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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훗날 보물될지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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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3)

미술사, 미술 투자를 강의하는 아트 컨설턴트. 작품 보는 안목을 길러 스스로 작품을 구매해 보고 싶은 사람을 미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해하지 못할 사회 현상과 가치 변동, 경제 상황을 미술을 통해 들여다보자. 알고 느끼고 고민하는 만큼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곱씹게 된다. 훗날 자산 가치가 오를 황금알을 찾아보자. <편집자>

              알렉산더 맥퀸 전시포스터. [사진 허유림]

알렉산더 맥퀸 전시포스터. [사진 허유림]

2015년 3월 빅토리아 앤 앨버트(V & A) 뮤지엄은 『알렉산더 맥퀸: 사비지 뷰티』 전시회를 열었다. 관람자 수가 49만3043명에 달해 이 뮤지엄 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시회로 기록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테이트 브리튼에서도 즐거운 비명이 들려왔다.

영국의 인기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고전이 역대 최고인 47만8082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밤 10시까지 이어진 야간 오픈은 결국 전시 마지막 주엔 자정까지 연장하며 전시 대박을 터뜨렸다. 두 전시회는 입장료 수익만 100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전시 티켓 수입이 아니다. 알렉산더 맥퀸의 전시 기간 중 이베이에서 맥퀸이 디자인한 액세서리와 쥬얼리, 가방 등의 관련 상품은 가히 광풍이라 할 만한 수요를 불렀다. 그중 스카프는 단일 품목 중 최고인 213%의 판매 상승률을 기록했다. 또 V & A 뮤지엄의 아트 숍 판매 금액은 하루 평균 62%씩 늘었다고 인디펜던트지는 보도했다.

2017년 테이트 브리튼의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은 성공 그 이상이었다. 6파운드 (한화 약 1만원)에 판매되던 아트 포스터 8종과 30파운드(약 4만5000원)의 프린트 제품은 매진을 기록했다.

더구나 전시가 끝난 현재까지도 전시 기획 상품의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며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실제 전시 기간 중 단돈 5파운드(약 7500원)에 판매된 알렉산더 맥퀸 전시 포스터는 2년이 지난 지금 이베이에서 최고 200파운드(약 30만원)로 무려 4000%가 올랐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장에서 무료로 배포한 전시 팸플릿은 현재 6파운드(약 1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포스터 가격이 40배 오르고 무료인 팸플릿에 새롭게 가격이 매겨지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현상은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고려불화대전' 도록 8년 새 6배 뛰어

고려불화대전 전시 도록. [사진 허유림]

고려불화대전 전시 도록. [사진 허유림]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 이전 5주년 기념으로 『고려불화대전』 전시를 기획했다. 박물관 측이 소장한 고려시대 나한도와 함께 국내의 리움을 비롯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규수국립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등 44개의 기관 및 소장처에서 고려 불화 61점, 중국·일본 불화 20점, 조선 전기 불화 5점 등을 빌려와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500부 한정으로 도록을 인쇄하였는데, 당시 3만5000원이었던 것이 지금은 15만~2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일부에선 이 도록이 가장 구하기 어려운 도록 1순위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2014년 11월 케이옥션은 수화 김환기의 1956년 전시 포스터가 3870만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복제품에 불과한 포스터가 30배 이상 오르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소책자에 가격이 매겨지는 건 왜 그럴까?

2000년부터 시작된 전 세계 창조산업 분야의 급성장이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멈출줄 모르고 있다. 그 가운데 전시를 기반으로 한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 가운데 파생되는 부가 수입과 이에 따른 투자가치도 상식을 벗어나고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 경제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술시장.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되길래 미술 작품이 수천만 원에서 수십 억원, 심지어 수천 억원까지 천장을 모른 채 없이 오르기만 하는 것일까?

국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국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실제로 올드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박수근의 빨래터가 48억원을 기록하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미국 화가 바스키아의 작품 가격은 1000억을 넘어섰다. 이런 비정상적인 가격을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심하면 사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말 사기일까?

20세기 들어 미술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술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소위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다 아는 작품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정돼 있다. 그러므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의 가치 상승은 당연한 현상이다. 미술 시장의 희한한 가격논리의 첫 번째는 바로 미술사적 가치다. 포스터, 전시토록 등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전시 자료 또한 작품과 같은 역할을 하며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일상생활에 친근하게 다가온 미술품이 이제는 미술관에서의 감상 차원을 넘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유의 개념이 됐다. 게다가 그것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수십 배의 경제 가치로 환원되고 있다. 미술품 투자가 21세기 새로운 자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는 놀랍지 않다.

유명 컬렉터의 절반 가까이가 금융권 종사자  

세계 각국 투자은행은 부동산보다도 안정적이고 고부가 가치를 올리는 미술품을 신종 투자처로 눈을 돌리고 투자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반 은행에서도 고객의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투자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아트세미나와 미술 아카데미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은행과 미술품과의 만남은 미술품을 하나의 투자대상으로 본다면 낯설지 않은 동거다.

독일의 금융전문잡지인 캐피털은 ‘쿤스트콤파스’라는 제목을 달아 해마다 세계 100대 작가의 서열을 매기고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사를 싣는다. 또한 주식처럼 미술품도 지수를 산출하고 있다. 최소한 두 번 이상 거래가 일어난 작품으로 표본을 설정해 평균 수익률을 구한다. ‘메이 &모제스 파인 아트 인덱스’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21세기 새로운 자본이자 투자처라 불리는 미술품의 가격 동향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회장 리언 블랙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걸작 '절규'를 한화 약 1353억원에 사들였다. [사진제공=노르웨이관광청]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회장 리언 블랙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걸작 '절규'를 한화 약 1353억원에 사들였다. [사진제공=노르웨이관광청]

그래서인지 주요 미술품 컬렉터 중 유독 헤지펀드 오너가 많다. 유명 컬렉터 중 금융권 종사자의 비중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높다.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도 피카소의 <꿈>(한화 약 1769억 원)을 포함해 1조원 규모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뭉크의 <절규>를 한화 약 1353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회장 리언 블랙도 금융인이다.

지난 호 칼럼에서 이들이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미술품이 단순한 사치재가 아니라 '부를 만들어내는' 투자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품은 다른 재화와는 달리 감가상각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희소성과 역사가 더해져 가치가 더 오르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문 투자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파급되고 있다. 미술 작품에 대한 투자는 서민은 물론 중산층에겐 쉽지 않다. 그러나 흔한 전시회의 리플렛, 포스터, 기타 기념상품이 생각지도 못한 수익률을 가져오며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수근 그림 외국선 인정 못 받아 

그러나 미술사적인 가치도 예술가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냐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영국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조수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는 영국과 영연방권에서 비교적 비싼 값으로 안정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는 영국의 초대 로얄 미술 아카데미 원장으로 영국 미술에 상당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

그러나 영국 문화권 밖에선 그의 작품은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거래도 뜸하다. 국내 화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박수근과 김환기의 작품이 각각 48억원, 65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국내용 가격일 뿐이다. 왜 그럴까?

미술사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두 번째 요소는 작품의 ‘미적 가치’다. 이 미적 가치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역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이 문화권마다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무엇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heryu122982@gmail.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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