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SF영화 덕 과학교양 서적 변방서 중심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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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27면

[CRITICISM] 과학책의 어제와 오늘

과학교양서는 왜 중요한가?
일본의 저널리스트·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로 답을 대신하자.
“과학을 제외하고 현대 사회의 교양을 논할 수 없다. 현대 사회의 근간은 자연과학
위에 구축되어있고 실제로 그것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교양은 도스토옙스키나 실존철학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고 뇌과학이다.”
과학교양서가 우리나라 일반 단행본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과학은 어렵고 전문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교양이라고 하면 여전히 문사철(文史哲)만 떠올린다.
역량 있는 국내 필자군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변화가 상전벽해까진 아니어도 괄목상대할만하다.

[과학책 판매량 증가세] #‘인터스텔라’‘마션’인기, AI 관심 #점유율은 1.5%로 아직 낮은 수준 #[『코스모스』 첫 베스트셀러] #과학평론 이인식, 90년대 홀로 분투 #99년 최재천·정재승 스타 작가 신고 #[인기 작가 속속 등장] #이정모·장대익·김대식·전중환 … #독창성 있게 써내는 저자는 드물어

과학교양서가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중문화 영향도 많이 받는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중앙포토]

과학교양서가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중문화 영향도 많이 받는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중앙포토]

교보문고 과학도서 판매량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해마다 각각 3.9%, 1.9%, 6.7%, 6.4% 늘었다. 전체 판매량에서 과학도서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같은 기간 해마다 0.1% 증가세였다. 점유율 자체는 1.5% 안팎으로 여전히 낮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2016년 과학도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 이상 늘었다. 과학교양서 판매량 성공의 기준은 대체로 1만부다.

 이정모(서울과학관장), 김상욱(부산대), 장대익(서울대), 김범준(성균관대), 김대식(KAIST), 전중환(경희대), 조진호(민족사관고) 등 비교적 새로운 저자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사이언스북스, 동아시아, 까치, 김영사, 승산, 궁리, 해나무 등 과학교양서에서 강점을 보여 온 출판사들 외에 알마, 어크로스, 에이도스, 뿌리와이파리, 글항아리사이언스 등이 화제작을 속속 내놓았다. 과학 계간지 ‘스켑틱(SKEPTIC)’ 한국어판(바다출판사)이 안착했고 동아시아출판사는 SF소설 브랜드 ‘허블’을 출범시켰다.

과학교양서 새로운 저자와 판매 증가

SF 영화론 드물게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인터스텔라’(2014년), 화성탐사에 관한 영화 ‘마션’(2015년) 등이 인기를 끌면서 원작 소설과 관련 도서들이 주목받았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 관련 책이 많이 나왔다. 같은 해 지구에서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중력파를 최초 탐지한 것, 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구형 행성 프록시마b가 발견된 것도 관심을 모았다. 과학 관련 발견이나 개발, 대중문화 작품 등이 출판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나라 과학교양서의 출발기인 1948년, 시인·문학평론가 김기림은 스코틀랜드 과학저술가 존 아서 톰슨의 『과학개론』(을유문화사)을 번역했다. 왜 번역했을까? “김기림은 새나라 건설의 구상은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계몽을 한 필수 사항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쳤지요.”(문학평론가 김윤식) 이렇게 근대적 계몽의 맥락에서 과학이 이해되고 출판이 이를 반영하는 흐름은 60, 70년대까지 이어졌다.

 과학계몽을 기치로 내건 본격적인 과학교양서는 전파과학사의 ‘현대과학신서’가 처음이다. 1973년 1월 첫 권 『우주 물질 생명』(권영대 외 지음) 이후 1976년까지 나온 66권 가운데 20권이 국내 저자의 책이다. 사회과학의 시대, 1980년대에는 과학교양서도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했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저술·번역가 집단 ‘과학세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981년 처음 번역돼 나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바로 그 해 주요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2위에 올랐다. 사실상 첫 과학교양서 베스트셀러다.

 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인 1990년은 의미 있는 해였다. 『재미있는 물리여행』,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야기 파라독스』,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의 우주』, 『상대성이론의 세계』 등이 주요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출판의 흐름이 80년대 사회과학 시대에서 90년대 다양한 교양 시대로 바뀌면서, 과학교양이 그 일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개인으로는 과학평론과 저술을 전업으로 삼은 이인식이 있다. 그는 ‘1990년대부터 홀로 분투해온 과학전도사이자 개척자’(한기호)라는 평가도 받았다. 다만 물리학자 김제완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1993년)이 주목받기는 했어도 국내 저자는 여전히 드물었다. 위의 책 가운데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만 국내 저자(이태형)의 책이다.

과학계몽에서 ‘스타 저자’ 시대까지

중요한 분기점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였다. 최재천의 『개미제국의 발견』(1999년), 정재승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1999년), 『과학콘서트』(2001년)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쓴 과학교양서도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보여준 사실상 첫 저자들, 그리고 ‘스타 저자’들이다. 『꿈꾸는 달팽이』(1994년) 이후 40권 넘는 과학교양서를 낸 생물학자 권오길이 폭넓게 주목받은 것도 90년대 말부터다.

 출판사로는 지난해 출범 20주년을 맞은 사이언스북스가 특기할 만하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과학 전문 출판사 승산도 꾸준히 양서를 펴냈다. 과학교양서에 강점을 지닌 궁리출판사(1999년)도 이 시기에 출범했다. 북하우스출판사의 과학교양서 브랜드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동아시아출판사가 정재승의 책을 펴낸 것도 90년대 말.

 최근 3~4년 추세를 두고 ‘과학책 르네상스의 도래’라는 말도 나오지만 갈 길은 멀다. 르네상스, 즉 부흥이라면 쇠퇴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이다. 과학교양서가 우리나라에서 흥성한 적은 없다. 과학교양서가 지금 걷는 길은 전인미답의 길, 가능성의 영역이다. 증가세라는 판매량은 절대적인 규모를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국내 저자들이 늘었다지만 독창성 있는 책을 써내는 저자는 아직도 드물다.

‘과학서적 르네상스’ 갈길 멀어

영미권에는 과학저술(Science writing) 및 과학작가(Science writer)가 전문화돼 있다. 대학에 재직 중인 저자뿐 아니라 프리랜서 전업 작가들도 많다. 특히 미국에는 전미과학작가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Science Writers)와 과학저술진흥회(Council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Writing)가 활동 중이다.

 과학교양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 구간의 위력은 여전하다. 과학교양서는 학교 등의 각종 추천도서목록을 따르는 독자들이 많다. 추천도서목록은 기존 스테디셀러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베스트셀러라 해도 부수 규모 자체가 적다. 과학교양서 1위라도 종합 순위에 들기는 어렵다. 전문성을 갖춘 과학도서 편집자도 드문 편이다. 과학에 대한 식견이 충분한 출판편집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과학출판 활성화의 필수 조건이다.

 초중등 과학교육은 대학입시에 종속돼 있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은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기초과학 홀대는 여전하다. 최근 과학계에서 개정 주장이 활발하지만, 현행 헌법은 과학기술을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규정한다. 과학의 독자적 가치, 자율성과 거리가 멀다. 개헌과 과학교양서의 미래가 무관하지 않다면 과장일까? 한 사회는 그 과학 및 사회 수준에 맞는 과학교양서를 갖는다.

과학인 듯 아닌 듯 … ‘과학맹’에게 추천하는 10권

학교 시절 수학 과목을 포기한 ‘수포자’, 과학이라면 고개부터 가로젓는 ‘과학맹’에게 다음과 같은 책을 권한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과학적 사고방식이야말로 곧 인문학이고 철학이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 바틀비
-과학과 세상만사의 긴밀하고 흥미로운 연결을 일깨워준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인간은 탐구하고 따라하며 공감하고 신앙하며 융합하는 존재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에이도스
-숲 1세제곱미터를 1년 동안 관찰, 사색한 시적인 기록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리처드 파인만 지음, 사이언스북스
-20세기 대표적인 물리학자 파인만의 솔직하고 또 놀랍도록 대담한 삶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청어람미디어
-정상급 과학자 13명과 나눈 아름다움, 정의, 이타심, 공감, 기억 이야기
『가능성의 발견』 야마나카 신야 지음, 해나무
-수술 실력이 없어 놀림 받던 의사는 어떻게 노벨상을 수상했을까?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폴 호프만 지음, 승산
-아름다움과 진리만을 추구한 수학자 본 폴 에어디쉬의 비범한 삶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지음, 북스피어
-인공지능의 미래,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과학소설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돌베개
-주기율표의 원소 하나하나에서 풀어져 나오는 회고와 명상과 상상

표정훈 출판평론가
칼럼니스트. 서강대에서 철학 전공.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를 지냈고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동서양 고전을 강의한다. 저서 『탐서주의자의 책』, 『철학을 켜다』, 번역서 『젠틀 매드니스』(공역), 『중국의 자유전통』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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