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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北외무상 비핵화 의지 검증받고 북미회담 조건도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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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공항에 도착한 이용호 북한 외무상 일행. [AP=연합뉴스]

스톡홀롬 공항에 도착한 이용호 북한 외무상 일행. [AP=연합뉴스]

 스웨덴을 방문 중인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마르코트 발스트롬 스웨덴 외무장관 등과의 회담에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당초 16일(현지시간) 귀국하려던 일정도 18일로 늦출 것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 외무상은 16일 오전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도 예방한 것으로 확인돼 이 외무상 등 북한 고위급 외교관들의 스웨덴 방문이 북ㆍ미 정상회담의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웨덴 외무 이어 총리와 회담, 현지 언론 "일정 연장" #국제평화연구소 참여해 북한 비핵화 의지 확인 예정 #북한 억류 한국계 미국인 3명 석방 문제도 다뤄질 듯 #"북미 정상회담 얻고 싶은 게 뭔지, 일정과 조건 논의"

스웨덴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귀국을 늦춘 이 외무상은 이날 오전 뢰벤 총리와 짧게 면담했다. 스웨덴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뢰벤 총리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수락 의사를 밝히기 직전에 워싱턴을 방문,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항공에 탑승한 이 외무상 일행은 전날 오후 6시쯤 스톡홀롬 알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게이트로 나오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 대기하던 차량에 탑승한 이 외무상 등은 VIP 접견실에서 대기하다 언론과의 접촉 없이 주스웨덴 북한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어 오후 8시 20분쯤 스웨덴 외무부에 도착해 마르코트 발스트롬 외무장관과 만찬을 함께 하고 오후 11시쯤까지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에는 수년간 북한과 접촉해온 켄트 하스테트 의원도 참석했다.

 스웨덴 현지 SVT 뉴스는 “이 외무상 일행이 당초 일정을 일요일 귀국으로 늦추고, 회담 주제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고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외무상과 발스트롬 외무장관 등과의 회담에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참여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SIPRI는 스웨덴 정부가 출자해 만든 외교문제연구소로, 핵 군축을 비롯해 군사ㆍ안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 [AP=연합뉴스]

이용호 북한 외무상 [AP=연합뉴스]

 앞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의사를 한국 정부의 특사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전했다. SIPRI는 북한이 어떤 수준에서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외교부는 당초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상황이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알린 바 있어 북미 회담에 앞서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이미 “만약 스웨덴이 대화를 촉진하거나 연결하는 등 무엇이든 역할을 하길 주요 당사자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지 매체 TT는 “이번 스웨덴 회담의 준비에는 남ㆍ북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관여했으며, 회담 의제는 크고 작은 주제가 모두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대표단 일행이 스톡홀롬 북한 대사관에 도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북한 대표단 일행이 스톡홀롬 북한 대사관에 도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웨덴은 1973년부터 북한에 대사관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 호주 국민의 북한 내 권리를 보호하는 영사 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3명의 석방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북미 회담에 앞서 억류 미국인을 풀어주는 것은 북한이 신뢰를 보일 수 있는 조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웨덴 외무부 피즈만 피브린 대변인은 “스웨덴은 한반도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화와 평화적 해법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 회담은 당사국 간에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회담에서 북미 관계뿐 아니라 대화를 장기적으로 촉진할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스웨덴에서 북미 접촉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미국 정부는 부인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북한과 스웨덴 사이에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미국과 북한 사이의 만남을 기대할 만한 것에 대한 조짐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대표단도 보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 등이 회담을 위해 스웨덴 외무부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용호 북한 외무상 등이 회담을 위해 스웨덴 외무부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에 따라 스웨덴에선 북미 간 직접적인 만남 대신 정상회담을 앞둔 대리 실무 논의가 진행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지 언론은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외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그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최고위급 외교관이 이 외무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이 외무상이 직접 스웨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대리하고 있는 스웨덴과 정상회담과 관련한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회담은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정상회담의 조건과 예상 일정 등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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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은 판문점 등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후보지로도 꼽히고 있다.

 한편 이 외무상과 함께 베이징을 찾았던 '대미 외교 담당'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은 스톡홀롬에 오지 않아 중국과 협의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외무상의 스웨덴 외교부 방문에 최 부국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톡홀롬=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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