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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금메달’ 스펙 아닌 열정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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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18면

청년상인의 힘

머스마빱 유종성 대표가 이마트 중동점에 있는 자신의 매장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는 지방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창업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었다. 이수기 기자

머스마빱 유종성 대표가 이마트 중동점에 있는 자신의 매장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는 지방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창업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었다. 이수기 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3시 경기도 부천시 이마트 중동점 지하2층 푸드홀. 1000㎡ 규모의 푸드홀 정면으로 푸드트럭을 형상화한 상점이 눈에 띄었다. 식사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제법 붐볐다. 푸드트럭은 청년상인인 유종성(28) 대표가 운영하는 테이크아웃 스테이크 전문점인 ‘머스마빱’이다. 가게 이름은 ‘머슴아(남자)들이 짓는 밥’이란 의미. 주 메뉴는 쇠고기 부채살을 직화 그릴에 구워 불맛을 입힌 ‘일본식 직화스테이크(스테끼 스테끼)’다. 일인당 7900원~9900원 선인 주력 제품들로 유 대표는 이곳에서 한 달 15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그는 “주말 식사시간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며 “실속있는 가격에 쇠고기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통한 것 같다”고 웃었다.

이마트 입점 ‘머스마빱’ 유종성 #‘직화 불맛’ 테이크아웃 스테이크 #작년 대전서 시작, 금세 입소문 #군산 ‘브라더 새우장’ 송정수 #일일이 새우 손질 60시간 숙성 #두 달 동안 3억 매출 올리기도 #속초 ‘아임파인쉬림프’ 임호식 #상큼한 스페인식 새우 요리 감바스 #내달 이마트 일산 킨텍스점 진출

전통시장 청년몰서 기초 튼튼히 다져

그는 지난해 대전의 한 대학을 졸업했다. 금융권 입사를 준비하다가 음식점 창업을 결정했다. 동업자이자 고향 후배인 김도일(23)씨는 아예 다니던 학교를 접고 동업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레 먹거리 장사를 선택했다. 창업에 앞서 대전시가 운영하는 청년상인 교육을 받는 등 차근차근 기초를 다졌다. 첫 점포는 지난해 6월 다른 청년상인들과 함께 대전중앙시장 청년몰에 냈다. 13.2㎡(4평) 짜리 가게를 낼 때 들인 돈은 자본금을 포함해 1000만원이 전부.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프로그램과 입점 지원을 적절히 활용한 덕이다. 그는 “젊음과 아이디어 못잖게 지자체 등을 통해 최대한 창업 관련 노하우를 전수 받아 비교적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유 대표처럼 자본도 적고 스펙도 약하지만, 실력과 비전만으로 ‘생활 속 금메달’을 따내는 청년상인이 늘고 있다. 지자체 등의 지원을 받는 전통시장 청년몰에서 경험을 쌓은 뒤 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손을 잡고 판로를 개척해 나가는 식이다. 꼼꼼히 창업을 준비하고 가장 자신있는 몇 가지 메뉴에만 집중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머스마빱’에선 직화스테이크를 비롯해 7~8가지의 메뉴만 판다. 모두 ‘직화 불맛’을 기초로 한 것들이다. 메뉴 개발에만 1년 정도가 걸렸다. 같은 메뉴와 소스를 50회 이상씩 만들어 가며 더 나은 맛을 찾아가는 것은 기본. 음식 맛 못지 않게 마케팅에도 주력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것은 물론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전단을 뿌리고 시식행사를 했다. 프로야구 시즌 중에는 대전 한화 이글스 구장에까지 가서 음식을 팔았다. 물론 전통시장 내에서 청년상인으로 살아남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개점 약발이 떨어지자 매출이 줄기도 했다. 반년 쯤 지나자 함께 장사를 시작했던 20여 명의 청년 상인 중 절반가량이 장사를 접었다.

 어려움을 이겨낸 비결은 역시 음식 맛이었다. 손님들 사이에서 ‘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매출이 올랐다. 때마침 이마트가 청년상인 등을 대상으로 벌인 ‘스타상품 프로젝트’에도 도전했다. 우수한 성적을 낸 청년상인에게는 ‘이마트 입점 기회를 준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400여 팀이 지원해 이중 29개 팀이 선발됐다. 유 대표를 비롯해 14개 팀은 시장 상인, 나머지 15개 팀은 드론 등을 개발해 파는 중소기업이었다.

 지난해 12월 프로젝트 선발팀 중 이마트 점포에 입점한 건 ‘머스마빱’이 최초다. 이마트 김의영 중동점 부점장은 “테이크아웃 식사의 경우 실제 마트 영업현장에서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입점이 이뤄졌다”며 “젊은 상인들이 실속있는 음식을 팔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매출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덕분에 머스마빱 매장은 대전 중앙시장의 본점과 이마트 중동점의 두 곳이 됐다.

 유 대표는 동업자와 2주씩 번갈아 가며 교대로 두 곳의 매장을 챙긴다. 부천엔 숙소로 쓸 원룸을 따로 구했다. 쉬는 날이면 메뉴 개발을 위해 노력한다. 사실상 1년 365일을 일하는 셈이다. 그는 “같이 창업했던 청년상인들이 하나둘씩 장사를 접을 땐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럴 수록 포기하지 않고 제품 맛을 높이고 기회를 잡으려 노력했다”며 “장기적으로는 식품기업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력을 다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서 먹던 ‘새우장’을 창업 아이템으로

어머니에게서 배운 새우장 요리 비법으로 판로를 넓혀가고 있는 브라더 새우장 송정수 대표

어머니에게서 배운 새우장 요리 비법으로 판로를 넓혀가고 있는 브라더 새우장 송정수 대표

전북 군산에서 전통식품인 새우장 등을 담가 파는 ‘브라더 새우장’의 송정수(32) 대표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2005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직접 기획사를 차리고 의류를 파는 쇼핑몰도 했다. 처음 몇 년간은 사업이 잘되는 듯 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함께 사업을 꾸리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한 뒤 가수의 꿈을 접고 고향인 군산으로 돌아왔다. 나이도 나이지만 대졸자가 아니어서 갈 수 있는 직장 역시 한계가 있었다.

 몇 개월간 고민 끝에 어려서부터 절친했던 개그맨 서태훈(31)씨와 함께 군산공설시장 청년몰에서 새우장과 전복장 등을 만들어 팔았다. 장류를 만드는 비법은 식당을 운영하던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시장에서 하는 장사였지만, 맛과 품질에 대한 스스로의 각오는 놓지 않았다. 소라와 전복은 제주도와 전남 완도군 등에서 나온 국산만, 새우는 껍질이 얇아 장 담그기에 좋은 남미산 새우만 고집했다. 새우와 소라 등을 간장에 넣은 뒤 20시간 동안 약한 불로 끓이고 60시간 이상 숙성한다는 원칙도 고수했다.

 송 대표는 “맛을 위해서라면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우장의 경우 새우 발과 뿔, 털 등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거한다. 덕분에 브라더 새우장의 제품은 ㎏당 2만4000원(새우장)~4만5000원(전복장) 선의 가격이다. 그는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다른 업체보다 4~5가지 공정을 더 거친다”고 말했다. 깐깐하게 품질을 고수한 덕에 자연스레 손님이 모였다.

 지난해엔 이마트 전통시장 푸드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두 달 동안 3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분점을 내자’는 제안이 와도 아직은 이를 거절한다. 품질을 지키며 분점까지 운영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냉정한 자기 판단에서다. 송 대표는 “음식은 학력이 아니라 실력과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며 “더 꾸준히 사업을 키워 저 같은 고졸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도록 식품회사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컵에 담은 ‘감바스’ 월 매출 3000만원

스페인 신혼여행 중 맛본 감바스 요리를 한국화해 선보인 아임파인쉬림프 임호식 대표

스페인 신혼여행 중 맛본 감바스 요리를 한국화해 선보인 아임파인쉬림프 임호식 대표

강원도 속초시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아임파인쉬림프’를 운영하는 임호식(37) 대표 역시 지방대를 졸업한 뒤  자신의 실력으로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속초시 인근 콘도 지하에서 라면과 치킨 등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에게서 장사의 기본을 배웠다. 학생 때부터 꾸준히 어머님을 도우며 자연히 음식장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임 대표는 치킨배달 등 가장 기초적인 일부터 시작해 음식장사 준비를 했다. 치킨배달만 3년, 샌드위치 전문카페는 5년 간 운영했다.

 2016년 7월에는 속초관광수산시장 노점에 테이블 2~3개를 놓고 ‘아임파인쉬림프’를 창업했다. 아임파인쉬림프의 주력 메뉴는 스페인식 새우 요리인 새우 감바스다. 스페인어로 새우를 뜻하는 ‘감바스(gambas)’는 올리브유에 새우와 마늘을 구워낸 요리다. 신혼 여행 때 스페인에서 감바스를 맛본 뒤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란 감이 왔다. 그가 감바스에 주목한 건 새우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데다 항구가 있는 속초를 대표할 요리로 해산물이 적합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현지 감바스가 우리 입맛에는 지나치게 짜고 기름지다는 점은 부담스러웠다. 이 때문에 임 대표는 감바스를 우리나라 소비자 입맛에 맞춰 바꾸는 데에만 1년가량의 시간을 들였다. 올리브유를 줄이는 대신 버터를 넣고, 파인애플을 더해 상큼한 맛을 키웠다. 또 손님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컵에 담아 소량씩 나눠 팔았다. 덕분에 매출이 꾸준히 늘어 성수기 때 그의 가게는 월 3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15㎡가 채 안 됐던 그의 가게는 66㎡로 커졌다. 오는 4월에는 이마트 일산 킨텍스 점에 2호점을 낼 계획이다.

 임 대표는 “경쟁력 있는 감바스 메뉴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판매해 비용을 줄이고 양질의 새우를 들여와 조리하는 등 품질에 집중한 전략이 성과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혁 이마트 CSR담당 상무는 “소상공인 창업여건이 악화되고 있다지만, 자신의 실력만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가는 청년상인들도 많다”며 “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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