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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연극배우·라디오 PD·작가…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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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4)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연극교실 수업을 받은 단원들은 ‘달콤 2막’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민 연극배우로 활동한다. 50~70대 연령층으로 이뤄진 단원들은 지난해 11월 셰익스피어 원작 [한여름 밤의 꿈]을 홍대앞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연극교실 수업을 받은 단원들은 ‘달콤 2막’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민 연극배우로 활동한다. 50~70대 연령층으로 이뤄진 단원들은 지난해 11월 셰익스피어 원작 [한여름 밤의 꿈]을 홍대앞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7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 있는 한 소극장에서는 특별한 연극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배우들은 1시간여 동안 셰익스피어 원작의 '한여름 밤의 꿈'을 열연했다. 150석이 넘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호응은 상당히 컸다. 연극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도 그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사히 연극을 끝낸 배우들 중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열연을 펼친 배우들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축하의 말을 건네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관객의 상당수는 다름 아닌 배우들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었다.

연극교실 강의 끝났지만 커뮤니티 만들어 배우 꿈 성취 #인생살이 정리해 한 달 만에 전자책 펴낸 70대 어르신도 #‘50 플러스’ 프로그램 벤치마킹해 노인교육 확 바꿔야

이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연극에 참여한 16명(조연출 1명 포함) 전원이 이전에는 연극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마추어 ‘시민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50 플러스 공연집단 달콤 2막’(이하 ‘달콤 2막’)이라는 이름의 연극 커뮤니티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커뮤니티 이름처럼 이들의 연령대는 50~70대로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이런 무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8개월 전 노·장년층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서로 처음 만난 단원들은 마침 서울 마포구에서 마련한 '꿈의 극단'이라는 챌린지 사업을 통해 정식 무대에 데뷔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제대로 된 조명과 음향 효과가 갖춰진 무대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던 ‘달콤 2막’ 단원들이 용기를 내 연극 공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울시 ‘50 플러스 재단’이 마련한 노·장년층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50 플러스재단’은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이다. 고령사회를 맞아 은퇴 전후 장년층(만 50세~64세)을 대상으로 새롭고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16년 4월 재단 설립과 함께 재교육을 담당하는 서부캠퍼스(은평)가 처음 만들어진 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중부캠퍼스(마포)가, 그리고 올 3월 남부캠퍼스(구로)가 문을 열었다. 2020년까지 서울 지역에 3곳의 캠퍼스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공식적으로는 ‘50 플러스’ 캠퍼스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대상은 50대부터 60대 중반까지다. 하지만 이곳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다양한 데다 질적으로도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와 입소문이 돌면서 60대 후반과 70대 어르신들까지도 이곳을 찾고 있다.

50 플러스’ 중부캠퍼스 김하나 프로젝트 매니저는 “젊은 어른들, 노년기를 준비하는 분들이 인생 후반기를 설계하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은 저렴한 수강료에 비해 내용이 꽤 알차다는 소문을 듣고 수강신청을 하는 60대 후반에서 70대 어르신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근엄했던 내가 요염한 왕비가 돼 있다니”

지난해 6월 연극교실 1학기 수업을 마친 수강생들이 축제 무대를 꾸몄다.

지난해 6월 연극교실 1학기 수업을 마친 수강생들이 축제 무대를 꾸몄다.

홍대앞 소극장 연극무대에 선 ‘달콤 2막’ 단원들은 모두 지난해 1학기(3월~6월) 중부캠퍼스에서 진행한 연극교실을 수강한 이들이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 수강생들은 '한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맹연습을 했다. 그리고 6월 말 학기가 끝나고 열린 중부캠퍼스 ‘모두의 축제’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다소 어색하고 서툰 몸짓이었지만 나이 지긋한 수강생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축제가 마무리되고 캠퍼스를 떠나야 하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운 마음이 통했다. 그렇게 뜻을 모아 결성된 연극 커뮤니티가 바로 ‘달콤 2막’이다. 단원들은 현직 어린이집 보육교사, 은퇴한 대학교수, 개인 사업가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처음 ‘50 플러스’에 수강신청을 할 때만 해도 교육을 마친 후 자신들이 실제 배우의 꿈을 이루리라고 생각한 이들은 없었다고 한다. 인생 후반부에 뒤늦게 찾은 길인만큼 이들이 발성·대사·표현 연습 등에 쏟는 열정은 젊은 사람들 이상이라고 한다. 단원들은 서로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벅찬 감동을 받았고, 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67세 김임진씨도 그런 단원 중 하나다. 그 역시 지난해 11월 홍대앞 소극장 연극 무대에서 선보인 '한여름 밤의 꿈'에 배역을 맡아 참여했다. 김씨는 ‘요정 왕비’ 티타니아 역과 인간 세상인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 역 등 1인 2역을 맡았다. 김씨는 “평생을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퇴직한 내가 노년에 연극배우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50 플러스’ 중부캠퍼스 연극교실 프로그램에 수강신청을 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우연히 딸의 권유로 ‘50 플러스 재단’을 알게 됐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정년 퇴직을 하고 그 뒤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해 다시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6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기간제 교사 일까지 끝난 뒤에는 허전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죠. 40년 가까이 매일 학교로 출근하다가 집에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했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때였어요. 그러다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수강할 프로그램을 뒤지다가 연극교실 프로그램에 빈자리가 남아 있어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뒤늦게 알고 수강신청을 하다 보니 다른 프로그램들은 이미 수강자가 다 차서 마감이 된 상태였다. 할 수 없이 남아 있던 연극교실에 겨우 등록한 것이 그의 삶을 확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김씨에게 연극교실은 그저 우연히 골라 잡은 기회만은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는 뭔가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고, 지금까지 틀에 박힌 삶 속에서 해오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평생을 교사로 살아오다 보니 ‘점잖고 근엄함’이 나를 규정하는 이미지였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런데 연극을 배우면서 하루가 다르게 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연극 이론을 배우고 또 실제로 연극 대본 속 캐릭터를 맡아 연기를 해보는 실습 과정을 거치면서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끼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무엇보다 끌렸던 건 현실 속에서는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인생을 무대에서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거죠. 소설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인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멋지지 않나요. 연극 무대가 아니면 어떻게 내가 여왕이 돼 보겠어요.(웃음)”

지금은 시민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 60대 후반으로 접어든 김씨에게 이 일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고정관념부터 깨야 했다.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김씨 자신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무대 위에 서려면 부끄러움을 없애야 해요.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살면서도 학예회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했지 나 자신이 직접 사람들 앞에 나서서 공연을 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특히 [한여름 밤의 꿈]에서 맡은 티타니아 여왕 역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어요. 사랑에 빠져 애교가 넘치는 목소리,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요염한 몸짓, 간드러지고 간사하게 보이는 말투와 표정 등을 해내야 하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남들 보지 않는 집에서 몇 십 번을 연습했는지 몰라요. 막상 무대에 오르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움직이고 목소리가 나오지 뭐예요.(웃음)”

노·장년층 단원들의 인생 고백이 창작극으로

1. '라디오 PD되기’ 수강생인 김경남·황혜경씨는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자체 음악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쓴 대본과 큐시트. / 2. ‘ 라디오 PD되기’ 실습 수업 전경’.

1. '라디오 PD되기’ 수강생인 김경남·황혜경씨는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자체 음악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쓴 대본과 큐시트. / 2. ‘ 라디오 PD되기’ 실습 수업 전경’.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과 걱정 속에서 오른 소극장 연극무대에서 김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연기를 했다. 김씨 자신도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이날 공연을 보러 온 가족과 지인들이었다. 김씨의 아들, 딸 그리고 여동생 등은 평소 조용하고 진중하기만 하던 김씨가 사랑에 빠진 티타니아 역에 빠져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연방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자식들은 퇴직 후 무기력하게 있던 엄마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좋아하고 만족스럽다고 하더군요. 동생 역시 ‘언니 이미지하고 영 딴판’이라며 낯설어 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반응이었고요.”

김씨는 “무기력한 노인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면 남은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겠느냐”며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민 배우로 활동하며 무대에 계속 서고 싶고 모델이나 뮤지컬, 마당극 같은 분야도 배워 영역을 더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취재 말미에 자신처럼 이미 60대 후반의 노년기에 접어들었거나,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50~60대 초반의 ‘젊은 어른’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노후의 삶이라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잖아요. 용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집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남은 인생을 무료하게 지낼 수밖에 없어요. 일단 세상 속으로 나오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반전을 이룰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해 중부캠퍼스에서 김씨와 함께 연극교실을 수강한 안은영(52)씨는 지난해 ‘달콤 2막’의 대표 겸 [한여름 밤의 꿈] 공연의 조연출을 맡았다. 안씨는 “[한여름 밤의 꿈]을 준비하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대사나 제대로 외우겠느냐’는 식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안씨는 젊은 시절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 등에서 행사와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이 있다. 노년기를 10년 이상 앞둔 안씨는 다른 단원들보다 조금 일찍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길로 들어선 셈이다.

3월 14일 ‘50 플러스’ 중부캠퍼스 생활목공교실 수강생들이 스툴과 서랍장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

3월 14일 ‘50 플러스’ 중부캠퍼스 생활목공교실 수강생들이 스툴과 서랍장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동안 단원들과 매주 연습을 하고 뒤풀이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더군요.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60대 이상 단원들의 인생살이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는 얘기가 많이 오가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도 돌아보게 되고 또 남은 인생, 다가오는 노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나누게 됩니다. 모이면 연극 연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장년층이 함께 어울려 생각도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된 거고요. 젊은 시절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인 만큼 얘기를 듣다 보면 연극의 소재로 활용할 스토리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안씨는 지난해 연극 무대에서 조연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연출을 맡아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 그는 단원들과 함께 6월로 예정된 ‘근로자 연극제’에 참여하기 위해 참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또 8월 말에 있을 서울시민연극제 무대에도 나설 생각이다. 안씨는 기존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강여사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창작연극을 얼마 전부터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 창작극은 인생 고백이 담긴 단원들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요양보호사 직업을 가진 50대 여성이 극의 주인공이에요. 우리 단원 중에 실제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관련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단원은 자신의 할머니께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곡기를 끊으시고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한 얘기를 들려준 기억이 있고요. 이런 얘기들을 모아 극본을 썼습니다.”

단원들은 요즘 중부캠퍼스 지하에 있는 ‘몸짓교실’을 빌려 1주일에 한 차례 두 시간 정도 맹연습을 하고 있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창작극 [강여사의 선택]은 요양보호사 박영순이라는 인물이 두 명의 강여사(한 명은 박씨의 늙은 친정어머니, 다른 한 명은 박씨가 일하는 곳에서 만난 환자)를 가까이에서 돌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씨의 친정어머니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부정하고 혐오하며 날마다 새하얗게 화장을 한다. 환자 강씨는 교통사고 후 누워서 꼼짝도 못하게 되자 존엄사를 고민한다. 이 두 강여사는 늙음과 질병, 그리고 소멸의 현실 앞에서 힘겨워한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 있는 요양보호사 박씨를 비롯한 일터의 동료들과 환자 가족들이 어우러져 짠한 현실과 소망을 노래하고 춤춘다.

‘달콤 2막’ 단원들은 이런 내용의 연극을 다가올 연극제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연습하고 있다. 안 씨는 “힘겹게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웃 간의 연대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안씨에게 ‘달콤 2막’은 연극 자체를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이 점점 없어지는 시대잖아요. 예술적 공감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인생의 길동무가 돼 함께 건강하게 늙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60대를 훌쩍 넘긴 분들이 연극 무대를 즐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흐뭇하기도 하고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답답한 것들을 끄집어내 몸으로 표현하고 발성으로 토해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안씨는 ‘달콤 2막’ 커뮤니티를 통해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능기부를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웃음과 힐링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20분 분량의 단막극 퍼포먼스를 선보일 계획이 그것이다. 단막극의 주제는 노인문제, 존엄사, 치매 같은 것들이다. 중부캠퍼스 김하나 매니저는 “수업만 듣고 끝날 줄 알았던 분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생각지도 못한 영역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놀랐다”며 “‘달콤 2막’은 노·장년층의 재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노·장년층 인생은 그 자체가 인문학 덩어리”

2월 13일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한 달 안에 내 책 출판하기’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저자로 참여한 수강생 중 한 명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월 13일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한 달 안에 내 책 출판하기’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저자로 참여한 수강생 중 한 명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취재진은 안씨처럼 의미 있는 노년의 삶을 위해 일찍부터 자기계발에 적극 나선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취재진이 ‘서재’로 불리는 중부캠퍼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스피커를 통해 여성 진행자의 차분한 멘트와 함께 은은한 선율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라디오 방송국의 클래식 채널인가 했더니 지난해 1학기에 ‘라디오 PD 되기’ 수업을 들은 수강생이 진행하는 자체 방송이라고 했다. 방송 진행자는 김경남씨다. 김씨는 이곳 방송실에서 PD·작가·진행자·기술 등 1인 4역을 맡아 매주 금요일 1시간에 걸쳐 ‘2시의 뮤직 샐러드’를 진행하고 있다. 김씨가 진행하는 음악방송의 테마는 ‘가고 싶은 나라, 듣고 싶은 음악’이다. 김씨 자신이 과거 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 나라의 음악을 접목시켰다. 1층에 있는 빨강 우체통과 ‘50 플러스’ 홈페이지 사연 신청 코너를 통해 신청곡도 받고 있다.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황혜경씨도 김씨처럼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건강·젊음·다이어트를 주제로 한 ‘유명한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 대본을 쓰는 데만 하루 7~8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행복한 노년을 남들보다 일찍 준비하는 50대 ‘젊은 어른’들이었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도 이루지 못한 꿈을 나이가 많이 들어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교육을 받고 뒤늦게 작가가 된 이들도 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시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권오돈(77)씨는 지난 겨울학기 동안 진행된 ‘한 달 안에 내 책 출판하기’ 과정을 이수했다. 권씨는 작가가 아닌 일반인, 그것도 70대 노인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책을 펴내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권씨는 이 수업을 함께 들은 26명의 수강생과 함께 공동으로 책을 냈다. 이들은 각자가 쓴 수필과 소설을 책에 담았다. 작품집 제목은 [깊은 생각, 다른 생각, 딴 생각]이다. 지난 2월 13일 중부캠퍼스에서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백만 보 걷기에 도전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이곳 선정릉을 걷고 또 걷는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권오돈씨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공동으로 펴낸 작품집에 실린 권씨의 수필 ‘선정릉의 추억’에 실린 한 대목이다. 선정릉에서 부부싸움을 한 얘기 등 권씨가 선정릉을 걸으며 떠올린 일상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출판기념회를 마친 권씨는 “살면서 내 책을 쓰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뤘다”며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이날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생겼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한 달 안에 내 책 출판하기’ 강의를 진행한 이는 나기권(62)씨다. 나씨는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의 우수 강의 콘텐트 선발 응모전에 선정돼 겨울학기 강의를 맡았다. 나씨는 젊은시절 화장품, 세제 등을 만드는 외국계 회사의 해외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퇴직 후에도 수출상담 컨설팅, 통·번역을 등을 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지금은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들은 권오돈씨와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함께 자원봉사 해설사로 일하며 인연을 맺은 사이다.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내 삶의 흔적들을 정리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생 보고서 작성에만 익숙해 있다 보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유려한 문장을 만드는 것도 자신이 없었고요.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생각날 때마다 내 경험과 평소 느꼈던 부분들을 정리했죠. 처음에는 종이책으로 어떻게 출판할까 고민스러웠는데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전자책 출판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전자책 출판은 도전할 만했죠.”

지난해 7월 [문화·관광·예술의 새로운 시각]이라는 제목의 첫 책을 시작으로 매달 한 권씩 전자책을 펴냈다. 나씨는 자신의 책 출판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중부캠퍼스에서 강의를 맡게 됐다. 지금까지 ‘50 플러스’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수강생은 대략 80명이다. 나씨는 최근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노인복지관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맡아 60~80대 14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그리고 3월 19일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펴낸 전자책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나씨는 어르신 수강생들에게 휴대전화의 ‘말글쓰기’ 프로그램(말을 하면 이를 활자화해 정리하는 기능)을 이용해 글을 쓰는 방식을 가르쳤다고 한다.

“60세가 넘어가면 눈도 침침해지고 컴퓨터 자판기로 글자를 입력하는 것도 속도가 빠르지 않잖아요. 결국 글쓰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말로 하는 거죠. 완성된 초고를 저와 수강생들이 번갈아 수정하고 교정까지 보는 과정을 거칩니다. 수강생들은 ‘스튜처(스튜던트와 티처를 합친 말)가 되는 셈이죠.”

나씨는 책 출판을 하면서 노·장년층은 인생 자체가 인문학 덩어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씨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더 이상 입력을 하지 말고 이제는 출력을 할 때”라고 말한다. ‘출력하는 것’은 글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정리해보고 이를 책으로 펴내는 일을 뜻한다. 그것이 노년기 새로운 인생 설계의 출발점이라고 나씨는 믿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노인대학 교육 개선 필요

지난해 6월 대금교실 학기를 마친 대금교실 수강생들이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열린 축제에서 연주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금교실 학기를 마친 대금교실 수강생들이 ‘50 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열린 축제에서 연주 공연을 하고 있다.

인생재설계학부, 커리어모색학부, 일상기술학부 등 3개 학부로 나뉘어 165개의 강좌가 운영되고 있는 ‘50 플러스’ 캠퍼스는 정부와 각 지자체가 노인 재교육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어 좋은 모델로 삼을 만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에서 [월간중앙]이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50 플러스’ 캠퍼스에서 60대 중반~70대에 이르는 적잖은 수강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기존 방식의 노인 교육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50 플러스’의 교육 프로그램은 그 대상이 노년기를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이기 때문에 60대 후반에서 80대까지의 노령층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에 똑같이 적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교육방식, 전문 강사진의 질적 수준,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 과정, 충분한 교육기간 등은 벤치마킹할 만하다.

현재 각 지역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회성 내지는 단기간에 걸친 취미활동과 특강, 건강 관련 프로그램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 재교육의 대표적 기관으로 여겨지는 노인대학 역시 다양성이 떨어지는 교육 콘텐트, 수준 높은 강사 섭외의 어려움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노인대학은 경로대학, 노인학교, 노인평생교육원, 노인교실 등 노인 대상 교육기관을 포괄해 부르는 이름이다. 법적으로 노인대학이라는 명칭은 없고, 노인 여가시설(노인복지법 제36조) 중 노인교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인대학은 복지와 평생교육이라는 두 가지 축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개는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운영 주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운영 일수는 주당 1회가 대부분이며 여름·겨울방학을 제외하고 보통 6~8개월간 문을 연다. 프로그램은 특별활동이나 강의를 통한 교양강좌와 함께 경로식당, 미용봉사, 생신잔치, 건강검진 등의 복지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1년에 2회 정도 졸업여행이나 효도관광, 견학, 야유회 등 나들이 행사도 갖는다. 강좌는 건강증진, 교양교육이 대부분이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은 예배와 노래율동, 특강 등이 추가되는 정도다.

과거의 70대와 현재의 70대는 똑같지 않다. 사회적 경험이나 경력도 다양할 뿐 아니라 대학까지 졸업한 고학력자가 빠른 추세로 늘고 있다. 하지만 노인 재교육 프로그램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14년 강원 발전연구원이 펴낸 ‘노인대학 활성화방안 연구’는 우리나라 노인 재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연구원은 우리나라 노인대학의 문제점을 5가지로 정리했다. 재정 부족 및 외부강사 섭외의 한계, 프로그램 개발상의 어려움, 노인들의 욕구 다양성과 지적 수준 상이에 따른 어려움, 강사 확보 및 자질문제, 교육환경 등이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노인의 경력·학력 등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 공통된 노인대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전담할 부서나 기관을 설치해 제대로 된 노인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노인회 교육총괄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이병순 우정 연수원 원장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노인들의 학습욕구가 강하고 다양할 뿐 아니라 높은 질적 수준을 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노인 교육을 단순한 노인복지 개념의 1차원적 접근에서 벗어나 이제는 노년층의 니즈(needs)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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