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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으로 찾은 고향 … 내 이름은 김노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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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향 대구 미혼모들을 위해 5000달러를 기부한 줄리아나 데이먼과 남편. [사진 대구시]

고향 대구 미혼모들을 위해 5000달러를 기부한 줄리아나 데이먼과 남편. [사진 대구시]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출신의 40대 여성 의사가 대구시에 5000달러를 기부한다. 그것도 28일 오후 시청을 직접 찾아 고마움을 표하며 기부금을 전달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하버드 출신 의사 줄리아나 데이먼 #생모는 입양 당시 지병으로 사망 #대구시에 오늘 5000달러 기부

주인공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아과 의사로 재직 중인 줄리아나 데이먼(46). 그는 45년 전인 197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마조리 데이먼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해 7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서다. 그는 미국에서 살면서 늘 자신의 생모, 자신이 태어난 배경, 살던 동네가 궁금했다. 이에 한국에 사는 지인에게 양부모가 가지고 있는 입양 당시 자신의 사진을 주며 과거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은 데이먼이 입양 전 대구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올 1월 대구시에 도움을 구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대구시는 데이먼의 입양 전 행적을 거꾸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여 만에 그가 1972년 경북 칠곡군 칠곡면 아시리(현재 대구시 북구 읍내동 추정)에서 김순이(1944년생으로 추정)씨의 딸로 태어난 사실을 확인했다.

1973년 미국으로 입양 당시 데이먼의 모습. [사진 대구시]

1973년 미국으로 입양 당시 데이먼의 모습. [사진 대구시]

또 1973년 1월 생모와 함께 노숙인 복지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에 입소해 두 달을 머물다가 그해 3월 양육이 불가능했던 생모의 곁을 떠난 행적을 찾았다. 데이먼은 이후 당시 대구 중구에 있던 백백합보육원으로 혼자 옮겨져 생활했다. 같은 해 7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렇게 어린 시절 데이먼은 불우하게 복지시설을 전전했다.

대구시는 데이먼 생모의 생사도 확인했다. 그가 입양된 1973년 그해 6월 지병으로 희망원에서 사망했다. 데이먼의 한국 이름도 찾았다. 입양 당시 이름은 이대숙. 하지만 대구시립희망원 입소 당시 이름은 김노미였다.

대구시 관계자는 “입양 사진 한 장을 단서로 당시 시설의 아동카드에 붙은 사진을 비교해 동일인이란 사실을 검증했다. 두 달여 조사했지만 데이먼의 한국 이름이 왜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데이먼은 “미국 입양 전 한국에서의 시간은 평생 잃어버린 미스터리와도 같은 시간이었다”며 “대구시 등의 도움으로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게 기적 같다.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데이먼은 5000달러 기부금을 고향인 대구의 미혼모에게 사용해달라고 했다. 기부금은 대구의 미혼모 공동생활 가정인 대구클로버·잉아터 등에 전해질 예정이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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