대한민국 금융의 아주 추악한 단면”이라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최수현 금감원장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고, 얼마 후 결국 최수현 금감원장과 최종구 수석부원장은 함께 옷을 벗고 물러났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2014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보고 있는 사이 최종구 수석부원장이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2014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보고 있는 사이 최종구 수석부원장이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2014년 금감원 국감장에서 ‘악연’을 맺었던 최종구 부원장과 김기식 의원이 4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다.

최종구 부원장은 지난해 금융위원장이 됐고, 김기식 의원은 30일 금감원장에 임명됐다.

김 원장을 청와대에 임명 제청한 인물은 최 위원장이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에 따른 의례적인 절차다.

금융위는 보도자료에서 “제19대 국회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소관하는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금융 정책ㆍ제도ㆍ감독 등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보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4년 전 국감장의 험악한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 개혁에 힘을 합쳐서 함께 뛰지 않으면 안 된다.

김 신임 원장이 평소 소신대로 금감원의 내부 개혁에 나설지도 관심거리다. 그는 2014년 국감에서 이런 말도 했다. “금융감독원을 둘로 쪼개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당시에도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라는 조직이 있었다. 금감원 외부가 아닌 내부 조직이다. 김 원장이 “금감원을 둘로 쪼개야 한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면 금소처를 별도 기구로 독립시키려 할 것이다.

그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조만간 정식 취임하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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