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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루에 올라 조상의 생각을 헤아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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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호 09면

충남 서산 부석사 종 앞에 걸려있는 당목의 끈을 찍은 '일승의 끈'(2016). 다 해지고 튿어졌어도 사력을 다해 당목을 지탱하고 있다. 사진 정명식

충남 서산 부석사 종 앞에 걸려있는 당목의 끈을 찍은 '일승의 끈'(2016). 다 해지고 튿어졌어도 사력을 다해 당목을 지탱하고 있다. 사진 정명식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시설직 직원 정명식(41)은 대목수다. 궁궐과 왕릉에 있는 각종 건축물을 보수하는 직영보수단에서 2011년부터 대목과 드잡이공(기울어진 목조건축물이나 석조물을 밀고당겨 바로잡는 사람)으로 일하고 있다. 외고조할아버지, 외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한옥을 지어온 대목수 집안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호남대 건축학과에서 설계를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한옥 짓는 현장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눈썰미를 키우고 우리 건축의 뼈와 살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사진 찍는 대목수… 문화재청 직영보수단 정명식의 남다른 포커스

종묘의 지붕 위에 올라가 찍은 사진 '종묘'(2013). Archival Pigment Print. 63cmx50cm. 월대와 박석과 지붕이 조화롭다.

종묘의 지붕 위에 올라가 찍은 사진 '종묘'(2013). Archival Pigment Print. 63cmx50cm. 월대와 박석과 지붕이 조화롭다.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대패라면 다른 한 손에 들려있는 것은 카메라다. 1996년 대학 1학년 때 고건축 답사동아리에서 송광사 사진을 처음 찍은 이래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건축물 사진을 찍어왔다. 작은 RF카메라를 갖고 다니다가 2003년부터는 SLR 카메라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져온 실력 덕분에 보수 작업 후 보고서용 사진 작업은 으레 그의 몫이 됐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에서 네 명의 작가들과 ‘SEOUL soul of Korea’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도 연 작가다. 일반인은 접근조차 쉽지 않은 궁궐과 고택을 종횡무진 오가며 잡아낸 ‘대목수 사진가’의 시각은 과연 남달랐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그를 개편 첫 호의 주인공으로 초대한 이유다.

대목수 사진가는 등장도 남달랐다. 민머리에 두건 차림으로 서울시 공용 자전거를 타고 만나러 왔다. 시내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다닌다고 했다. 날렵한 몸매가 범상치 않아 물어보니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했단다. 중학교 땐 전남도대표였고 해군 부사관 시절엔 교관까지 지냈다(2005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태권도 시범단 통역 자원봉사자로 만난 9살 연하의 부인은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역시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그의 도반이다).

“한옥 설계 도면 읽는 법 배운 것이 도약 계기”

그는 처음부터 목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군대 갔다와서 늦게 복학했는데 교수님 덕분에 광주에 있는 한옥설계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학교는 3일 다니고, 한옥 시공현장에서 4일을 지내는 식이었죠. 건축 사무실에서 설계 도면 읽는 방법을 배운 것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어요. 일반 목수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거든요. 기술적인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도면을 정확하게 읽고 일을 분배하고 먹을 놓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영주 부석사’(2017)

‘영주 부석사’(2017)

어린 나이에 현장을 이끌기 시작한 ‘꼬마 목수’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한옥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강릉 선교장 이강백 관장이 전통문화체험관 신축과 행랑채 복원을 그가 속한 팀에 맡긴 것. 그게 2006년이었다. “관장님이 이쁘게 봐주신 덕분에 큰 공사를 할 수 있었고 큰 경험도 얻을 수 있었죠. 관장님은 쉬는 날이면 저를 데리고 전국의 종갓집을 다니셨어요. 논산 명재고택,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을 찾아 어르신들을 뵙고 고택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해남 미황사’(2013)

‘해남 미황사’(2013)

2009년 문화재청 위탁으로 설립된 국가문화재 보수반에서 서른 둘의 나이로 전체 총괄팀장 및 현장 보수반장을 맡게 됐다. 당시 152개에 달하는 전국의 국가지정 고택(현재는 170개가 넘는다)을 다니며 점검하고 고치는 일이었다. 소목·와공(기와)·미장공으로 구성된 보수반원들과 함께 전국의 모든 고택을 2년간 서너 번씩 가봤다.

“못질 하나 맘대로 할 수 없다며 불편을 많이 호소하셨어요. 대표적인 것이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안방 옆에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 처음엔 문화재라 안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설치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런 것들을 점검하는 것도 저희 일이었죠.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에서 예산이 늘어난 곳은 우리 팀 밖에 없었대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죠.”

“어르신은 왜 여기에 집을 앉히셨을까?”  

‘영주 부석사’(2007)

‘영주 부석사’(2007)

그는 사진 찍는 법을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작가들 만나 이야기하고 인터넷 사진 사이트에 올려 평가를 받으면서 조금씩 늘어났다고 했다. “처음에 인터넷에 올릴 때는 남들의 시선이 우선이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있어보이는’ 사진을 찍었죠. 댓글이 많이 달리고 ‘오늘의 포토’에 선정되고 하는 것들이 너무 즐거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사진을 왜 찍지? 자랑하려고 찍는 건가? 이게 쌓이면 기록이고 아카이브가 되는데, 나만의 철학은 뭐지?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 기준은 자연스럽게 우리 건축으로 수렴됐다. ‘이 집의 이야기를 나만의 시선으로 담고 누구에겐가 얘기해주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처음에는 일만 생각해 훼손 부위만 찍었지만, 점차 기록을 위해 전체 가옥의 다양한 모습을 같이 담게 되었다. 특히 지붕 용마루에 올라가 전체 공간을 조망하는 것은 그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지붕 용마루는 집을 지은 어르신의 생각과 집의 스케일을 느끼기에 딱 맞는 자리였다. 방향을 잡으면서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앉혔나 새삼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붕에서 집과 주위를 내려다보는 시각은 자연스럽게 ‘루프톱’ 시리즈가 됐다. 종묘 지붕 위에서 내려다본 작품이 대표적이다.

‘조선왕릉 파주 장릉’(2013)

‘조선왕릉 파주 장릉’(2013)

“궁궐 사진도 찍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저는 목수고 그래서 사진 언어가, 해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담양 명옥헌 원림은 배롱나무로 유명한 출사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만개한 백일홍을 찍는데, 다 똑같아요. 대신 저는 이 집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죠. 왜 정자를 여기에 잡았지? 제가 찍은 사진은 해질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덩그마니 남아있는 명옥헌이었어요. 기둥이나 지붕은 어둑어둑 사라지고 마루에만 떨어진 빛, 이 공간이 왜 여기에 존재하는 지 그것 하나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20분, 창덕궁 향나무 앞 ‘사진 일기’  

창덕궁 사무실로 출근하는 아침마다 새벽 6시 20분이면 그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예식’을 치른다. 2011년 5월 2일 문화재청에 입사한 이래 딱 두 번 빼놓고 거르지 않은 행사다. 창덕궁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 앞에서, 창덕궁 건물들의 중첩된 실루엣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는 담배를 찾고 누구는 화장실에 가지만 저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저만의 의식이랄까. 탁 찍고 들어가면 하루 일과가 비로소 시작되지요. 제목은 ‘AM0620’입니다. 건물이 얼마 안 돼 보이지만 사실은 수십 채가 겹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창덕궁의 역사이지요.(관계기사 35면) 한두 장일 때는 별 의미가 없었는데, 7년째 하다 보니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년간 이 작업을 한다면, 창덕궁 600년 역사에 20분의 1을 나만의 시선으로 내가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종묘대제’(2013)

‘종묘대제’(2013)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물었더니 종 치는 당목을 붙들어맨 천 얘기를 꺼냈다. “제가 한때 교만했어요. 정말 많이 찍었거든요. 나보다 문화재 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게 사진을 시작해 한 10년 찍었을 때쯤이에요. 2006년 초파일 다음날이었는데, 서산 부석사로 종을 찍으러 갔다가 당목 끈을 딱 보는데, 뭔가 확 밀려오더라고요. 종만 잘 찍으려 했지, 종소리가 잘나도록 하는 당목을 묶어놓은 이 끈과 수행자의 흔적을 미처 보지 못했구나. 다 헤지고 튿어진 모습에 뭔가 북받쳐 올라 엉엉 소리 내 울었어요. 제가 여러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주제마다 10년 정도 쌓이면 그렇게 다른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업그레이드되는 것이겠죠.”

‘합천 해인사’(2014)

‘합천 해인사’(2014)

하지만 사진가는 그의 공식 직함이 아니다. 지금도 근무시간에는 개인용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사실 민감한 문제죠. 그런 것을 응원해주는 분도 계시지만 싫어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업무보고용 사진 외에 개인용 사진은 쉬는 날 따로 시간을 내거나 모든 작업이 끝난 맨 마지막에 찍습니다. 안전발판을 해체하기 직전, 작업이 끝난 목수의 마지막 기록이라는 느낌을 담아서요.”

‘예산 수덕사’(2016)

‘예산 수덕사’(2016)

그래서 그의 작업은 더디다. 어떨 때는 3개월에 한 장 나올 때도 있다. 그렇게 찍은 작품은 연구자의 도판도 되고 관광객용 엽서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을 물었다. “리플리카(복제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중요한 유물은 복제품을 만들어 놓습니다. 가짜지만 진짜처럼 대접도 하지요. 두 개를 같이 놓고 보면 하나는 문화재지만 다른 하나는 아니잖아요. 겉보기엔 똑같아 보이지만 원형과 복제라는 이야기로 들려드리고 싶어요.”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정명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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