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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만드는 아이돌, 프로듀서돌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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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7인조 보이그룹 아이콘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25일 발매된 정규 2집 타이틀곡 ‘사랑을 했다’가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40일 넘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원플랫폼 멜론에서는 5주째 1위다. 멜론의 역대 차트에서 보이그룹이 이처럼 장기간 1위를 차지한 것은 2008년 빅뱅의 ‘하루하루’(7주) 이후 처음이다.

7인조 그룹 ‘아이콘’ 5주째 1위 #리더 비아이 작곡·작사 돋보여 #빅뱅·방탄소년단 성공 이어가 #남녀노소 즐기는 멜로디로 승부

5일 워너원이 신곡 ‘약속해요’를 발표했음에도 ‘사랑을 했다’는 2위로 밀려나는 대신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아이콘도 같은 날 신곡 ‘고무줄다리기’를 발표했다. 디지털 싱글 발매가 보편화하고 있어도 2년여 만에 새 앨범을 낸 그룹이 활동 도중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1월 말 발표한 ‘사랑을 했다’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콘은 5일 신곡 ‘고무줄다리기’를 발표하며 프로듀서돌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두 곡 모두 비아이와 바비가 주축이 되어 위너의 송민호와 함께 만들었다. 왼쪽부터 김동혁, 송윤형, 비아이, 바비, 김진환, 구준회, 정찬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1월 말 발표한 ‘사랑을 했다’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콘은 5일 신곡 ‘고무줄다리기’를 발표하며 프로듀서돌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두 곡 모두 비아이와 바비가 주축이 되어 위너의 송민호와 함께 만들었다. 왼쪽부터 김동혁, 송윤형, 비아이, 바비, 김진환, 구준회, 정찬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이는 ‘프로듀서돌(프로듀서+아이돌)’로 떠오른 아이콘의 역량을 바탕으로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던진 승부수로 보인다.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는 ‘사랑을 했다’를 포함해 2집 전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신곡 ‘고무줄다리기’에 대해선 “8번이나 수정할 만큼 심폐소생을 많이 한 곡”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 역시 "다음 앨범 타이틀곡으로 숨겨놓았던 곡이다. 곧 뮤직비디오도 공개 예정”이라며 힘을 보탰다.

‘고무줄다리기’는 아이콘의 비아이와 위너의 송민호가 함께 작사·작곡을 한 노래다. 소속사가 같아도 두 그룹 멤버의 협업은 처음. 이들은 2013년 Mnet 서바이벌 프로 ‘윈: 후 이즈 넥스트(WIN: WHO IS NEXT)’를 통해 형제그룹처럼 탄생했다. 당시 우승한 팀A는 2014년에 위너로, 탈락한 팀B는 이듬해 또 다른 Mnet 프로 ‘믹스앤매치’를 통해 재정비를 거쳐 아이콘으로 데뷔했다.

YG는 대표그룹 빅뱅의 멤버가 차례로 군입대를 하면서 ‘포스트 빅뱅’의 부상이, 올해로 각각 데뷔 5년차와 4년차에 접어든 위너와 아이콘의 정체성 확립이 절실한 상황이다. 10여 년 전에도 YG는 연이어 빅뱅의 신곡을 발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빅뱅은 2007년 7월 ‘거짓말’로 멜론 주간차트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11월 ‘마지막 인사’로 8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2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년간 6주 이상 1위 차지한 곡

지난 10년간 6주 이상 1위 차지한 곡

음반 판매량과 달리 음원 차트 1위는 팬덤을 넘어선 대중성이 필요하다. 보이그룹의 장기집권이 흔치 않은 배경이다. 걸그룹도 쉽진 않다. 역대 멜론 차트를 살펴보면 2007년 원더걸스의 ‘텔미’가 7주, 2009년 소녀시대의 ‘지’가 8주간 1위를 차지한 게 눈에 띌 정도다. 2012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6주 동안 1위였다. 지난해 음원 차트가 개편되어 차트 줄세우기나 장기집권이 힘들어진 상황이라 ‘사랑을 했다’의 기세가 더 주목을 받는다.

보이그룹의 성공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힘입어 직접 노래를 만드는 프로듀서형 아이돌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한층 커졌다. 아이콘의 비아이와 바비처럼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멤버들이 많을수록 음반 제작은 한결 수월해진다. 빅뱅도 지드래곤이 프로듀서로서 걸출한 역할을 해왔다.

위너의 송민호. [뉴스1]

위너의 송민호. [뉴스1]

물론 프로듀서형 아이돌이라도 각 그룹의 지향점은 좀 다르다. 대형기획사 YG의 빅뱅이 음악 자체로 세련됨을 추구해왔다면, 중소기획사로 출발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탄소년단에겐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청춘의 서사가 중요하다. 멤버 가운데 RM·슈가에 이어 세 번째로 지난 2일 믹스테이프를 발매한 제이홉의 ‘호프 월드(Hope World)’도 마찬가지다. 댄서로 시작해 래퍼가 되고, 다시 프로듀서로서 거듭나고 있는 그의 성장담이 주를 이룬다. ‘호프 월드’는 63개국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하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과거 믹스테이프는 힙합에서 주로 기존곡을 리믹스해 무료로 배포하던 비정규 작업물로 여겨졌지만 이젠 아이돌의 음악적 역량을 선보이고 팬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창구가 된 셈이다.

아이콘이 추구하는 건 “공감이 되는 음악, 상상력이 발휘되는 음악”이다. ‘아이돌로지’ 미묘 편집장은 “데뷔곡 ‘취향저격’에서 보여준 것처럼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는 쉽고 경쾌한 멜로디가 아이콘의 강점”이라 분석했다.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영감을 얻는다”는 비아이의 작곡 스타일, 의외로 로맨틱한 바비의 가사는 역설적으로 아이돌의 주요 팬인 10~20대를 넘어 보다 넓은 세대에 소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처음부터 프로듀서돌을 표방하는 그룹도 나온다. JYP의 새 보이그룹으로 오는 25일 정식 데뷔를 앞둔 스트레이 키즈는 습작을 모은 프리 데뷔 앨범 ‘믹스테이프’를 지난 1월 발표했다. 이에 앞서 리더 방찬이 만든 자작곡 ‘헬리베이터’가 Mnet 프로에 공개돼 인기를 얻으면서 스트레이 키즈는 빌보드 선정 ‘2018년 주목할 K팝 아티스트’ 1위에도 올랐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대형 기획사의 경우 토탈 매니지먼트를 표방, 여러 그룹이 동시에 활동하는 것이 힘든 구조였지만 소속 멤버가 주축이 되어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해지면서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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