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의 소외계층 그린 M-TV의 『홍도화』|참신한 소재…조용한 변혁|왜곡된 사회구조의 희생물 통해 "맑은 삶"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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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내용의 현실성부재가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국내 TV드라마가 최근 서서히 「오늘 이곳의 삶」에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근의 정치상황이 5공화국의 폭압적인 통치방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식인들사이에 한국사회 성격논쟁이 활발하게 이는등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이 심화되고 노사분규, 미농산물수입반대등에서 나타난대로 노동자·농민등의 「자기의식」이 강화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M-TV가 5일밤 방영한 『베스트셀러 극장-홍도화』 (이수광원작 김승수연출)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을 차분하게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한마디로 TV드라마소재의 「조용한 계층이동」이었다고 볼수있다.
드라마『홍도화』의 표면구조는 흔히들「시다」로 불리는 10대 남녀공원의 짧은 사랑이야기.
얼핏 황순원의 유명한 단편소설 『소나기』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막 자아와 이성에 눈을 뜨기시작한 두남녀공원의 맑은 눈을 통해 저임금, 임금체불,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사회의 지배계층, 이의 변혁을 꿈꾸는 대학생과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좌절등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애정드라마가 아니다.
굳이 애정드라마라고 인정한다하더라도 드라마『홍도화』는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구로공단인생의 건강한 사랑이, 그것을 불가능케하는 사회구조에 의해 어떻게 훼손당하는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강조하고 있지않다. 이 드라마의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전에 현실의 폭력앞에 굴복한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여러가지의 결점을 안고있다.
또노동자들의 삶을 그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한계를 지적할수도있다.
그러나 『홍도화』는 많은 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가 외면해온 계층의 삶을 그나마 차분하고 자세하게 그렸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할수있다.
이 드라마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승리가 아닌 패배를 통해 그들의 삶도 언젠가는 패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서정적으로 영상화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드라마의 무대가 여러가지 정황과 줄거리로 보아 엄연히 80년대 노동자들의 꿈과 절망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중 시간을 70년대 유신시대로 표현한것은 결코 정직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그것이 바로 국내 TV드라마가 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넘어야할 가장 중요한 벽이다. <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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