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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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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면1:기원전 399년 아테네. 젊은이들을 현혹한 혐의로 기소된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용납할 수 있는 벌금은 은화 1미나 정도였다. 당시 숙련된 장인이 100일간 일하고 받는 임금이었으며 소크라테스가 가진 전 재산의 5분의 1가량 되는 액수였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정도의 벌금으로는 자신의 철학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소크라테스는 유죄 판결 이후의 2차 변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은화 1미나 정도면 나는 지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나의 친구들은 (액수가 적어 배심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30미나를 제의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30미나의 벌금을 제안합니다. 친구들이 보증인이 될 것입니다."('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30미나면 상당한 액수였지만 배심원들을 감동시킬 수 없었다. 벌금형을 받고 법정을 나서면 또다시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과 불온한 대화를 나누며 다닐 게 분명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만다.

장면2:1910년대 미국. 뉴욕의 라가디아 공항은 시장을 세 차례나 연임한 전설적 인물, 피오렐로 라 가디아(Fiorello La Guardia)를 기념한 것이다. 그는 즉심 판사로 일할 때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빵을 훔친 죄로 잡혀 온 한 노인이, 가족이 굶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디아 판사는 판결했다.

"그래도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그는 이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말했다.

"10달러는 내가 내겠소. 그동안 남 생각 못하고 호의호식해 온 나에 대한 벌금이오. 그리고 이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벌금을 50센트씩 부과합니다. 빵을 훔쳐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마을의 주민이기 때문이오." 경찰이 모자를 돌려 벌금을 거뒀으며 어리둥절해 서 있던 노인은 47달러 50센트를 받아 쥐고 법정을 나섰다.

장면3:오늘날 대한민국. 한 시골마을 부녀회원들이 공짜 저녁 한 끼 얻어먹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물게 생겼다. 돈도 돈이지만 평온하던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가족 간 불화마저 생겼다는 게 더 딱하다. 소크라테스처럼 확신범도 아니고 라 가디아의 노인처럼 생계형도 아니라 그저 우리의 뒤떨어진 현실 정치를 반영한다는 점이 가슴 답답하게 한다. 이제 이런 잠언 정도는 기억할 때도 되지 않았나. '공짜 점심은 없다'.

이훈범 week&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