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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무릎 엄마’가 또 무릎 꿇어야 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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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교육팀 기자

박형수 교육팀 기자

“내년 3월 (특수학교) 개교한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죠. 그런데 또다시 반년이나 연기된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장민희(46)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토론회’에서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호소하며 ‘무릎 엄마’로 불렸다. 그는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제발 학교를 짓게 허락해달라”며 간청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쇼하지 마라”며 야유를 보냈다.

이런 장씨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졌다. 소셜미디어에선 특수학교 신설에 대한 지지 서명이 이어졌다. 여론이 들끓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특수학교 설립은 타협하고 양보할 사안이 아니다”며 “서울 강서지역과 강남·서초지역에 특수학교를 신설해 2019년 3월 개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지난해 9월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역민 앞에서 무릎 꿇은 장민희씨. [중앙포토]

지난해 9월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역민 앞에서 무릎 꿇은 장민희씨. [중앙포토]

그러나 시교육청은 내년 3월로 예정했던 특수학교 개교 일정을 6개월 연기한다고 22일 발표했다. 이번 달 착공하기로 했던 공사 일정도 지방선거 이후인 6월로 미뤘다. 그 때문에 일각에선 “주민들 표를 의식해 공사 일정을 미룬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공사 면적이 넓어지고 내진보강 설계를 추가하면서 늦춰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특수학교 개교를 손꼽아 기다리던 장애학생과 그 학부모에겐 6개월이 6년 같은 시간이다. 서울에서 특수학교는 2002년 경운학교(서울 종로구) 설립 후 한 곳도 추가로 짓지 못했다. 주민들의 반대, 교육 당국의 안이한 태도에 늘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 연말 특수학교 설립 문제가 급물살을 탈 수 있던 건 장씨를 비롯한 학부모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져서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들은 또다시 ‘찬밥’ 신세가 될 위기에 놓였다. 내년 개교를 손꼽아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1년 뒤 새 학교에 입학할 생각으로 부풀어 있는 아이에게 아직 연기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며 “공무원 입장에선 ‘고작 6개월’일 수 있지만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아주 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헌법에 보장된 전 국민의 권리다. 22일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11조 1항)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무릎을 꿇어야만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릴 수 있고, 당연한 권리도 읍소해야만 보장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는 과연 정상인 걸까.

박형수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