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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청소기' 신화 쓴 한경희 대표 "선택과 집중으로 재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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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회생 절차를 끝내고 재도약을 꿈꾸는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오종택 기자

기업회생 절차를 끝내고 재도약을 꿈꾸는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오종택 기자

15년 전 처음 나온 스팀청소기는 청소 풍경을 바꿨다. 100도가 넘는 김을 뿜어내며 바닥을 닦는 1.5kg짜리 막대의 등장은, 허리와 무릎을 구부려 연신 방바닥을 훔쳐야 했던 걸레질을 대신했다. 집집마다 진공청소기 옆에 나란히 스팀청소기를 두기 시작했다.

국내 처음으로 바닥형 스팀청소기를 개발한 한경희(54)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는 맞벌이 주부로 공무원이었다. 손걸레질 도중 떠올린 아이디어로 스팀청소기를 만들었다. 2003년 40억원대에서 시작한 매출은 2년 만에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하는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50인’에 올랐다.

회사는 몇년 전부터 흔들렸다. 2014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더니 이듬해엔 순손실이 300억원대를 넘어서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음식물처리기와 화장품, 정수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스팀청소기 이후 이렇다 할 히트제품을 내지 못했고 그 사이 유사제품이 쏟아졌다. 2014년 잠시 유행하던 탄산수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미국 기업과 송사에 휘말리는 등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휘청거렸다.

결국 지난해 봄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 절차에 들어갔지만 채권단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어렵게 지난해 말 법원에서 기업회생(법정관리) 인가를 받았고 4개월 만인 20일, 회생절차를 졸업하게 됐다.

회생절차 졸업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금천구의 한경희 생활과학 본사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그는 “회사가 이익이 나야 좋은 제품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주력 제품 위주로 사업 분야를 조정하고 유통 방식도 바꾸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업회생절차 졸업이 어떤 의미인가.

“존속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이 재도약할 수 있게 돕는 절차인데 지난해 6월 회생 절차를 개시해 11월에 법원에 계획안을 인가받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상환 계획을 세웠고 그에 맞춰 채무변제를 시작했다. 회생절차를 졸업했다는 건, 앞으로 한경희 생활과학이 10년 동안 정상적으로 경영될 거란 판단을 받은 셈이다.”

회생 절차를 밟는 동안 경영 상황은.

“워크아웃 때 채권단 가운데 한 곳이 회사를 넘길 것을 원했는데 내가 동의하지 않았고 부결됐다. 차선책으로 회생신청을 했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법정관리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가 있지 않나. 가전회사는 AS 문제가 맞물려 있어 물건을 사도 수리를 못 받을까 봐 소비자가 덜 산다. 다행히 회생 개시 이후 지난해 8월부터 규모가 크진 않지만, 흑자로 돌아섰다. 제품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큰 도움이 됐다.”

위기를 맞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품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고 싶었다. 처음에 한 제품만 할 때는 그게 가능했다. 워낙 많이 팔려 낮은 마진으로도 회사가 돌아갔다. 그런데 스팀청소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판매가 줄고 영업이익도 줄기 시작했다. 일정 자금이 돌아야 하는 구조에서 여러 품목을 자꾸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졌다.”

앞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건가.   

“좋은 제품을 팔되 이익도 나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스팀청소기나 다리미처럼 핵심 제품에 주력하고 품질보다 가격을 많이 낮춰 팔던 제품은 아예 접으려 한다. 회사 경영이 가능한 수준의 이익이 나올 수 있도록, 그런 제품에 집중하려 한다. 이익을 내기 힘든 홈쇼핑 위주의 유통 판로도 바꾸기로 했다.”

유통 판로를 어떻게 바꿀 생각인가.

“직접 방문해 판매하는 유통조직을 구상하고 있다. 대량판매 가능한 품목은 홈쇼핑 판매를 계속하고,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새로운 제품, 재고를 많이 둘 수 없는 제품은 직접 판매를 할 생각이다.”

 기업회생 절차를 끝내고 재도약을 꿈꾸는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오종택 기자

기업회생 절차를 끝내고 재도약을 꿈꾸는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오종택 기자

위기 극복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발을 땅에 제대로 딛지 않고 이상적으로만 생각한 것 같다. 경영은 개인의 선함의 차원을 넘어 굉장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함을 깨달았던 시간이다. 뼈아팠지만 경영자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라 여겼다. 고객 응원도 컸다. ‘요새 한경희 어렵다는데 내가 제품을 사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도 받았다.”

앞으로 계획은.

“신제품 개발을 소홀히 한다는 건 아니다. 당장 다음 달엔 세탁소에서만 쓰던 고압력 스팀다리미를 가정용으로 선보인다. 일반 다리미보다 깨끗하고 완벽한 다림질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스팀이 워낙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다 보니 로봇으로 물걸레 청소는 어려웠는데 앞으로 1~2년 안에는 스팀 로봇청소기도 만들 생각이다.”

대기업도 최근 생활 가전에 뛰어들고 있다.

“대기업은 백색가전 위주라 겹치는 분야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스팀이나 살균 기술은 독보적 위치에 있다고 자신한다. 대기업이 유사품을 만들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빈부 상관없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탄탄한 회사로 거듭나겠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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