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달라지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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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번 청와대회담을 제외하고는 총선 후 정국흐름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정치환경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의 대응자세 역시 구태의연해 답답한 느낌을 주어 왔는데 최근 새로 기대를 걸 만한 몇 가지 조짐들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갖게 한다.
그 동안 4당은 5공화국비리, 광주문제, 악법개폐, 국회법개정 등 현안들을 놓고 협상을 거듭해 왔으나 협상자세에 있어서나 문제해결의 의지에 있어서나 구시대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인상을 보여 왔다. 현안을 다룰 특위 구성을 놓고 각 정당은 어느 당이 어느 특위의 위원장을 차지하느냐로 신경전을 벌였고, 국회법개정에 있어서도 증설할 상위의 수와 위원장 배분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창 사회적 관심이 비등한 일부학생의 급격한 통일논의나 노사분규 등에는 정계의 관심이나 노력이 제대로 표현되지도 못해 정치인들은 뭘 하고 있느냐는 질책까지 각계에서 나오는 판이다.
여권은 5공화국비리, 광주사태 등의 조사에 엉거주춤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 채「야대」정국에 대응하는 내부태세를 정립하지 못한 것 같았고, 야권은 야권대로 당리당략적 입장을 한 자락씩 깔고 그전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는 자세를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이런 답답한 정국상황에서 여권이 5공화국비리, 광주사태 등에 대해 적극 자세로 전환키로 하고 통일문제 등에도 정부주도의 적극자세를 보인 것은 바람직한 일로 보여진다. 과거비리나 광주사태 등은 여권으로서는 밝히기 싫더라도 오늘의 상황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리고 국정책임을 진 이상 언제까지나 어정쩡한 자세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여당이 그 동안 매사에 작심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다가 차츰 뭔가 내부적으로 정리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정국대처에 대한 여권의지와는 직접 관련은 없는 일이지만 최근 청와대당국이 대통령경호요원을 공채 키로 했다는 것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완강한 권위주의의 한 상징처럼 보여 온 대통령 경호 실에 보통사람이 시험을 쳐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대통령과 국민을 좀더 가깝게 해보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고 싶다. 작다면 작은 일이지만 이런 발상을 사고 싶은 것이다.
야권에서도 색다른 현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전문위원을 공개 모집키로 한데 이어 김영삼 총재가「안방정치」의 청산을 선언한 것이다.
김 총재의 선언은 단순히 당무처리나 사람접견을 상도동 자택이 아닌 당사에서 하겠다는 뜻이 아닌 줄 안다. 이는 아직껏 전근대적, 가부장적 운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야당을 이제부터는 좀더 근대적, 합리적으로 운영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야당정치를 개인의 밀실에서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무실로 끌어내겠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결정이 오늘날 야당이 안고 있는 사당 또는 붕당 적 한계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시대적 상황은 정치와 정치인의 새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감투배분이나 금방 간 취될 당리당략적 정치로는 더 이상 국민을 끌어갈 수도 납득시킬 수도 없다. 5공화국 비리, 광주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풀어 가는 데서부터 각 정당은 보다 전향적 자세로 국민여망을 실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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