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학 성폭력 예방교육실태 공개한다더니 ‘눈 가리고 아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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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교육부가 내놓은 관련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대학별 성폭력 예방교육 실적을 공개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세부 계획을 살펴보니 단순히 교육 실시 여부만 O·X로 공개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21일 오후 조소전공 K교수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및 처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뉴스1]

이화여대 학생들이 21일 오후 조소전공 K교수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및 처벌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뉴스1]

미투 운동이 학교와 대학에서 계속되자 교육부는 지난 3월 5일,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대학 분야 대책은 크게 3가지였다. ‘각 대학 신고센터 실태조사’, ‘문제 대학 특별조사’, 그리고 ‘대학정보공시에 폭력예방교육 실적 반영’이다. 앞선 두 대책은 대학을 조사한다는 내용이고,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은 사실상 폭력예방교육 실적을 공개한다는 것 뿐이었다. 교육 실적을 공개해 대학의 교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었다.

교육부가 5일 발표한 성희롱,성폭력 대책 중 대학 분야 대책.

교육부가 5일 발표한 성희롱,성폭력 대책 중 대학 분야 대책.

성폭력예방 동영상만 올려놔도 '교육 실시' 간주

대학별 성희롱·성폭력예방교육 현황은 올해 10월에 처음으로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academyinfo.go.kr)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최근 교육부가 각 대학에 안내한 대학정보공시 지침을 확인해보니 대학에서 교육을 실시했는지 여부만 O·X로 표시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에서 실제 교육이 얼마나 충실히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나 교수·학생의 참여율 등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대학 홈페이지에 성폭력 예방 동영상만 올려놓아도 정보 공시 사이트에서는 교육을 한 것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한 대학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안내하고 있다. 한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재생하고 50분만 지나면 이수완료된다는 내용이다. [홈페이지 캡처]

한 대학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안내하고 있다. 한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재생하고 50분만 지나면 이수완료된다는 내용이다. [홈페이지 캡처]

정보 공시 사이트에 예방교육을 하지 않아 ‘X’표시를 할 대학은 한 곳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은 양성평등기본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예방교육통합관리 자료에 따르면 모든 대학이 예방교육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모든 대학이 교육을 실시했다며 ‘O’표시할 정보를 교육부가 미투 운동의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고위직 예방교육 참여율, 대학교수가 꼴찌  

문제는 대학에서 이뤄지는 예방교육의 참여율이 다른 기관에 비해 낮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0월 폭력예방교육(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참여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교수의 참여율은 66.5%로 국가기관(87.1%), 공직유관기관(92.3%) 등의 고위직 교육 참여율에 비해 낮았다. 대학생 역시 교육 참여율이 36%로 초·중·고교생이 90% 이상인 것에 비해 낮았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신입생 대상으로 전체 교육을 하고 교육 영상을 홈페이지에 탑재하는 정도는 모든 대학이 당연히 하는 일이다. 교육 실시 여부만 공개해서는 교육 참여율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공개 정보의 부실함을 인정하면서도 대학 편의를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이해숙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장은 “교육 방식이나 참여율 등의 정보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공개 항목을 추가하는게 대학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대학별 예방교육 정보를 수집하는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내년에는 공개 항목을 개편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교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한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해숙 박사는 “기업이나 초중고교와 다른 대학만의 상황에 맞춘 교육 콘텐트와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교수는 한 곳에 모여 교육 참여를 강제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 살아남기 어렵다는 학내 문화와 처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안내하는 방식의 교육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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