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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북한과 나약한 합의 할까봐? 트럼프 FTA로 한국 압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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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입장 바꾼 트럼프 "FTA, 북한 협상 타결 이후로 미뤄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양국이 사실상 타결했다고 발표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에 대해 북핵 합의 이후로 연기할 수도 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오하이오서 북핵타결 이후 연기 시사 #AP "북핵협상에 한미FTA를 지렛대로" #로이터 "한, 한미일 3국 동맹의 약한고리" #나바로 "환율합의, 한미FTA 하위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그것을 북한과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연기할 수도 있다”면서 “그게 (북핵 협상의) 매우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곧이어 그는 “나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대우받고, 북한과 협상도 매우 잘 될 수 있도록 보장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 한미FTA 개정협상 타결 직후 “미국과 한국 노동자들을 위한 위대한 합의”라고 의미부여까지 했는데, 하루 만에 한미 FTA 개정 문제를 북핵 협상 카드로 쓰겠다고 위협한 셈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전날 브리핑에서 “자동차 및 제약산업 등의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한 주요 승리”라고 홍보했던 FTA 개정 협상을 뒤집는 발언이기도 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미 교역과 경제관계의 중대한 진전이자, 양국 간 강력한 안보관계에 기반했다”는 공식 선언마저 훼손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USTR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한미FTA를 북핵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기류는 전날에도 언뜻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한미FTA 관련 트위터에서 “이제 우리의 중요한 안보 관계에 대해 집중하자”고 밝혀, 한미FTA와 북핵 타결을 연관지으려 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측에 ‘완전한 비핵화’ 입장에서 물러서지 말라고 압박하기 위해 흘린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비핵화 담판구도에 중국이 등장한 상태에서 한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노선을 미국과 함께 유지하도록 압박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도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자가 4월 27일로 확정, 발표된 지 몇 시간 안 돼 나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단순히 오하이오주 지지층 앞에서 자신의 치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꺼낸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뜬금없기 때문이다.

정치전문지 힐은 “북한으로부터 핵 양보를 견인하기 위해 한미 간 단일한 입장 유지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미국의 일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합의 도달에 치우친 나머지 ‘유약한 합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 또한 고위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은 한ㆍ미ㆍ일 3국 동맹에서 ‘약한 고리(weak link)’로 분류된다"면서 "한국이 북한과 너무 성급하게 합의할까봐 백악관이 우려하던 중이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미FTA를 지렛대로 삼으려는 차원”이라고 풀이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김정은이 핵 야욕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있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 라즈 샤 부대변인은 “한미는 원칙적으로 위대한 새 FTA 합의에 도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협상을 포함해 모든 관련 사항을 고려하고 있으며, 확정된 합의 내용에 서명하는 최적의 시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외교소식통은 “국내 정치행사용 발언일 수도 있지만 한미FTA와 북핵 연계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면서 “세부 협상과 법률검토 등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공식 서명까지 시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미FTA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현재 협상 창구인 USTR과 원칙적 타결의 후속 조치로, 개정 협정의 문안 작업을 진행중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서울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숨어있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중”이라며 “우리는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이 이미 부드럽게 완결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피터 나바로 국장.

피터 나바로 국장.

한편 백악관내 강경 보호무역론자인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전날 CNN 방송에 출연해 미국이 한미FTA 개정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우리는 환율 평가절하와 관련된 것을 하위 합의(sub-agreement)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FTA와 환율은 완전히 ‘별개의 협상’이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호무역 기수인 나바로 국장은 한미 간 환율 합의가 한미 FTA 협상과 관련됐다는 미국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환율을 평가절하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수출을 유리하게 하고 우리의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미국에 더 큰 무역 손실을 안긴다”고 강조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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