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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도중 메모 먹으려 한 이팔성…삼키지 못한 메모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22억여원의 불법 자금을 건넸다는 혐의를 받는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압수수색 당시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품 전달 과정의 핵심 내용이 담긴 이른바 ‘이팔성 메모’를 검찰이 알아채기 전에 씹어 삼키려 했다는 것이다.

자금 흐름 적힌 메모 발견되자 #압수수색 도중 찢어 삼키려 해 #이상주 전무 대질은 성사 안돼 #MB 측, "증거 신빙성 떨어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지난 동계올림픽 기간 이팔성 전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불법 자금 흐름을 정리한 A4용지 한장짜리 메모와 수첩 형태의 비망록을 발견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검찰이 비망록과 메모를 압수하기 직전 메모를 잘게 찢어서 입 안에 넣어 삼키려다 압수수색 중이던 검찰 측에 제지당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 전 회장이 미처 다 삼키지 못한 메모에는 ‘이상주 14억 5000만원’, ‘SD(이상득) 8억원’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맏사위인 이상주(48) 삼성전자 컴플라이언스팀장(준법경영 담당 전무)에게 2007년 1월~2011년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14억 5000만원을 건넸고,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도 별도로 8억원을 건넸다는 내용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이 22억원 가운데 상당수가 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7년 말에 전달된 사실 등에 비추어 기업들로부터 대선 축하금 명목의 돈을 받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이팔성 전 회장의 비망록에는 22억원 중 일부는 성동조선해양 측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조선해양이 사업 관련 청탁을 하는 대가로 이 전 회장에게 금품을 건넸지만, 이후 청탁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돈을 돌려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3억원은 이팔성 회장 자신의 연임을 위해 건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전 회장 메모에는 이 전 회장이 2010~2011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이 전무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기록돼 있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6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고, 3년 뒤인 2011년 2월 회장직을 연임했다. 이 전 회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기 전 적었던 비망록에 ”이상주 전무에게 돈을 건넸는데 자리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며 인사 불만 등을 적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는 검찰 조사에서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것이라 생각했다"며 일부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불법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는 검찰 조사에서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것이라 생각했다"며 일부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팔성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도 메모와 비망록에 적힌 내용과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6, 27일 이상주 전무를 이틀 연속 불러 조사했다. 이 전무는 "2007년 말 이 전 대통령 취임 직전 이팔성 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이 담긴 트렁크 가방을 건네받았지만, 정확한 액수는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억원의 금품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검찰에 설명했다.

이 전무 측은 2007년 말 받은 수억원의 금품 외에 나머지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전 회장과 이 전무 진술이 엇갈리자 검찰은 두 사람을 대질신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일주일째 대질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메모와 비망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압수수색 직전 메모를 씹어 삼키려 했다는 건 메모가 그만큼 중요한 증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자금 흐름 등 객관적인 증거들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어 대질조사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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