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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이 어땠길래 '왕 같은 존재'로 보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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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 앞에서 활빈단 홍정식 대표가 안 전지사의 엄벌을 요구하며 피켓를 시위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 앞에서 활빈단 홍정식 대표가 안 전지사의 엄벌을 요구하며 피켓를 시위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전 공보비서 김지은(33)씨는 지난 5일 JTBC뉴스룸에서 안 지사에 대해 “왕 같은 존재였다”며 “(성추행 물의를 빚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와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도지사와 수행비서 간의 권력관계도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안 전 지사의 도지사직 수행 태도에서도 ‘왕 같은 존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성을 수행비서로 삼고 외국 출장까지 가도 될 정도로 지방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어려운 ‘지방자치의 허점’도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일 오후 예정된 기자회견을 2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충남도청 공보실 관계자가 안 전 지사 측이 보낸 기자회견 취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일 오후 예정된 기자회견을 2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충남도청 공보실 관계자가 안 전 지사 측이 보낸 기자회견 취소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안 지사의 ‘제왕적 도지사’의 행태는 김씨와 주고받은 텔레그램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안 전 지사는 김씨에게 ‘괘념치 마라’, ‘잊어라.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신의 권력 영역을 왕국으로 생각하는 무소불위 형 행태’라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는 2015년 5월 당진·평택항 매립지 분쟁 때문에 당진 주민들이 삭발투쟁을 할 때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당시 행정안전부가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당진·평택항 매립지(총 96만2350. 5㎡)가운데 28만2760㎡(29%)만 당진 땅으로 결정하자 당진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할 시기였다.
이때 안 전 지사는 귀국해서도 이렇다 할 브리핑도 없었다. 당시 언론에는 그 출장을 ‘안희정 지사의 해양 물류 집중학습’으로 표현했다. 이에 대해 도청관계자는 “공무를 핑계로 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지은 전 충남도청 정무비서의 법률대리인 장윤정 변호사가 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지은 전 충남도청 정무비서의 법률대리인 장윤정 변호사가 6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 27일부터 4박 6일간 자매결연한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개주 9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천안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직후라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민주당 소속 전종한 천안시의회 의장은 “수해 현장에는 20여 분 머무는 데 그쳤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여비서 성폭행 폭로와 관련해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에서 입장 발표를 하려 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취재진이 단상에 놓여있는 방송용 오디오를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비서 성폭행 폭로와 관련해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에서 입장 발표를 하려 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취재진이 단상에 놓여있는 방송용 오디오를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 지사의 해외출장은 이전의 심대평, 이완구 지사 때는 거의 없던 방식이었다. 과거엔 시도지사들도 해외출장엔 시·도민들의 눈치를 봤다. 너무 자주 나가면 뒷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눈치를 보는 시도지사는 거의 없다. 안 지사는 이른바 ‘공부 출장’까지 잦아지면서 해외출장이 많아졌다. 그는 한 달에 한차례 정도 해외로 나갔다.

'안희정 천재지변이 나도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해외 출장' #'기자브리핑도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민원현장보다는 특강' #'말로는 지방자치, 분권, 민주주의 외쳤지만 행동은 반대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의 안 전지사 행사 사진이 지워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지난 8일 오후 충남도청의 안 전지사 행사 사진이 지워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 지사는 정기적인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간부들에게 기자 브리핑을 맡겨놓고 자신은 본인이 하고 싶을 때만 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이 매주 언론브리핑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지사 기자회견이 대통령 기자회견만큼이나 보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6개월 이상 브리핑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에 대해 충남도청 직원은 “대통령이 장·차관에게 업무를 맡기듯이 지방 정부를 청와대 운영하듯이 해보려고 한 것 같다”고 했다.

안 전 지사는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지난 2월 25일 김지은 씨를 불러 또다시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바로 다음 날 도청에서 인권조례 재의 요구 기자회견을 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8일 오후 충남도청 쓰레기 집하장에 안 전 지사의 신문이 버려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 관련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8일 오후 충남도청 쓰레기 집하장에 안 전 지사의 신문이 버려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 전 지사는 도지사이면서도 도민과 도내 민원의 현장보다는 대학생들과 정치판을 찾아가는 데 더 열중했다. 연간 적어도 10번이 넘는 외부 강연은 주로 대학가 등에 집중됐다.
충남도의회가 이런 문제를 비판했지만 소용없었다. 충남도의회의 한 의원은 “안 지사의 독선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안희정 전 지사와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가 주고 받은 텔레그램 내용. [연합뉴스, 중앙포토]

안희정 전 지사와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가 주고 받은 텔레그램 내용. [연합뉴스, 중앙포토]

마땅한 견제장치가 없는 지방자치제도도 ‘제왕적 도지사’를 키우는 데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은 한번 뽑히면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 한 4년 임기가 보장된다. 그러나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안 전 지사가 날이면 날마다 민주주의와 지방 분권을 외쳤지만, 정착 본인이 민주주의나 분권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 셈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左)ㆍ공보비서 김지은씨(右). [중앙포토ㆍJTBC]

안희정 전 충남지사(左)ㆍ공보비서 김지은씨(右). [중앙포토ㆍJTBC]

배재대 행정학과 최호택 교수는 “견제장치 없는 현재 지방자치제도는 비리와 부패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 작업에 ‘지방부패’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안희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성=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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