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김독원 분리해선 안된다|김팔공<필명·서울개포동우성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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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융자율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여와 야를 가릴 것 없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렇다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은행감독원은 한국은행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은 겉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강하는 척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그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은행감독원 분리론자들의 주장처럼 은행감독권이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인 통화신용 정책권과 엄연히 다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은행감독원장의 권한행사는 한은총재의 하부기관으로서가 아니라 한은법·은행법등에 근거,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은행감독원장의 임면은 한은총재와 대등하게 대통령이 행하며,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인사·예산·조직에 있어서 독자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은행감독권은 나라에 따라서는 우리 나라와 같이 중앙은행이 담당하기도 하고, 혹은 정부와 중앙은행에 분산되어 행사되기도 하고, 정부기관에 전적으로 귀속되어 있는등 각양각색이다.
이중 어느 제도가 옳고 그르다는 논리의 일반적인 귀결은 있을 수 없다. 그 나라의 금융역사와 금융이 처한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서독등이 은행감독권을 중앙은행으로부터 분리하여 행사하고 있으니 우리 나라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논리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금융의 역사와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 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은행감독권을 담당하게 된 것은 1950년 한국은행법이 제정될 때 통화신용 정책권과 은행감독권의 보완적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금융의 중립성을 보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입법취지에 근거하고 있다.
그동안 통화신용 정책권을 담당한 좁은 뜻의 한국은행과 은행 감독원은 항상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보완함으로써 그나마 중앙은행의 기능이 유지되고 감독권이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왔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이따금 외부의 갖은 간섭으로 감독권이 왜곡되고 중앙은행의 본질적 기능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왔으나 중앙은행 자체가 감독권을 남용, 금융의 공익성을 침해했다는 이야기는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다.
한편 우리 나라의 통화신용정책 수행은 선진국과는 달리 금리기능·공개시장 조작등 간접적인 양적 조절방식보다는 직접적인 규제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금융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금융시장과 관행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금융여건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은 우리의 금융현실에서 은행감독원의 뒷받침 없이 통화신용정책이 원만히 수행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은행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보장받고 동시에 은행감독권도 행사할 경우 너무 막강한 권력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주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역할은 그 본질상 권한의 무리한 남용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적으로도 중앙은행이 권한남용은 고사하고 제기능 조차 발휘하지 못한 사실이 이를 똑똑히 입증해 주고있다.
오히려 은행감독권이 분리되어 정부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 때 월권적인 권한행사의 풍조가 팽배해 있는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공정하고 정당한 감독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여신관리기능도 행사하고있는 감독원이 중앙은행의 통화신용 정책권을 실질적으로 침식함으로써 사실상 두개의 중앙은행이 존립하고 한국은행은 허울뿐인 중앙은행으로 전락하고 말 우려가 있다.
비록 짧지만 우리 나라의 금융역사와 금융현실을 감안할 때 은행감독원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핵심적 요체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금융의 자율도, 금융의 민주화도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같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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