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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경제교사 “트럼프 목표는 적자 감소보다 중국 경제 활력 억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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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08면

스티브 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 인터뷰

스티브 행크 교수는 트럼프 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워싱턴과 베이징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같다“며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스티브 행크 교수는 트럼프 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워싱턴과 베이징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같다“며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제 무역전쟁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수입 철강재와 알루미늄에 보호관세를 매기는 문서에 서명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산은 예외다. 한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은 부과대상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선전포고문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중앙SUNDAY는 ‘레이건의 경제교사’로 불리는 스티브 행크(76) 존스홉킨스대 교수(응용경제학)에게 전화를 걸었다. 1980년대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핵심인 그가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서다.

일본 노린 레이건 무역보복 실패 #거품 터지며 잃어버린 20년 불러 #미·중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한국은 트럼프 핵심 타깃 아냐 #11월 중간선거가 갈림길 될 것

무역전쟁 시작인가.
“미·중 두 나라가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 같다. 중국은 80년대 일본이 아니다. 그때 미국은 일본의 팔을 비틀어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나 중국은 모두 경직돼 있다.”

 

무슨 말인가.
“트럼프 자신과 그의 무역정책 참모 모두 보호무역주의자들이다. 심지어 국방장관도 무역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한번 결정한 것은 쉽게 바꾸지 않는 조직이다. 유연하지 않은 양쪽이 마주 보고 달리고 있다.”

 

이제 무역전쟁 시작이란 말로 들린다.
“워싱턴과 베이징이 대화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타협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에 원하는 게 뭔지 아는가?”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 아닌가.
“그 정도가 아니다. 최근 내가 워싱턴에서 열린 경제포럼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데이비드 말패스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함께 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경제 붐을 약화시키고 이른바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 잡기를 바란다’고 분명히 했다.”

 대미 수출을 줄이기 위해 중국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싶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최근 ‘신(新) 레이건주의’를 내세웠다. 레이건처럼 내부적으론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대외적으론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한다는 얘기다. 레이건의 핵심 경제브레인이었던 행크 교수는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와 레이건의 정책이 닮지 않았다는 말인가.
“감세는 닮았다. 하지만 무역정책은 레이건과 완전히 다르다. 레이건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주의자였다.”

 

하지만 레이건은 일본을 겨냥해 보호무역정책을 펼쳤다.
“일본을 상대로 한 보호무역은 레이건의 본심은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자가 압도적이지만, 레이건 정부 내에서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주의 논쟁이 치열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아주 격렬한 싸움(battle royale)이었다.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쪽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재무부, 행정관리예산국(OMB) 등이었다.”

 

내부 논쟁에서 일본을 겨냥한 보호무역 논리가 이긴 것인가.
“우리(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쪽)가 논쟁에서 패했다. 그때 일본 자동차 때문에 미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 노동계 반발과 정치적 압력이 거셌다. 우리는 자유무역주의를 지키면서 일본 문제를 풀어내야 했다. 물론 결과는 아주 나빴다.”

 

일본차 수입이 줄지 않았다는 얘긴가.
“그런 정도가 아니다. 일본 경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무슨 말인가.
“미국이 일본을 팔을 비틀어(twisted their arms) 엔화 가치를 끌어올렸다(85년 플라자합의). 그 결과는 일본의 자산거품(80년대 후반 가미카제 버블)이 발생했다.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경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그 시절 엔고 때문에 막대한 자본이 일본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었다. 막대한 무역흑자, 넘치는 유동성 등으로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비상했다. 이 거품의 붕괴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보호관세는 효과를 낼까.
“미국의 무역적자는 교역 상대를 압박해 기존 교역질서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도 이번 보호관세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자리는 트럼프의 최우선 목표다.
“그렇지만, 이번 관세로 제철 등 일부 분야에서 조금 생기는 대신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는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

 행크 교수는 일자리 몇 개가 어디서 사라지고 몇 개가 어느 분야에서 생기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미 컨설팅업체인 트레이드파트너십은 트럼프의 이번 보호관세 때문에 미국내에서 일자리 17만9000개가 없어진다는 보고서를 지난주 내놓았다. 대신 철강과 비철금속 분야에서 3만3464개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일자리 14만6000개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동안 동유럽 등 수많은 나라에 경제정책을 자문해왔는데, 한국 정부는 트럼프 보호무역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 낀 나라가 몇 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 나라는 트럼프가 적으로 설정한 중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유탄을 맞고 있다. 한국이나 싱가포르는 트럼프의 주적이 아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움직일 틈이 없어 보인다.
“싱가포르 등과 손잡고 미국 시민과 중국을 겨냥해 자유무역 가치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과 대화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최고 결정권자는 유권자다.”

 

무슨 말인가.
“트럼프가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지면, 마음속 보호무역주의를 버리진 않겠지만 정책변화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중간선거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정치적 상황과 선택이 모두 바뀔 수 있다.”



스티브 행크 1981~82년에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수석 멤버였고 이후엔 아르헨티나와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통화시스템 개혁을 자문한 보수적 경제이론가. 콜로라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여러 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의해 경제자문관으로 발탁됐다. 90년대 말엔 세계 경제정책 수립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경제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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