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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상철의 직격 인터뷰

“국가주석 임기 없앤 시진핑 최소 2035년까지 집권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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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시진핑의 장기 집권 야망 말하는 중국학 개척자 서진영 교수

서진영 교수는 ’시진핑이 마오쩌둥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명기된 사상을 중국 헌법과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시킨 만큼 업적 과시를 위해 앞으로 공세적 행보를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서진영 교수는 ’시진핑이 마오쩌둥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명기된 사상을 중국 헌법과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시킨 만큼 업적 과시를 위해 앞으로 공세적 행보를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중국의 봄철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정협회의)가 한창이다. 관심은 모레 있을 중국 헌법 개정이다. 5년씩 두 번만 맡을 수 있었던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이 사라질 예정이다. 이 경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론상으론 2023년 퇴임하지 않고 계속 집권할 수 있다. 10년 세월을 주기로 바뀌던 중국의 정치 지형이 시진핑 ‘1인 체제’로 고착될 조짐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21세기 중국의 황제가 되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선 ‘황제’나 20세기 초 공화정을 허물고 잠시 황제가 됐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이 금지어가 됐다. 올해 중국 연구 50년을 맞은 한국의 중국학 개척자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나 시진핑의 야망에 대해 물었다.

집단지도체제 무력화시키고 #1인 장기 체제 다지는 시진핑 #단기적으론 효율성 이점 있지만 #출구 없는 독재로 흐르기 쉬워 #시진핑 1기 한반도 정책 대실패 #북한에 뺨 맞고 한국엔 무시당해 #한·중, 실용적 협력은 가능하나 #체제 다른 탓에 우정엔 한계 존재

시진핑이 정말 ‘현대판 황제’를 꿈꾸나.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장기 집권의 문을 연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직 그 문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시작했다. 임기 연장 시도가 너무 빠르지 않나.
“힘이 빠지게 되는 임기 말이 아니라 힘이 절정에 있는 지금 하자는 취지다.”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서두르고 있는 건 맞다. 19차 당 대회 이후 1년에 걸쳐 개최해야 할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와 3차 전체회의를 40여일 만에 끝냈다.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고나 할까. 시진핑도 무시할 수 없는 반대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임기 연장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이다.”
권력 연장이 계획된 것이란 말인가.
“2012년 11월 집권하자마자 준비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야 할 거대한 비전인 ‘중국몽(中國夢)’을 정치적 목표로 내세운 게 시작이었다. 시진핑 정권은 원래 장쩌민(江澤民)의 상하이방(上海幇)이나 후진타오(胡錦濤)의 공청단(共靑團) 등 여러 파벌의 연합 형태로 출범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1기의 부패척결 캠페인을 통해 이들 세력은 거의 붕괴됐고 그 자리가 이젠 시진핑의 사람인 ‘시자쥔(習家軍)’으로 채워졌다. 10년을 주기로 바뀌던 중국의 정치 지형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이다. 이어 덩샤오핑(鄧小平)이 40년에 걸쳐 구축한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시키며 1인 체제를 다지고 있다.”
다수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국가를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는 중국의 장점 아닌가.
“맞다. 중국 학자 후안강(胡鞍鋼)은 덩샤오핑이 설계한 집단지도체제가 있었기에 중국의 정치가 안정돼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집단지도체제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이 있다. 우선 임기제다. 국가주석 2연임 규정 등. 두 번째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경우 67세는 가능하지만 68세는 안 된다는 칠상팔하(七上八下) 규칙과 같은 연령제다. 이 같은 임기제와 연령제가 있으면 절대 권력이 생길 수 없다. 그리고 끝으로 차차기 후계자를 미리 정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의 전통이다. 이것은 권력투쟁을 순화시키는 장치다. 한데 시진핑은 이 모두를 정면으로 훼손해 현재 집단지도체제는 와해 단계다.”
시진핑은 왜 집단지도체제를 와해시키나.
“시진핑은 중국의 발전이 개혁에 있었지만 현재의 문제 또한 개혁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본다. 개혁의 주도 세력이 어느 날 기득권 세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개혁의 심화가 필요한데 개혁을 이끌어가야 할 집단지도체제가 바로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됐다고 보는 것이다.”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중국 공산당 자체가 가장 큰 기득권 세력 아닌가.
“중국은 그 문제를 내부 감독으로 풀려 한다.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감찰위원회를 신설한 게 좋은 예다. 과거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당원만 감독할 수 있었다. 이제 감찰위원회 출범으로 중국은 비(非)당원 공무원의 비리까지 단속할 수 있게 됐다.”
개혁 심화를 내세우지만 ‘시진핑,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 자체가 위험한 것 아닌가.
“중국처럼 복잡 다양한 사회에서 압축 성장의 부작용 등 각종 난제를 해결하려면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치제도의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렇게 하기엔 중국 사회의 정치적 역량과 성숙도가 충분치 않다고 보는 듯하다. 따라서 가장 쉽고 효율적이며 전통 친화적인 방식, 즉 최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개혁으로 난관을 돌파하려 한다.”
시진핑 장기 집권이 중국에 미칠 영향은.
“양날의 칼이다. 단기적으론 효율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1인 체제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고 정책의 일관성과 집중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권력 이양의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권력투쟁이 격화되고 정치적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이 도전 세력을 모두 부쉈는데 어떤 권력투쟁이 벌어진단 말인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권력의 퇴장이 제도화돼 있다는 점이다. 평화적 퇴출 장치가 있기에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독재는 그렇지 않다. 긴장이 계속 높아지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폭발하고 만다. 시진핑의 미래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제 시진핑이 언제까지 집권할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시진핑은 19차 당 대회 때 건국 100주년을 맞는 21세기 중엽까지의 3단계 발전 로드맵을 제시했다.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小康)사회를 달성하고, 2035년 기본적인 현대화 실현, 2050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주장했다. 시진핑은 중국몽 달성을 위해선 최소 2035년까지는 집권해야 한다고 내심 생각하는 듯하다.”
시진핑의 야심이 정말 커 보인다.
“그가 19차 당 대회에서 내세운 ‘신시대’ 구호를 보라. 자신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 새 시대를 열겠다는 거대한 야망의 표현이다.”
이번 헌법 개정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중국 공산당 영도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 특징’이라고 해 공산당 영도를 강조한 점이다.
“마오쩌둥 시대와 마찬가지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더불어 관료조직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당의 일원적 영도를 강조하는 현상이 시진핑 시대 들어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숭배와 당의 조직적 지도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향후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되면서 당의 기능은 갈수록 약화돼 결국 중국의 정치 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진핑의 강성 행보를 보면 마오쩌둥을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시진핑의 외모나 인민 친화적 언행, 중화민족 역사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내심,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 등을 볼 때 실용주의적인 덩샤오핑보다는 마오쩌둥과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마오가 이상주의- 인민주의 성향(populism)이 강한 반면 시진핑은 현실주의- 국가주의(statism) 성향이 짙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진핑의 롤 모델이 마오는 아닌지.
“그보다는 청 제국의 기반을 다진 개혁군주 옹정제(雍正帝), 러시아의 피터 대제, 그리고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등이 시진핑의 롤 모델이 아닐까 싶다.”
강한 시진핑의 부상에 따라 미·중 간의 패권 다툼 또한 더 격렬해지는 것 아닌가.
“시진핑의 장기 집권과 같은 역주행은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주장하는 서방의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중국 사회의 다원화→서구적 보편가치 확산과 민주화 진행)을 무색하게 함으로써 미국 내에선 중국 위협론이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미·중 패권 경쟁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새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해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에 빠져 불가피한 패권 전쟁을 촉발하진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전략은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통한 패권 쟁취에 있지 않다. 중국은 마이클 필스버리가 지적한 대로 인(忍), 세(勢), 패(覇)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며 미국과의 지구전을 꾀할 것이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시진핑 1기 한반도 정책은 한마디로 대실패다. 등거리 외교를 하며 남북한 모두에 영향력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위상을 확립하려고 했지만 북한으로부터 뺨 맞고 한국으로부터는 무시당했다. 북한은 중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제멋대로’ 했고, 한국 또한 시진핑이 3차례나 반대 의사를 밝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를 도입하고 말았다. 시진핑과 중국의 체면이 모두 깎인 셈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시진핑 정권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한반도는 현재 남북특사가 왕래하는 등 급물살을 타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시진핑이 오지 않은 것은 중국의 패착 중 하나다. 남북한과 미국 등 주요 플레이어가 주목을 받았는데 중국은 존재감이 없었다. 내심 초조하고 섭섭하며 당혹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강한 시진핑의 롱런’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일각에선 ‘중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극중(克中)’ 이야기가 나온다.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 모두를 준비해야 한다. 긍정적인 점은 시진핑이 현실주의 정치를 추구해 실용적인 부분에서의 협력 가능성은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을 상대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당당한 외교가 필요하다. 중국이 강대국 행세를 하려 하겠지만 주눅 들 필요 없다. 우리는 또 미·중 사이에서 중개 외교를 수행할 공간도 크다. 부정적인 측면은 중국이 걷는 체제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는 달라 본질적으로 같은 길을 걷기 어렵지 않나 하는 점이다. 우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진영(76)은 …

1969년 미 워싱턴주립대 유학을 시작으로 50년째 중국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학 개척자’ ‘학계 최고의 중국 전문가’ 등으로 불린다. 한중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쓴 『중국혁명사』 『21세기 중국정치』 등은 중국 공부의 교과서로 통한다. 현재 (재)사회과학원 원장으로 있다.

유상철 논설위원

※이 취재엔 윤가영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