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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 뇌파도 분석 … 사람보다 깐깐한 AI 면접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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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으로 면접을 보는 모습. 자기소개는 물론 다양한 상황에 따른 돌발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최현주 기자]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으로 면접을 보는 모습. 자기소개는 물론 다양한 상황에 따른 돌발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최현주 기자]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비싼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본인이 계산하겠다고 했는데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상대에게 실제로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말해주세요.”

인공지능 면접 실제로 해보니 #PC에 이름·수험표 입력하면 시작 #얼굴에 68개 포인트 정해 표정 분석 #SK C&C·롯데 등 대기업 속속 도입 #객관적 평가, 비용 절감 장점이지만 #인성·잠재력 판단 미흡한 점 보완을

“10년 만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개인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가 어려워져 보험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액수가 큰 보험상품에 가입해달라고 사정하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인공지능(AI) 면접관의 질문은 예상보다 당황스러웠다. 생각할 시간(30초) 안에 최선의 대답을 고민해서 주어진 답변 시간(60초) 동안 대답해야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장단점을 말해보라는 질문부터 여러 가지 상황에 따른 돌발질문에 답하고 나니 인물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표정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를 고르는 것이다. 놀람·슬픔·분노·경멸·공포·기쁨 등의 예시가 주어졌다. 간단한 온라인 게임도 했다.

건설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기업 마이다스아이티가 지난 7일 서울 양재동 ‘더 케이 호텔’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 ‘인 에어’는 이런 식으로 1차 면접을 비롯해 서류검사, 인·적성 검사를 한꺼번에 진행했다.

인공지능은 답변하는 지원자의 표정 변화와 목소리, 뇌파까지 분석해낸다. [최현주 기자]

인공지능은 답변하는 지원자의 표정 변화와 목소리, 뇌파까지 분석해낸다. [최현주 기자]

인 에어는 입사지원자의 얼굴 근육, 목소리는 물론 뇌파까지 분석했다.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착용하고 깔린 PC에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한 뒤 얼굴·목소리 인식 과정을 거치고 나니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됐다. 화면에 질문이 뜨면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중간에 답을 선택해야 할 때는 마우스로 원하는 답을 클릭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 인공지능은 지원자의 얼굴에 68개 포인트를 정하고 표정이나 근육의 움직임을 실시간 분석했다. 음성의 높낮이나 떨림, 속도는 물론이고 자주 사용하는 어휘와 심장박동, 맥박, 얼굴색 변화까지 감지했다. 이와 함께 뇌를 6곳으로 나눠서 뇌파까지 분석했다. 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는 “뇌신경과학과 생물학 기반으로 각 회사에서 원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다면적으로 평가하고 선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입사지원자의 분야별 평가와 종합적인 견해를 담은 평가서를 인사담당자에게 제공한다. [최현주 기자]

이후 입사지원자의 분야별 평가와 종합적인 견해를 담은 평가서를 인사담당자에게 제공한다. [최현주 기자]

국내 채용 시장에서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검토부터 인·적성 검사, 면접까지 담당하는 ‘숨은 면접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1월 SK C&C는 인공지능 ‘에이브릴’을 활용해 SK하이닉스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 전형을 치렀다. 롯데그룹도 올 상반기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서 인공지능을 도입(서류전형)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면접은 그날 면접을 맡은 담당자의 취향이나 생각은 물론 그날 기분에 따라서 결과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반면 인공지능은 객관적인 데이터로만 평가한다.

익명을 원한 한 인사 담당자는 “최근 연일 터지는 채용 비리도 인공지능 채용에 관심이 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현재 채용 시스템에 대한 불신 등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 매력적이다. 인공지능이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초다. 1만 명의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데 8시간이 걸린다. 같은 일을 인사 담당자 10명이 처리하면 하루 8시간씩 7일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인공지능이 채용에 활용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5월부터 IBM의 인공지능인 ‘왓슨’을 활용해 신입사원 서류 심사를 하고 있다. 그간 회사가 축적한 면접 질문과 데이터를 숙지한 인공지능은 회사가 선호하는 인재상을 기준으로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IBM은 1차 면접 단계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인공지능이 전화 인터뷰나 화상 면접으로 지원자와 대화를 나눈 후 뽑은 선정자를 인사 담당자가 심층 면접을 하고 최종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에만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향후 성장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면접 과정에서 사람이 아닌 PC를 보고 답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다. 면접을 보는 내내 긴장감이 떨어지고, 불편하다는 지원자들의 반응도 많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을 도입한 대부분 기업에서는 아직 인사 담당자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서미영 인크루트 대표는 “결국 인성과 잠재력을 가장 잘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라며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의 객관성이나 효율성을 활용하되 최종 채용에 참고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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