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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미술 전시 3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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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했던 3월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그동안 미술가에는 봄나들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3월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이번 주에 막을 내리는 전시가 세 개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놓치고 보내기엔 많이 아까운 전시라서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아직 전시를 챙겨보지 않은 분들은 지금 서두르세요.

CHOI&LAGER GALLERY, 헬레나 파라다 김,  28일까지 

독일 쾰른 출신으로 현재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헬레나 파라다 김. 최정동 기자

독일 쾰른 출신으로 현재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헬레나 파라다 김. 최정동 기자

 서울 삼청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는 두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블랑크' 전시와 '헬레나 파라다 김'의 전시가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이중 한복과 한복 입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헬레나 파라다 김(36)의 이야기를 하렵니다.

 헬레나는 지금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민 1세대인 한국인 간호사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입니다. 독일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세계적인 작가 피터 도이그(Peter Doig·59)교수의 제자라고 하네요.

 10여 년전, 어머니의 옛 앨범 속 파독 간호사들의 모습을 본 이후로 어머니 나라인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파독 간호사, 한복, 제사 등의 한국적인 소재들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헬레나는 "내가 그리는 것은 그냥 한복이 아니라 그것을 입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헬레나  작가가 한복을 그리는 행위는 즉 그 옷을 입었던 사람의 역사를 어루만지는 일이며,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도 읽힙니다.

The bunch, 2018, oil on linen, 75 x100cm. [사진 초이앤라거갤러리]

The bunch, 2018, oil on linen, 75 x100cm. [사진 초이앤라거갤러리]

 헬레나는 현대 회화 작가로는 드물게 고전적인 회화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초상화로 유명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나 벨라스케스, 17세기 네덜란드의 사실적인 정물화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가 그린 풍부한 색상, 섬세한 질감의 한복을 함께 보시죠. 역시 작가의 시선이 달라서일까요. 우리 한복과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친근한 듯, 새로운 듯 복합적인 느낌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PKM 갤러리, '신민주: 추상 본능', 29일까지 

신민주, Uncertain Emptiness 17009,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x182cm. [사진 PKM갤러리]

신민주, Uncertain Emptiness 17009,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x182cm. [사진 PKM갤러리]

이번엔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민주(49)주의 개인전 '추상 본능'입니다. 어떻습니까? 작가의 파워풀한 붓질이 느껴지는지요?

신민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150호 대작 회화 위주의 신작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단색 바탕에 흑백 컬러의 과감한 붓질로 자신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풀어놓았습니다. 작가는 실크스크린 도구인 스퀴지(squeegee)를 들고 캔버스에 돌진해서 한 호흡에 휘몰아치듯 아크릴 물감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마치 작가 안에 혼재하는 모순된 감정들이 밖으로 한 번에 튀어나와 캔버스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신민주, Uncertain Emptiness 17002,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x182cm.  [사진 PKM갤러리]

신민주, Uncertain Emptiness 17002,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x182cm. [사진 PKM갤러리]

그 감정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혼란스러운 듯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그런가하면 희망과 좌절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품들의 제목은 한결같이 'Uncertain Emptiness'(불확실한 공허)입니다. 화폭에 담긴 진정성이란 게 이런 걸까요? 그의 그림은 작가의 지난 시간을, 그 시간 속에서 견뎌온 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선사합니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의 이번 전시는 2015년 PKM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여는 두 번째 전시입니다. 추상화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은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신여성 도착하다', 4월 1일까지 

오는 4월 1일 폐막하는 '신여성 도착하다'전의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오는 4월 1일 폐막하는 '신여성 도착하다'전의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 아직 안 보셨나요? 그렇다면 28일 수요일 덕수궁 나들이를 하셔야 합니다. 그 날은 '문화가 있는 날'이거든요.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이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에서 무료 관람을 시행합니다. 폐막이 다가온 전시도 챙겨 보고, 봄이 오는 덕수궁 산책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28일 덕수궁관에서는  전시와 연계해 덕수궁 로비와 전시실에서 특별공연 '노라를 만나다'를 3차례(오후 1시, 오후 3시30분, 오후 5시30분)에 걸쳐 상연합니다.  전시 관람객은 누구나 볼 수 있으니 수요일에 덕수궁 나들이 잊지 마세요.

'신여성 도착하다' 전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식민기의 '신여성'이라는 존재를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근대 돌아보게 하는 자리입니다.

 '신여성'을 주제로 한 종합선물세트처럼 각기 다른 주제로 펼쳐 놓은 구성이 다소 산만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맥락에서 근대의 우리 여성 미술가들을 만나게 하는 전시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현초 이유태(1916~1999)의 '일물일대' (1944, 종이에 채색, 212x153cm). 지적이고 확신에 찬 신여성의 자태를 통해 현대여성의 이상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현초 이유태(1916~1999)의 '일물일대' (1944, 종이에 채색, 212x153cm). 지적이고 확신에 찬 신여성의 자태를 통해 현대여성의 이상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돼 1부는 대중매체가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보여주고, 2부는 근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3부는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영역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 나혜석(1896~1948) 등을 조명합니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 추정, 88x75cm,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어두운 색조와 인물의 표정으로 변혁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고통과 우울을 표현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 추정, 88x75cm,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어두운 색조와 인물의 표정으로 변혁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고통과 우울을 표현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전을 보셨으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7월 29일까지)을 꼭 챙겨 보세요. 나혜석의 뒤를 이은 우리 여성 미술가 이성자 작가의 창작 여정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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