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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출신 재벌 저격 3인, 靑·공정위·금감원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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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저격수’가 돌아왔다.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김기식(52) 전 민주당 의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김 원장 임명을 재가했다.

김기식 전 의원, 금감원장에 임명 #靑 장하성 실장, 공정위 김상조와 3각 편대

정치인 출신이 금감원장을 맡는 것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 1월 통합 금감원이 출범한 이후 약 20년 만에 처음이다. 시민단체 출신으로도 처음이다.

김기식 전 의원.

김기식 전 의원.

김 신임 원장은 2014~2016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야당 간사를 맡아 대기업 계열 금융사에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에 앞장섰다.

이제는 국내 금융권 전체를 총괄하는 금감원장으로 막강한 ‘칼자루’를 쥐게 됐다. 상임위 야당 간사와 금감원장은 권한과 영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 원장을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정치인 출신 첫 금감원장이란 것도 놀랍지만, 그 주인공이 김 원장이라서 더욱 놀랍다는 반응이다.

금융감독원 외경

금융감독원 외경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조직을 혁신해 다시 사랑받고 신뢰받는 금융감독 기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 관료나 학계, 금융업계 출신이 아닌 시민단체 출신 원장은 처음이라 약간 불안한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말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장하성-김상조-김기식...재벌 개혁 '삼각 편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속돼서 3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했지만, SK가 망했습니까? 오히려 더 잘 굴러갔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속됐을 때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재벌 총수가 구속될 때마다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달라' 말하는데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렸습니까? 그런 사례는 없습니다."

김 원장이 지난해 2월 한 인터넷방송에서 한 발언이다. 재벌 개혁에 대한 김 원장의 강한 소신이 읽힌다.

경제 민주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로선 ‘개혁의 삼각 편대’를 완성했다. 컨트롤타워 격인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원회의 김상조 위원장, ‘금융 검찰’로 통하는 금감원의 김기식 원장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해 5월 인수위원회도 없이 급하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다. 이제 집권 2년 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경제 개혁에 나섰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세 사람의 공통분모는 참여연대다. 1990년대 후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실세’로 떠올랐다.

고려대 교수였던 장하성 실장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았다. 한성대 교수 출신 김상조 위원장은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과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지냈다.

김 원장은 당시 참여연대 정책실장과 사무처장으로 두 사람의 활동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참여연대 공동대표였다.

세 사람의 공통 목표는 ‘재벌 개혁’이다. 참여연대 시절 장하성 실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소액주주 운동’이었다. 대기업 계열사의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와 연대해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을 질타했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던 한국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펴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펴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소액주주 운동은 미국식 ‘주주 행동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지향점은 전혀 달랐다. 미국의 주주 행동주의는 주로 기관 투자가들이 주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기업 경영진에 압력을 넣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식 소액주주 운동은 소수의 지분밖에 없는 재벌 총수들이 기업 경영의 전권을 휘두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금융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주주 행동주의가 한국에서는 재벌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는 역설이 벌어졌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적극적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 투기성 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한 ‘주주 행동’을 부추기는 결과도 가져왔다.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대기업들은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확대했다. 대신 직원ㆍ협력업체의 몫이 줄어들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한국거래소]

[사진 한국거래소]

소액주주 운동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란 이름으로 변신을 예고했다. 장하성-김기식 라인이 주목되는 이유다.

금감원은 은행ㆍ보험ㆍ증권ㆍ자산운용 등 국내 주요 기관 투자자들을 직접 감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김기식 원장 체제의 금감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협조하지 않는 금융사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스튜어드’는 ‘주인(고객)’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집사(기관 투자가)’를 가리킨다.

원래 영국과 미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 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목적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경제민주화’란 정치적인 의미가 강조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모범기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포함됐다.

6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과 90조원이 넘는 주식형 펀드 자금(국내 주식형+혼합형)을 합치면 재벌 총수들이 가진 지분을 훨씬 능가한다.

기관 투자가들은 국내 주요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사회적인 논란과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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